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권철(담양군 봉산면장)

 

우리 면은 자식이나 배우자 없이 홀로 지내는 노인들이 약 260명이나 됩니다. 면내 65세 이상 노인 인구 890명 가운데 거의 3명중 1명꼴인 셈입니다.

홀로 사는 노인이라고 해도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건강하다면 문제가 될 리는 없을 것이나, 숙환으로 거동이 불편한가 하면, 심지어 이웃이나 가족 간 왕래 없이 고립돼, 외롭고 쓸쓸하게 사는 노인들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정부는 노인장기요양보험, 노인돌보미, 홀로 사는 노인 생활관리사 안부살피기, 가사간병 도우미 등과 연계해 전화나 방문으로 가사활동과  건강을 챙기고 있습니다.

이 같은 정책만으로는 소외되고 고독한 노인들을 충분히 위로하고 문제를 해결해 주기에는 다소 미흡합니다. 지금까지 건강과 경제적 지원에 치중했다면, 앞으로는 사회 ? 정서적 면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 사회는 진정한 의미의 노인복지를 말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노령화는 줄달음을 치고 있는데 노인들의 살갗에 닿는 복지행정은 소걸음을 걸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가족의 역할과 함께 지역사회가 자식 노릇을 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여 실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봉산면에서 아프고, 외롭고, 궁핍한,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2014년 세밑 온정 나눔 캠페인을 6주간 전개한 이유입니다.

2014년 10월 20일 오전, 평소처럼 농협 어르신 사랑방에 들러 안부를 살피고 사무실에 오니, 정경미 복지담당이 독지가 한 분이 이웃돕기를 한다고 얘기를 합니다. 어? 그게 무슨 소리, 복지상담실에서 이야기를 들어 봅니다.

작년 연말에도 털신과 난방유를 기부했는데, 올해는 면과 상의해서 더 많은 기부를 할 생각이라는 겁니다. 바로 면장실에 올라와서 바쁘게 옛날 서류를 찾고 인터넷 관련 기사를 출력합니다.

5년 전 면장으로 처음 일 했던 곳에서 ‘노행(老幸)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추진했던 ‘따뜻한 겨울나기’와 ‘건강한  여름나기’ 서류입니다.

자료를 챙겨서 사무실로 내려가는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내게 이런 기회가 다시 찾아오다니 신이 났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자유이며, 자유를 통해서 행복을 얻으면, 그것이 공직의 보람이기 때문입니다.

복지담당과 박혜숙 주무, 새내기 한국화 주무, 정정녀 주무에게 과거 자료를 보여 주고 눈치를 살핍니다. 이렇게 한 번 해 볼까요? 말을 건네니 모두 말이 없습니다. 잠시 후 작년 상황을 어렵게 제게 말해줍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시작하지 말자. 독지가의 뜻에 따라 판을 키워보자, 누구를 위한 일인가 등등 대화가 이어지고, 마침 해보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아, 이럴 때 쓰라고 있는 유식한 말 한마디가 바로 갑론을박(甲論乙駁)일 것입니다.

바로 독지가를 찾아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연계하여 개인별 요구 물품 파악은 봉산면이, 물품 선정과 구입은 독지가가, 전달은 봉산면과 독지가가 함께하는 전반적인 과정을 말씀드렸더니 기부 물품에 상한을 두지 말라는 말을 합니다. 일단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는 의미 있는 눈빛을 우리끼리 나눕니다.

지원 해드릴 대상은 홀로 사는 노인으로 정했지만 정작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는 물어보고 결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딱 맞는 물품을 드릴 수 있으니까요.

우선 몇 가지 구급약품과 겨울철에 필요한 물품들을 정하고, 11월 17일부터 12월 5일까지 3주간, 노인 사정을 잘 아는 생활관리사들과 함께 260명의 가정과 경로당을 찾아가 설명을 하고 요구사항을 듣습니다.

노인마다 무엇 때문에 조사를 하고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등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니 머리가 멍멍합니다. 새내기 한국화 주무는 “공직자가 이런 일을 하는지 처음 알았고, 노인 분들의 생활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복지욕구를 조사한 후 독지가와 상의하여, 구급물품인 파스, 밴드, 반창고, 상처치료제 그리고 칫솔과 조끼를 전체 노인에게 지급하며, 전기매트와 난방유는 필요한 분들께 지원하기로 하고, 물품을 구입하고 전달 계획도 마련했습니다.

