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호 순 (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나이가 들면서 얻는 것이 성숙함이다. 세월이 가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사람사는 이치를 깨닫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치 중의 하나가 똑같은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수십년을 살아도 나와 같은 사람은커녕, 비슷한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같은 부모를 둔 형제나 자매도 심지어는 외모가 같은 쌍동이도 성격이나 개성은 사뭇 다르다.

인간의 불행은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은 것을 강요할 때 생긴다. 그래서 획일을 강요하는 독재권력 하에서 인간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소득수준이 늘어나고, 생활환경이 편리해졌지만, 대다수 국민들이 아직도 행복하지 못하다. 여전히 자신의 개성대로 살지 못하고 남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유아기나 청소년 시절의 인간은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기 보다는 남과 다르지 않다는 것에 더 집중한다. 자아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고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는 탓이다. 문제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개성보다는 남을 따라가는데 급급해, 사춘기 시절의 자아불안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나를 되돌아보고 나에게 충실하기 보다는, 남들이 보는 나에 치중한다.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품으로 과시하고, 성형수술로 제 모습을 감추려는 사람들이다.

“사춘기 성인”들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과시하는 수단 중 하나가 소위 명품이다. 장인들이 개별적으로 만든 수제 명품을 구매할 경제력이 안되니 공장에서 찍어낸 짝퉁이라도 사서 들고 다닌다. 아니면 유명인사나 TV 드라마에 등장한 연예인들이 사용한 소품이라도 들고 다니며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킨다. 그 결과 유명인사나 연예인들이 TV광고에 한국처럼 많이 등장하는 나라도 드물다. “사춘기 성인”들이 다수를 차지하다 보니 한국사회 자체가 “사춘기 사회”가 될 수 밖에 없다. 여론이 금방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고, 이런 유행과 저런 유행에 따라 가느라, 종잡기 어려운 사춘기 청소년의 심리상태처럼 한국사회가 방황한다.

한국 사회를 사춘기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하는 것이 언론이다. 청년의 용맹함이나 중년의 원숙함이나 노년의 초월감을 한국 언론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 사건이나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을 다루는 언론을 보면, 기자들은 우르르 떼거리로 몰려다니고 신문지면과 방송화면은 대동소이한 내용으로 채워진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제목만 조금 다른 동일한 내용의 기사가 수십건에 이른다. 각종 시사토크 쇼에 등장하는 인사들의 언사를 보면 정서불안 사춘기 청소년과 다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춘기의 또 다른 특징은 쉽게 잊고 지나간다는 점이다. 언론보도를 통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지만, 그러한 사건들 대부분 흐지부지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마련이다. 언론보도가 세상사의 이면을 보지 못하고 세상사의 흐름을 짚어내지 못하는 사춘기 청소년의 시각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언론이나 여론이나 문제의 근본을 짚어내기 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을 좆아 다니기 급급한 탓이다. 또 다른 대형사건이 터지면 그곳으로 우르르 언론이 몰려가고 여론의 관심도 결국 거기에 따라간다.

한국 사회의 사춘기적 행태는 지역사회 발전에도 큰 장애물이다. 지방은 서울에서 만드는 언론보도와 대중문화를 좆아 가기 바쁘고, 그러다 보니 문화적으로 늘 뒤처진 곳으로 존재한다. 지역사회 고유의 삶과 문화를 존중하고 개발하기 보다는 서울 흉내내기에 급급하다. 인간이 자기 고유의 성격에 맞추어 살아야 하듯, 지역사회도 고유의 개성을 유지하며 존재해야 한다. 동일한 인간이 없듯, 동일한 지역사회도 없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담양곡성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