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순(곡성민주사회단체협의회 대표)

 
숲속에 조그만 오두막집을 짓기 시작한 것이 지난 한여름 뙤약볕 아래였는데, 생전 망치질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서투른 솜씨였던지 살얼음이 어는 지금까지도 완성치 못하고 낑낑대다가 볼일 때문에 틈을 내어 산 아래 면소재지에 있는 고달우체국에 들렀더니 직원모두(두 사람)가 일어서서 반갑게 맞이하면서 우엉차 한잔을 따끈하게 끓여주었다.

시린 손을 녹이면서 차를 마시고 고마운 마음으로 문을 나섰다. 그 후로도 가끔씩 그곳에 들를 때마다 따끈한 우엉차로 몸과 마음을 녹이곤 했다.

내가 국군장병에게 위문편지를 쓰던 어린 시절, 가까운 집안의 작은아버지 한분이 우체부(집배원)로 계셨다. 지금은 집배원 아저씨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시지만, 그때는 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우편물을 배달하곤 했다. 그런데 작은 아버지께선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자전거를 타지 않고 작은 키에 무거운 우편낭을 어깨에 메고 불편한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하루 종일 마을마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소식을 전하셨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한여름이면 포플러그늘에 기대어 아득한 신작로를, 비바람 몰아치는 궂은 날엔 비옷위로 비를 철철 맞아가며 바람찬 죽동방죽 길을, 함박눈이 내리면 장화를 신고 눈 속에 푹푹 빠져가며 동네 앞에서 삼강원 앞 소천교로 이어지는 논두렁 사잇길을 기우뚱거리면서 걸어 다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애틋한 그리움 속의 그 옛날 우체부 아저씨 이야기다.

박근혜 게이트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집무실보다는 주로 관저에서 생활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날 필자가 몸담았던 학교로 말하자면 교장이 출근을 하지 않고 학교 안에 있는 관사에서 생활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공과 사를 구별하는 기본적인 소양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을 이 나라 최고공직자인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다. 그러니 이제 다들 그 손가락에 장을 지질 일이다.

어쨌든 박근혜대통령 탄핵안은 가결되었다. 청문회가 열리고 특검이 발동됐다고 하루 종일 TV에서 요란하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이제 지난시절 누적된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열린 것이다. 대충 넘어가지 말고 이참에 제대로 갈아엎는 기회로 삼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토록 복잡다난했던 병신년이 가까스로 지나가고 정유년 닭의 해가 밝았다. 그리고 이 겨울이 지나면 어김없이 새 봄이 올 것이다.

어릴 적, 정월대보름 무렵이면 논둑을 태우던 어른들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봄이 오기 전에 해충의 알을 태우기 위해 논둑에 불을 놓곤 했던 것이다. 까맣게 그을린 논둑은 볼썽사나운 풍경이 아니라 다가올 봄을 준비하는 농부들의 굳건한 마음이었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봄을 기다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겨울의 한 복판에서도 오는 봄을 맞이할 불길을 피워 올렸던 것이다.

그 동안 서울의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의 방방곡곡에서, 그리고 곡성군청사거리와 레저문화센터에서 끈질기게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이 바로, 선한 봄을 앞당기는 역사의 마중물이라 생각한다. 다른 이가 들어준 촛불로 앞당겨진 봄을 공짜로 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섬진강을 건너며 그 옛날 불편한 다리로 평생을 걸어 다니며 성실하게 근무했던 작은아버지가 박근혜 대통령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하다는 것을 느끼며 작은아버지처럼 오늘도 서울에서, 지방에서, 산골오지에서, 낙도에서 비가 오나 눈이오나 묵묵하게 자기소임을 다해가며 이 나라를 떠받치고 있는 이름 없는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아울러 고객을 존중하는 지극한 정성으로 오늘도 열심히 근무하고 있을 곡성고달우체국 정순열, 최보미 님께도 새해 복 많이 받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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