12월 10일 택배로 받은 물품들이 산더미입니다. 1층에서 2층으로 물건을 옮기는데 몸이 약한 정정녀 주무가 앞장서니, 저도 무리했다가 다리에 쥐가 났습니다.  모두 나서서 2시간 동안 꾸러미를 만들고, 물품을 배경삼아 사진 촬영을 합니다. 모두 수고했습니다.

12월 15일부터 물품을 전달하러 남우주 복지담당 ? 주무관과 함께 노인 분들을 만나러 갑니다. 차가운 눈바람이 쉼 없이 얼굴을 때립니다. 차로 5분을 달렸습니다. 마을에서 내려 골목길을 한 참 올라가니 산 밑에 집 한 채 있습니다. 이곳이 최 할머니께서 홀로 살고 계신 곳입니다.

할머니 하고 연신 부르니, 문을 열고 나오시는 모습이 곱습니다. 묻기도 전에 서울살이 40년을 접고 고향에 내려왔다고 말씀하십니다. 고향에 오랜만에 오니 참 좋은데 말벗이 없다고 합니다. 마을 경로당에 나가서 노세요 했더니, 서울서 왔다고 눈치를 해서 한두 번 가고 말았답니다.

가지고 간 물품을 풀어 설명을 합니다. 반창고를 보시더니 손끝이 갈라져 아픈데 약국이 없어 사지 못 했다며 바로 붙이십니다. 말씀 한마디에 진심이 느껴집니다. 같이 온 정정녀 주무가 어머님 아끼지 말고 쓰세요, 또 드릴께요 라고 말하는데 그만 콧등이 시큰해집니다. 집을 나오는 데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 인사를 하는 모습이 아직도 어른거립니다.

걸어서 김 할아버지(87) 집을 찾아 갑니다. 마침 운동을 가기 위해 나와 있는 할아버지께 인사를 합니다. 정정하시고 말씀에 힘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인상적인 모습 뒤에 숨겨진 어르신의 형편을 집에 들어가자마자 알게 되었습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섰는데 방바닥이 차가워 까치발이 서집니다. 낮에는 침대 위에 깔려있는 전기 매트가 유일한 온기입니다. 저녁에는 어떻게 주무세요? “방안온도를 13도로 맞춘 기름보일러를 틀고, 마스크를 쓴 채로 주무신다”고 합니다.

물론 광주에 있는 아들, 며느리가 반찬도 가져오고 수발을 합니다. 한 쪽 무릎이 너무 아파 수시로 병원치료를 받으며, 매일 2000보 걷기로 재활을 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것 있으세요? 라는 물음에, “다리가 아파 방 청소를 할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또 말벗이 없어 외롭다고 합니다. 나이가 많다보니 친구들은 죽고, 나이가 아래인 노인들은 말 상대를 해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십니다. 할아버지께 정작 필요한 것은 이웃의 지속적인 관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만나본 홀로 사는 노인들의 생활은 비슷합니다. 찾아오는 자식들은 거의 없고, 식사는 혼자 해결하며, 기름 값이 아까워 전기장판 하나로 추운 겨울을 지내고 있습니다. 홀로 사는 노인 분들을 만나고 와서 느낀 바는 많은데, 가슴만 먹먹해져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물품을 드리면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라는 인사말조차 하기 죄송스러운 생활을 하고 계시는 노인 분들을 위해 따뜻한 사랑 나눔이 계속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노인들의 오늘이 바로 우리의 내일입니다. 노인은 누구나 존엄성을 유지하고 존경을 받으면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나눔이란 많은 것을 가져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적더라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나눔의 의미라고 봅니다. 나도 어렵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나서야 합니다.

6주간의 세밑 온정 나눔 드라마는 끝났지만 ‘고령사회’ 우리 면 어르신들이 지금보다 더 건강하고 안전하고 활기찬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번 온정 나눔 실천에 밑거름이 돼 주신 독지가, 몸과 마음으로 참여해 주신 동료들께 이 지면을 빌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우리 면의 어렵고 외로운 분들과 함께 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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