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가문화촌에 의병기념사업을 한다고 할 때부터 내키지 않았다.
다시 알아보니 다각적인 면을 지니고 있어 단편적으로 호불호를 따질 성질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업이 중복되네, 위치가 안 맞네, 추성관이 무엇이기에…” 이런 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자 ‘21세기 민본주의’에 가장 어울리는 사업이라는 사족까지 달았다.

당시 단 하나의 주장이란 “이제는 진정 민초들을 위한 기념탑”을 세우자는 것이었다. 의병이 있어야 의병장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므로 이제까지의 선양사업과는 다르게 순수 민초들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이른바 ‘현대형 선양사업’을 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채널은 약했고 이런 의사는 전혀 언급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담당부서는 ‘임난 한말 창의기념사업’이라 하여 시대를 두고 창의를 구분하고 급조된 기념사업회는 목소리가 높았다. 결국 최초 착안된 사업과는 판이하게 진행되며 모호했던 부분은 덮어지고 확실하지 않은 부분은 그냥 넘어갔다.

결국 지표조사에 걸려 한 이년 지나가버리니 “중단했다 갑자기 해 치운다”는 웃지 못 할 기사도 나왔지만 이런 시간적 간극은 오히려 다행이다. 시대적 금자탑을 쌓아올릴 여유가 생겼다고 역발상을 가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창의기념사업은 시대적 과업이다. 우리가 한다 해서 우리 것이 아니요 한 번 하면 천년을 두고 이어질 것 있다.

지금까지 터덕거린 창의기념사업의 전철을 여기에 복구하지는 않겠다. 단, 창의기념사업에 들어갈 추성각의 직접적 연관성이나, 상징물의 성격을 놓고 의견이 분분해 묵과할 수 없다.

역사는 협의의 대상이 아니다. 오욕의 역사든 위대한 역사든 역사는 역사로서 존재할 때 가치 있는 것이다. 창의기념사업에 논란이 있는 자체가 치욕이다.

경북 의령군은 1975년 곽재우 장군이 의병을 일으킨 1592년 4월 22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6월 1일을 ‘의병의 날’로 지정하고 의병기념사업회가 구성된 지 40년 만에 그리고 ‘의병의 날’이 지정된 지 35년 만에 ‘의병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승격시키는 결실을 거뒀다. 국가기념일이 되면 공휴일은 아니지만 행사 등을 정부에서 주관한다.

호남 의병들이 진주성 혈전으로 모두 전사하자 이순신 장군은 당시 사헌부 현덕승과의 서한에서 ‘竊想湖南國家之保障 若無湖南是無國家’ (절상호남국가지보장 약무호남시무국가: 국가를 보장하는 호남을 도둑맞아 호남이 없다면 나라도 없다)라는 구절을 담아 답장을 보냈다.

이를 보듯 호남의병은 당시에도 지금도 언급조차 조심스러운 ‘국가적 무게감’을 가지고 있다. 만고에 자랑스러울 일을 하려면 티끌만큼의 감정도, 치우침도 없어야 한다. 담양은 호남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창의기병지(創義起兵地)이다.

이 무게감을 이기고 그 무게에 걸맞게 사업을 하려면 껍데기는 버려야 한다. 신성한 사업에 중구난방 말이 많은 것은 이미 엇나간 징조이다. 이제는 민주(民主)의 시각에 맞추자. 지금껏 수백년이 흘렀어도 아무도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이제는 그들의 이름을, 그들의 정신을 일깨우자. 대전 현충원도 무명용사의 탑이 중앙에 가장 높이 솟아 있고 그 자체가 신위다.

이름 없이 사라져간 민초 의병들을 위한 기념탑이 세워진다면 이 나라에서도 기념비적 사업이 될 것이요 헤게모니 싸움이나 사당 논란도 사라지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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