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순 교수(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올해는 꽃소식과 총선이 겹치다 보니 상춘인파가 예년같지 않은 듯하다. 불법선거운동 단속으로 인해 합법적인 꽃놀이 관광수요 마저 위축된 탓일 것이다. 그래도 학생들의 페이스북에는 서울 여의도 벚꽃 야경 사진들이 올라온다. 꽃을 보며 봄을 즐길 여유나 공간이 부족한 수도권 서민들에게 저렴하게 봄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이 여의도 한강변 벚꽃길이다.

봄은 4계절 중 가장 생동감이 넘치는 시기이다. 겨우내 얼어붙고, 죽은 듯 고요했던 대지에서 새싹들이 솟아나오는 모습을 보면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의 강인함과 신비함을 체험하는 때이다. 그래서 봄은 한국을 찾아오는 동남아 관광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계절의 구분없이 사는 그들에게 봄은 너무나 신비하고 아름다운 시기인 것이다.

그런데 많은 한국사람들이 봄을 외면하거나 포기하고 산다. 도시인들에게 봄은 두꺼운 겨울 옷을 벗어버리고 좀 더 얇고 밝은 옷으로 갈아입으라는 신호에 불과하다. 계절이 바뀌는 것은 지하철 1호선에서 내려 2호선으로 갈아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이 맞는 봄은 아파트 근처 비닐하우스 화원 앞에 전시된 울긋불긋한 서양화초에서 시작되어 아파트 베란다에서 마무리된다.

봄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생명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길거리 풀들은 모두 뽑아버려야 하고 집안의 벌레는 모두 잡아 없애야 하는 사람들이다. 시들어 떨어지는 꽃잎을 지저분한 쓰레기라 생각해 얼른 치워주길 바라는 사람들이다. 바로 한국의 도시인들이다.

그들은 자연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이 보다 세련되고 윤택하고 그래서 자랑스러운 삶이라고 믿는다. 철저하게 봉쇄된 수십층 고층 주상복합이 행복한 삶의 척도이다. 자연도 짜장면처럼 전화해서 배달받을 수 있는 서비스로 간주한다. 물론 모두 착각이다. 인간은 자연에서 격리되어 살 수도 없고, 자연과 멀어질수록 불안하고 불행해질 뿐이다.

지난 2월 25일자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기사에 소개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지구상에 사는 사람들 중 “행복하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이 77%에 달했다. 24개국에서 19,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이다. “아주 행복하다”고 응답한 비율도 25%였다. 그런데 한국에서 “아주 행복”한 사람 비율은 7%로 조사대상국 중 최하위권이었다.

행복한 사람의 비율이 높은 나라들은 소위 부자나라들이 아니었다. 1위는 인도네시아, 2위는 인도, 3위는 멕시코, 4위는 브라질로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였다. 5위 호주와 6위 미국만이 한국보다 국민소득이 높았다. 행복한 사람들이 많은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도시화 비율이 낮아 자연과 가까이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사람마다, 나라마다 행복하다는 기준을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소득과 행복이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 상 가장 윤택한 시기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지만 행복하다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사람들이 앞으로 모두 좋은 직장을 갖고 많은 돈을 번다고 해서 행복한 사람들의 비율이 높아질 것 같지는 않다.

소득도 중요하고 안정적인 직장도 중요하지만 자연의 피조물로서 주변 자연과 교감하며 살 때에야 비로소 자존감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좋은 직장을 갖고 많은 돈을 벌기는 어렵지만, 자연에 가까기 가서 살기는 그만큼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행복의 기준을 돈에서 자연으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비록 가진 것은 적어도 봄의 가치를 알고 즐기는 행복한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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