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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행복합니다”1179부대 박승대 원사 ‘참 군인 대상’ 수상
서영준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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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12.17  14:3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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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9일 육군본부 대회의실에서 육군참모총장 임충빈 장군으로부터 1179부대 박승대 원사가 '참 군인 대상'을 수상하고 있다.

대한민국 육군 중 단 5명에게만 주어지는 ‘참 군인 대상’에 1179부대 박승대 원사(경비소대장)가 선정돼 부대 사기를 높이고 있다.

끊임없는 봉사와 아낌없는 나눔으로 진정한 군인의 표상을 보이고 있는 박승대 원사는 지난 9일 육군본부 대회의실에서 임충빈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참 군인 대상’을 수상해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으며 “敵에게는 전율과 공포를, 국민에게는 신뢰와 봉사를”이란 기치를 몸소 실천하게 됐다.

1982년 “안되면 되게 하라!”의 신념으로 특전부대에 몸담은 지 26년, 부사관으로 군생활을 시작한 그는 대테러임무를 수행하는 707대대 특공지역대 팀원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아직 대테러작전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할 때 임무를 시작해 세계 최고 최강의 707대대의 뿌리를 내린 장본인이기도 한 박 원사는 저격팀장을 거치며 1992년 미국 특수부대 델타포스 연수를 성공리에 마쳐 대테러작전의 초석을 마련했다.

박 원사는 아직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미국 레이건 대통령 방한 기간 중 발생한 1983년 11월 ‘서울 신림동 오색여인숙 무장탈영병 사건’과 84년 10월 ‘군산 약속다방 무장탈영병 사건’을 꼽는다.

“당시 부족한 장비를 끊임없는 훈련과 임기응변으로 대체하며 무사히 임무를 완수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박 원사는 “이러한 일들을 바탕으로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으며 美델타포스 이수 후 당시 안기부에 신장비를 구입해 달라고 지속적으로 건의, 만족할 만한 장비를 보유하게 된 일도 머릿속에 남는다”고 회상한다.

그의 이러한 생활도 1995년 현재 1179부대로 전입되면서부터 바뀌게 된다. 전입 후 선임부사관으로 임무를 수행하며 최우수 중대로 우뚝 선 것도 기억에 남지만 부대에서 실시한 결연행사에 참가하면서부터 그의 인생은 ‘나눔의 행복’에 심취하게 된다.

“부대에 부사관들이 새롭게 전입돼 오면 우선 봉사활동부터 시작합니다. 당시 저희 부대는 곡성 삼강원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었는데 저도 몇 번 신입 부사관들을 인솔하고 참가하기 시작했죠, 거기서 저는 삶의 큰 의미를 배우게 됐습니다”

박 원사는 “몸이 불편한 아이들이 ‘저도 아저씨처럼 군인이 되고 싶어요’라는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생각과 함께 가슴 한 편으로 ‘꼭 이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절실했다”며 오늘날까지 14년간 끊임없는 이웃사랑을 실천한 계기를 설명했다.

부대전입 후 지속된 박 원사의 선행은 현재도 결연어린이 3명을 돕고 있으며 2000년부터는 ‘선아복지재단’과 장애인단체 ‘행복한 디딤돌’, ‘장애인재활자립 통판장’ 등에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또 담양군 월산면 ‘용흥노인요양원’과 담양읍 ‘예수의 집’ 등에서도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동티모르에 파병돼 평화유지군으로 활약하기도 한 박승대 원사는 지난 2002년 8월 대민봉사에서도 빛을 발한다. 폭우로 담양군 용면 가마골에서 실종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경찰과 군인, 119구조대가 대거 동원돼 이틀 동안 수색을 벌였으나 별다른 성과 없이 모두들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나 박 원사는 “아버지 시신만이라도 찾아달라”는 가족들의 애원에 내 부모를 찾는 다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심기일전, 폭우와 불어난 물도 마다 않고 처음부터 다시 섹터를 나눠 수풀 사이를 해쳐 나갔다.

당시를 박 원사는 이렇게 기억한다. “부대 최고의 요원들로만 조를 편성해 수색작전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불어난 물살은 수중에서나 지상에서나 매우 위협적이었습니다. 모두가 악천후와 싸우느라 기진맥진했죠, 하지만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통곡하는 가족들을 보니 마치 제 일 같
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시신이나마 꼭 양지바른 곳에 모셔야 한다는 생각으로 두 눈을 부릅뜨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돌아가신 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이 사건은 메스컴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1179부대 장병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폭우에 휩쓸려 아버지를 잃은 가족들의 슬픔을 달랜 일화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박 원사는 병사들 사이에 ‘아버지’로 통한다. 그만큼 병사들은 그를 믿고 따른다는 증거다. 2004년부터 시작한 부대 경비소대장, 병사들로만 구성된 소대는 사고가 발생하기 일쑤였다. 그는 우선 설문조사를 실시해 병사들의 시급한 문제부터 해결하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고쳐할지 사실 막막했습니다. 먼저 사비를 들여 오래된 세탁기를 교체하고 관급으로 1대를 더 보충했죠, 소대원들과는 일대일로 직접 마음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초병들의 노고를 함께 느끼고 그들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1시간 먼저 출근하고 상황 인계인수가 끝나는 밤 8시 이후에야 퇴근하는 일을 지금도 4년 동안 반복하고 있다.

그는 “자식을 軍에 보낸 부모님들은 부대간부를 믿고 보냅니다. 아무런 탈 없이 부모님들의 곁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관리자의 책임이자 소임입니다”라며 “부대관리는 특전부대의 자존심이며 이는 다시 국민에게 신뢰받는 군인의 자세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박 원사의 특수수당과 시간외수당은 항상 전역자회식비로, 불우이웃돕기로 모두 소진되고도 모자란다. 임무를 마치고 전역하는 소대원을 담양터미널까지 배웅하는 길이면 으레 전역자들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박 원사에게 큰절을 올리며 눈물을 글썽인다.

“그럴 때마다 쑥스럽지만 오히려 몸 건강하게 생활해 준 녀석들이 더 고맙게 느껴집니다”
그간의 소회를 소탈한 웃음으로 대신한 박승대 원사는 “나의 작은 정성이 선진병영에 도움이 된다면 기필코 그 길을 택할 것이며 앞으로도 존경받고 사랑받는 군인으로서 사명을 다하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서영준 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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