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석(발행인)

 

필자가 강원도 철원에서 군종사병으로 근무 할 때다.

그 해 12월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부대에서는 예수를 믿는 병사들이 모여 저녁마다 성탄 전야 예배 때 특송으로 부를 캐롤을 연습하고 있었다. 고요한밤, 노엘 송, 기쁘다 구주 오셨네 등 5곡을 선정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늦도록 화음을 맞췄다.

다행히 입대 전 교회에서 성가대 활동을 했던 병사들이 상당수 있어 그런대로 코러스가 구성됐고 부지런히 연습한 결과 ‘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에 버금가는 훌륭한 실력(?)이라는 극찬까지 받으며 성탄 전야 예배를 멋지게 장식했다. 예배가 끝나고 우리 단원들은 박봉을 모아 마련한 조그만 선물들을 정성껏 포장해 학생들에게 나누어주며 아기예수 탄생을 축하했다.

당시 필자는 우리 부대가 주둔해있던 마을 교회에서 중고등학생들을 가르치는 반사로 사역을 하고 있었는데 그날 예배가 끝나자 10여명의 학생들이 저마다 선물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 볼펜에서부터 장갑까지 선물을 한 보따리 안고 예배당을 나서는데 저만치 어둠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러 세웠다.

“선생님, 저 선미인데요.” “응, 선미야 근데 너 왜 들어오지 않고 거기 있는거니?” “선생님 성탄 축하합니다. 근데 실은 제가 선생님 선물을 준비 못했거든요, 죄송해요.” 말을 마친 선미는 황급히 달아나 버렸다. 얼떨떨한 기분도 잠시,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소용돌이가 밀고 올라오더니 이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선미는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이었는데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가정형편이 무척 어려운 학생이었다. 동네분들 이야기로는 근근이 끼니를 잇기도 어려운 형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선미는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는 편이었고 신앙생활도 열심이었다. 항상 밝은 표정으로 매사에 적극적이었던 선미의 얼굴이 오늘따라 무척 우울하게 보였던 것은 비단 선생님에게 줄 선물을 마련하지 못해서만은 아니었으리라.

하나님 앞에 경배하고 기쁜 마음으로 캐롤을 합창하고 서로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아기예수 탄생을 축복했지만 오늘 우리가 드린 예배는 결코 하나님께서 열납하지 않으신 헛된 예배였음을 순간 깨달았다.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해 아흔아홉마리의 양을 버려두고 길을 나서지 않았던가. 열 자식 중에 한 자식이라도 마음에 걸리면 나머지 아홉 자식이 아무리 잘해도 마음이 편치 않는 것이 부모의 심정일진데 부모의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불효자식의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통회기도를 올렸다.

나의 기도가 통했던지 다음날 성탄 예배에 참석한 선미와 선미할머니에게 목사님은 큰 선물을 주셨다. 장학금과 함께 쌀 한가마를 선물로 주신 것이다. 목사님께서 “천국에서 가장 부귀영화를 누리실 선미할머님께 미리 투자하는 것이니 천국에서 몇 배로 갚아주실 것을 믿는다”고 말씀하시자 성도들은 우렁찬 목소리로 “아멘”을 외쳐 화답했다. 그날은 시종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감격과 회한 속에 예배를 마쳤다.

그로부터 30년이 훌쩍 넘은 세월이 지났지만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잊혀지지 않고 선미의 얼굴이 떠오른다. 지금은 50살 아줌마가 되어있을 선미지만 아직도 내 가슴속에는 단발머리 꼬맹이 선미의 기억이 생생하다.

이제 며칠 후면 크리스마스다. 혹시 우리 주위에 선미처럼 크리스마스 선물을 마련치 못해 우울해 하고 있는 어려운 친구는 없는지 한번쯤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진정 하나님께서 마음 아파하는 가정은 없는지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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