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환(본지 편집자문위원)

얼마 전 태안사에서 관광해설 근무를 하던 날이다. 이른 새벽부터 오기 시작한 비가 지칠 줄 모르고 내린 탓인지 종일 을씨년스러웠다. 어설픈 안내소가 있긴 하지만 그나마 난방시설도 없어 움츠리고 있던 중 안내소 바로 옆에 위치한 조태일 문학관이 생각났다.

필자가 경찰관이라 경찰충혼탑 참배를 하기위해 일 년이면 3-4회 꼬박 태안사를 방문하지만 한가로이 조태일 문학관을 들리는 일은 없었다.

마침 비가와 관광객도 없어 문학관을 갔더니 조태일 님의 ‘국토서시’가 먼저 눈에 띤다.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

이 시를 보면서 태안사의 적묵당의 의미처럼 생각은 없으나 알아차림만이 강한 한줄기 빛을 발하며 스쳐갔다.

난 애국자는 아니다 내 가족 먹여 살리기도 급급해 그 이상을 생각하는 것은 나에겐 부담이며 사치스럽다. 지금처럼 하루 세끼 굶지 않고 먹고 살 수 있음만으로도 신의 가호로 알고 살고 있는 나는 끝없이 부족한 사람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런 내가 거창하게 조국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쩌면 주제 넘는 일이다. 아울러 누구나 배가 고파서는 애국자가 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또한 물질의 빈곤이 영혼의 풍요를 가져오기도 쉽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없는 자가 고상하게 굴기란 어려운 일이다.

다만 공교롭게도 얼마 전 내가 보았던 책에 이 시구와 맥을 같이하는 구절이 그 순간 떠올랐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담벼락에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다시 그 역사를 되풀이할 운명에 처한다.” 더불어 사마천은 ‘사기’에서 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전사지불망 후세지사야 ” 지나간 일을 잊지 않고 본보기로 삼으면 어제의 역사가 내일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는 말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유대인 등 600만 명이 처형된 역사적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유대인 그들은 지금도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찾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린 어떠한가? 병자호란! 인조가 청국 홍타이지에게 올렸던 치욕의 삼배고구두! 그리고 이를 기념하도록 청태종의 강요에 의하여 세워진 삼전도비를 석천호수 옆 모퉁이에 세웠다가 이제야 잠실로 옮겼으며 어떤 사람은 치욕적인 역사 유물을 철거하라며 삼전도비에 빨간 락카칠을 한 적도 있었다.

어디 치욕의 유물을 모퉁이에 세운다고 치욕의 역사를 감출 수 있으며, 더욱이 락카칠을 한다고 어떻게 그것이 애국적 행위란 말인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감추려는 어리석음이다.

차라리 다시는 그와 같이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는 결의와 후세의 교훈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서울 중앙로에 박물관이라도 세워서 관리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1000년이 훨씬 지나버린 지금 소크라테스 그 분의 글은 이 순간 왜 또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조국은 어머니보다도 아버지보다도 또 그 밖의 모든 조상보다도 더 귀하고 신성한 것이다. 우리는 조국을 소중히 여기고 순종해야 한다. 조국이 명하는 바를 쫓아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요 또 정의의 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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