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순 태(소설가)

꽃비가 불불 날리던 날 담양 죽녹원으로 나들이를 했다. 서울에서 출판사를 경영하는 후배가 가족들과 함께 담양으로 인문학 기행을 왔다고 했다. 봄볕 짱짱한 주말, 죽녹원은 관광객으로 넘쳤다. 이제 담양이 남도답사 1번지임을 실감케 했다.

대숲이 뿜어낸 음이온을 흠뻑 마셔서인지  한결 머리가 맑아진 나는, 고등학교생인 후배 아들에게 “대나무 하면 뭐가 생각나지? ”하고 물었다. 나는 아이에게 인문학테스트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아이는 “푸르고, 곧고, 속이 빈 것”이라고 극히 상식적인 대답을 했다. 나는 더 생각해보라고 했지만 대답이 없었다. 옆에 있던 아이 아버지가 “사군자의 하나” 라고 하자 아이는 이어 “오우가”라고 했다. 아이는 더 이상 생각나지 않는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선비정신도 있고 죽창을 든 동학군이나, 오죽헌, 소설 죽부인전, 죽림칠현, 죽간, 죽시, 죽비, 묵죽, 피리 대금 같은 대나무로 만든 관악기도 있다고 말했다. 문학 역사 철학 미술 음악 등 대나무가 갖고 있는 인문학 소재는 실로 무한하다.

 나는 만파식적(萬波息笛)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다. 신라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감은사를 짓고, 해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으로부터 대나무를 얻어 만든 피리를 불었다. 이 피리를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병이 나으며 가뭄 때 비가 오고 바다의 물결이 잔잔해졌다. 만파식적 대나무 피리소리는 천하를 화평하게 하며 모든 인간의 번뇌를 잠재우게 한다 하였는데, 이는 범종 (梵鐘)이 갖는 뜻과 같다. 범종에 만파식적 형태의 음통(音筒)을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대나무 피리소리는 평화의 메시지를 상징한다.

선비들은 사군자 중에서도 대나무가 군자의 맑은 덕(淸德)을 상징한다하여 특별히 좋아했다. 고려 문인 이인로(李仁老)는 대나무를 맑은 친구(淸友)라 하였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양죽기(養竹記)라는 글에서 푸르고 곧고 마디와 비어 있음 외에, 여간해서 뽑히지 않은 튼실한 뿌리를 강조했다. “ 대나무 뿌리는 견고하니 ,견고함으로써 덕을 세우므로, 군자는 그 뿌리를 보면 잘 세워 뽑히지 않을 것을 생각한다.”고 했다. 곧음은 군자다운 강직함, 푸름은 불변의 절개, 마디는 절제와 결단력, 비어있음은 진공묘유(眞空妙有)의 깊은 철학과 무욕을 상징하는데, 그 외에도 뿌리의 견고함을 첨가한 것이다.

시인묵객들은 대나무에 대한 시를 쓰고 묵죽 치는 것을 즐겨했다. 김시습(金時習)의 시  산중죽(山中竹)과 김삿갓의 죽시(竹詩)가 널리 알려져 있거니와, 이정(李霆),신위(申緯), 유덕장(柳德章)의 대 그림은 조선조 묵죽삼절이라 일컫는다. 또한 당대 선비라면 누구나 다투어 갖기를 소원했다는 화순의 양학포 (梁學圃) 묵죽과 진도의 허소치(許小癡) 대 그림도 유명하다. 

나는 대나무 시 중에서도 복효근의 <어느 대나무의 고백>을 좋아한다. / 늘 푸르다는 것 하나로/ 내게서 대쪽 같은 선비의 풍모를 읽고 가지만/ 내 몸 가득 칸칸이 들어찬 어둠 속에/ 터질 듯한 공허와 회의를 아는가/ 고백컨대/ 참새 한 마리의 무게로도 휘청댄다/ 흰 눈 속에서도 하늘 찌르는 기개를 운운하지만/ 바람이라도 거세게 불라치면/ 허리뼈가 뻐개지도록 휜다 흔들린다/ (중략) 

죽녹원에서 내려와 담양세계대나무박람회 홍보관에 들렀다. 담양군은 145억을 들여 9월17일부터 열리는 대나무 엑스포 준비로 바쁘다. 담양하면 대나무를 떠올릴만큼 브랜드 가치가 뚜렷하다. 우리나라 대나무 총면적 7039ha 중 담양이 25.5%를 차지하고 있다. 1998년에 대나무박물관을 개관했고 대나무 관련 무형문화재도 많다. 채상장,참빗장,죽렴장,낙죽장,부채장 문화재와 악기장 명인 준명인 등 19명이 대나무문화의 전통을 이어간다. 또한 3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전국 유일의 청죽시장이 열리고 있다.

이런 연유로 담양에서 세계대나무박람회가 열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더욱이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들이 잔뜩 탐을 내고 있는 터에, 담양이 먼저 선점한 것은 매우 잘한 선택이다. 그런데 이번 박람회에서는 대나무의 약리적가치, 산업적가치, 환경적가치보다는 인문학적가치를 다양하고도 집중적으로 드러냈으면 어떨까 싶다. 담양은 소쇄원 면앙정을 비롯 정자문화와 가사문학으로 유명하다. 이제 산업시대는 가고 인문학시대가 왔다. 대나무의 인문학적가치와 선비문화를 접목시킨다면 보다 새로운 인문주의적 박람회가 되지 않을까. 이제는 산업적가치보다 인문학적가치가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대나무박람회를 꿈꾸어 온 최형식 담양군수의 고민은, 대나무의 인문학적 정신 승화로 군민들이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지역경제를 살리느냐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처음 열리는 이번 박람회에서는 대나무가 갖고 있는 산업적, 환경적, 인문학적 가치를 통섭하고 공유하는 장으로 만들어, 장차 경제적가치를 창출하는 터전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담양군의 앞으로 과제는 적어도 1만ha의 대나무 숲을 조성이고, 대나무의 활용도를 높이는 일이라는 것이다. 죽녹원을 중심으로 1만ha의 대나무 숲이 조성되면 음이온이 풍부하여 힐링을 위한 체류형 관광객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콘크리트 담을 울타리로 바꾼다면 대나무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담양의 모든 담이 대나무 울타리로 바뀐다면 이 또한 담양의 브랜드가 될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 대나무 건축자재활용, 섬유산업 등 신산업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도 큰 과제다. 중국은 이미 대나무를 건축자재로 활용 대형 대나무 건축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동남아에서는 이미 섬유산업을 시작하고 있다고 한다. 

암튼, 9월이면 죽녹원 미디어아트관 묵죽 그림에서 대 숲에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퇴영적 산업재료에 불과했던 대나무가 박람회를 통해 사람과 만나 인문학의 꽃을 피우고, 미래 산업의 중요한 신소재로 거듭날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담양곡성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