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과 죽음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지만, 누구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그래서 “마음은 청춘”이라며, “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흥얼거리며 자신의 늙음을 부인하곤 한다. “노인”이라는 말도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되는 금지단어가 되었고, 대신 “어르신”이란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50대 후반에 접어든 필자도 “아! 나도 이제 늙어가는구나!” 깨닫는 순간들이 늘어나고 있다.

어느 때인가부터 밤10시면 잠자리에 들고, 새벽 5시면 눈이 떠진다. 늘 밤 12시가 넘도록 책보고 글쓰며 살아왔는데,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고교 동창 친구가 자기는 월요일 밤 KBS 가요무대를 제일 기다린다고 했는데, 난 졸음이 와서 그 시간에 눈 뜨고 버티기조차 힘들다.

몇 년 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하나도 안 변했네!”하며 반갑게 인사하지만, 그저 표현만 그렇게 한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인사조차 받지 못하면, 더욱 확실히 내가 늙었음을 알 수 있다.

낯선 모임에 나가면 내가 가장 연장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많은 선배님들은 도대체 무얼 하고 계시기에 이렇게 어린 것들만 설치고 있는지 개탄하면서도, 이제 나도 이런 자리에는 나오지 말아야할 나이가 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직장을 그만 둔 친구들이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보다 더 많다. 공무원으로 일하는 필자의 고교동창들은 내년도부터 본격 퇴직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65세 정년인 대학교수를 무척 부러워한다. 그 친구들은 40년간 직장생활을 했지만, 필자는 27년 밖에 못한다. 그런데 학교는 11년을 더 다녔다.

사실 늙음은 행복과 비례한다. 적어도 해외에서는 그렇다. 2010년 미국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비율이 50대 중반에 최저점을 찍었다가, 이후로 급격히 올라가 70-80대 일수록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았다. 2013년 영국의 조사에서도 거의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젊은 시절의 고단함을 벗어나서 여유롭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노인들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과거 농경사회 노인들은 자식들에게 농사일을 맡기고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시골의 논과 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모르는 애물단지가 된 경우가 허다하다. 늘어나는 휴경지와 폐가들은 농촌 노인들의 팍팍한 현실을 입증한다.

도시 노인들의 처지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60년대 산업화시기 도시에 정착한 지금의 도시 노인들은 영화 “국제시장”에서 묘사하듯 열심히 일한 세대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서구의 노인들에게 제공되는 사회적 보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이 모아 둔 돈도 거의 없다. 직장의 사슬로부터 해방되고 자녀양육의 책임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그러한 자유와 여유를 누릴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결국 노인들도 생계를 위해서 일해야 하는데,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이 자랑하는 디지털 기술이 한국의 노인들에게는 저주나 다름없다. 땅을 파고, 기계를 만지고, 사람들을 마주보고 거래하며 평생 생계를 유지해왔던 노인들에게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일터에서는 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택시기사도 아파트 경비도 디지털 시스템에 익숙해야 일 할 수 있는 세상이다. 노인들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려면 노인들에게 디지털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생활을 위한 디지털 교육은 물론이고, 생존을 위한 디지털 교육도 필요하다.

KBS “가요무대”를 권하는 친구에게 도저히 졸려서 그 시간에 TV를 볼 수 없다고 했더니, 컴퓨터로 다시보기를 하면 된다고 알려준다. 곧바로 아이패드로 TV 다시보기 앱을 다운로드해서 프로그램을 검색했다. 그래도 아직 “가요무대”를 보며 즐거워할 나이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일요일 밤 12시 넘어서 시작하는 “콘서트 7080”이 내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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