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호 순 (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흔치 않지만 살면서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여행 중 아름다운 풍경에 감동을 받기도 하고, 책을 읽다 작가의 통찰력에 감동을 받기도 한다. 퇴근 길 지는 노을빛에 가슴이 울컥해지기도 한다.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에서 우리의 삶을 자극하는 것이 감동이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감동을 받기란 쉽지 않다. 우리가 보고 듣는 것 대부분은 감동보다는 탄식과 분노를 일으키는 것들이다. 감동적인 사람들을 만나기란 더욱 쉽지 않다. 어릴 적 위인전을 많이 읽었지만, 나의 심장을 뛰게 한 위인들은 기억나지 않는다. 성인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갔지만 감동적인 사람들은 드물었다.

그래도 나의 인생행로를 바꿀 정도로 감동을 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지난 8일 72세로 타계한 성유보 선생이다. 언론계에는 널리 알려진 분이지만 일반 독자에게는 생소한 인물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다 독재에 항거한 이유로 해직을 당했고, 한겨레신문 창간 주축으로 편집국장을 지냈다. 96년 총선에 출마해 고배를 마신 후, 줄곧 야인으로 머물면서 언론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분이다.

필자가 성유보 선생을 만난 것은 90년대 후반이었다. 그는 민주언론운동연합 이사장이었고, 필자는 지역언론도 언론민주화운동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진학자였다. 당시 필자가 성유보 선생을 만나지 못했다면 필자는 지역언론을 연구하는 언론학자로 남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의 원래 전공인 언론법이나 언론윤리 분야나, 아니면 디지털이나 인터넷 등 연구주제도 다양하고 연구자금도 많은 신흥 미디어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었을 것이다.

90년대 후반만해도 지역언론은, 특히 풀뿌리 지역언론은 언론으로 간주되지 않던 시대였다. 언론민주화 운동도 방송민주화나 소위 “조중동”에만 집중하던 시절이었다. 언론지원기관인 한국언론재단의 각종 통계자료에 주간신문은 포함되지도 않았고, 각종 교육이나 기금지원 대상에서도 제외되었었다. 전국 대부분의 대학에 신문방송학과 전공이 있었지만, 지역언론을 연구하는 교수들은 극히 드물었다.

성유보 선생에게도 지역언론이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필자가 주장하는 지역언론의 중요성과 가능성을 진지하게 수용한 몇 안되는 중앙언론 출신 인물이었다. 그는 필자의 주장, 즉 중앙언론의 독과점 폐해를 해소하는 수단으로서 지역언론이 중요하다는 주장에 동의했고, 언론민주화 운동에 지역사회와 지역언론을 포함시켰다. 필자는 언론민주화 운동에 참여했고, 대전-충남, 경남, 전북 등 일부 지방에서도 언론시민운동이  뿌리를 내렸다. 2004년에는 지역신문발전법이 국회에 제정되었고, 한국의 지역언론도 명실상부하게 언론의 일부로 인정받는 시대가 되었다.

필자가 성유보 선생에게 감동을 받은 것은 지역언론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 때문만은 아니다. 그에게는 한국의 대다수 중앙언론인들에서 배어나오는 객기나 허세나 냉소를 찾아볼 수 없었다. 반독재 투쟁을 벌인 몇 안되는 강골 언론인이었지만, 성유보 선생처럼 부드럽고 인자하며 겸손한 언론인도 드물었다. 자신이 지역언론에 대해서 충분히 알지 못하다는 것을 부끄럽고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지역을 다니며 지역언론에 대해 배우고 체험한 분이다.

성유보 선생이 민주언론운동연합 이사장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면서, 필자가 그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민주화 진영이 추진했던 “언론개혁”이나, 지역언론계가 추진한 지역언론 활성화도 큰 결실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지역언론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크게 줄었고, 지역언론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크게 늘었다. 풀뿌리 지역언론을 사랑해준 성유보 선생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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