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균형 깨지면 중풍 의심해 봐야

“내가 항의를 하니까 그 친구 한참 동안 생각을 하더니 아무도 없는 곳으로 나를 살짝 부르더군요. 그러면서 명성이 자자한 침술원이 있는데 그리 가보는 게 좋겠다지 뭡니까. 나, 원, 참! 뚱딴지같이 침은 또 뭐야 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그 친구가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J씨는 자기 목소리가 크게 높아진 걸 느꼈는지 소리를 낮추고는 말을 이었다.

“난데없는 말에 기가 막힌 내가 목소리를 높이니까 그 친구는 소리를 낮추라는 손짓을 하더니, 내가 너랑 아주 친하니까 해 주는 말이라는 거예요. 그런 사이가 아니면 어떻게 의사가 나는 모르겠으니 침술원에 가서 병을 고쳐라, 그럴 수가 있느냐고 하면서요. 이번 기회에 있는 병 모두 싹 고치고 오라고 내 등을 떠밀어서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나는 J씨의 친구라는 그 의사가 궁금했다. 그 의사는 어떻게 나를 아는 것일까. 만난 적이 없으니 신문이나 잡지 등에 나온 내 기사를 본 것이리라.

그런데 대체 어떤 믿음을 가지고 나에게 J씨를 보낸 것일까? 어쩌면 침뜸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 의사는 환자에게서 어떤 이상이 발견되지 않아 특별히 병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 심리적인 위안 삼아 J씨를 나에게 보냈는지도 몰랐다.

나는 J씨에게 겉옷을 벗고 진료대에 눕게 했다. 그 순간 나는 정씨의 병이 무엇인지 알아챘다. 나는 곧바로 맥을 짚으면서 그에게 물었다.

“왼쪽 귀 뒤가 아픈 적 없었어요? 틀림없이 있었을 텐데 잘 기억해 보세요.”
그가 기억을 더듬는 사이에 내가 다시 물었다. “입에 경련이 일어나고 왼쪽으로 약간 돌아갔던 적이 있으시죠?”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던 그가 고개를 번쩍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 그걸 어떻게… 그걸 어떻게 아세요? 오래 전 일인데!”

그의 병은 중풍이었다. 한 차례 아주 가볍게 와서 본인은 거의 느끼지 못했겠지만 틀림없는 중풍이었다. 내 눈에는 그의 몸은 왼쪽이 오른쪽에 비해 힘이 없었고 그래서 어딘가 균형이 깨진 것이 보였다. 사람들 눈에는 이상이 없어 보일 만큼 경미하고 환자 본인이 깨닫지 못할 만큼 미세한 차이였지만 정밀 검사를 한다면 오른쪽에 비해 왼쪽이 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날 터였다. J씨는 몸 왼쪽이 오른쪽보다 약해지고 있다는 내 설명을 듣고는, 자기도 몸 한쪽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었다고 답했다.

치료를 마치고 나자 그는 머리가 가벼워 날아갈 것 같다며 좋아하였다. 좋아하는 그에게 나는 당부했다. “앞으로 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관리를 잘못하면 다시 중풍을 맞을 수도 있는데 두 번째 찾아오는 중풍부터는 아주 위험합니다. 두 번째 중풍이 오면 그때는 반신불수가 되고 세 번째 맞으면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지경이 됩니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환자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병원에서도 못 찾아낸 제 병을 찾아냈으니 이제부터 제 목숨은 선생님 손에 달렸습니다. 책임지고 저를 고쳐 주셔야 합니다.”

병명도 알았고 고칠 방법까지 알았다며 좋아하면서 진료실 문턱을 넘던 J씨가 갑자기 되돌아와 물었다. “그런데 제 친구는, 병원에서는 왜 못 알아낸 겁니까? 선생님은 단박에 알아 차렸는데도요.”


첨단 장비로도 중풍 흔적 못 찾아


J씨의 말대로 병원에서는 중풍이 한 번 지나간 것을 알지 못했다. 최신식 첨단 장비로 몸 속을 샅샅이 헤쳐보고도 J씨의 두통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고 한 차례 쓸고 간 중풍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반면 나는 한순간에 J씨의 병을 보았다. 최신 진단 장비가 아닌 술자(術者)의 감각으로 나는 병을 찾아냈다. 제아무리 첨단 기계라 해도 인간에게는 기계가 흉내 내지도 따라오지도 못하는 구석이 있다.

나는 중풍을 한 번 가볍게 맞은 사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중풍은 몸의 반(半)이 고장나는 병이다. 그래서 한 번 가볍게 왔다하더라도 중풍을 맞은 사람은 반드시 어느 한쪽이 무력해지게 된다.

이런 사실을 알고 주의 깊게 살펴보면 아주 조그만 차이라 해도 알 수 있다. 이마의 주름살 한쪽이 더 쳐져 있을 수도 있고 눈 한쪽이 약간 덜 감기거나 조금 미세하게 한 쪽으로 치우칠 수도 있고 얼굴이나 몸 한 쪽의 감각이 다른 쪽에 비해 무디거나 힘이 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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