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 석(발행인)

 

민선4기 지방선거가 실시됐던 2006년. 선거일을 4개월 남짓 남겨둔 1월 9일 새벽, 담양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발생했다. 속칭 ‘괴문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당시 금성면에 감염성폐기물 처리공장을 짓고자 했던 이 모 씨와 담양군 공무원 박 모 씨가 당시 군수였던 최형식 군수에 대해 음해성 허위사실을 담은 유인물을 대량 살포하다 순찰 중인 경찰에 체포된 사건으로 새해 벽두부터 군민들을 경악케 만든 사건이었다.

이 괴문서 사건이 발생하자 최형식 군수 본인은 물론이고 담양군내 사회단체장들이 모두 나서 성명을 내고 추악한 내용으로 군수를 헐뜯고 음해한 비방문서를 퍼뜨린 자들을 가정파괴범 차원에서 엄벌에 처해달라고 요구했다.

비방문서에 수록된 내용은 차마 사람으로서는 입에 담지 못할 내용으로 선거 기간 동안 암암리에 지역사회에 회자되면서 최형식 군수의 낙선에 일조했다.

3월 15일을 전후해 상당수 담양군민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카톡메시지가 발송됐다. ‘담양에도 미투가?’라는 제목으로 발송된 이 메시지는 ‘요즘 지방선거가 뜨겁게 달아오르는데 후보자 중에서 혹시 미투에 해당하는 자나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는가를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항간에는 담양에도 모 후보자 때문에 금융업에 종사하는 여성이 자살을 하였다고 하고 또 다른 후보자는 여자관계가 복잡하고 또 다른 후보는 도박꾼이라고 소문이 무성하네요. 과연 이런자들 담양을 위해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이번 선거에서는 철저히 도덕적인 인물로 검증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저도 담양주민으로서 철저히 검증을 해보고 도덕적으로 흠결없고 능력있는 후보자들에게 한 표를 행사하고 열심히 도울 것입니다.’

요즘 공인들에 대한 미투 폭로가 이어지면서 정치계나 연예계에서 유명한 사람들이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혹자는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같은 미투 운동은 거의 모두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성폭행이나 성추행에 대한 고발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자업자득이라고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고 사회로부터 지탄받는 것 또한 당연하다. 그런데 이같은 사회 흐름을 이용해 선거에 나선 후보들을 은근히 비방하는 행위 또한 경계해야 할 불법선거운동이다.

‘죽홍’이라는 아이디를 통해 무차별 살포된 이 카톡메시지는 읽는 사람이 바보가 아니라면 거론된 후보가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도록 부연설명까지 곁들여 놓았다. 금융기관 운운 하면서 특정후보를 떠올리게 작성했다. 요즘 미투 운동과 결부시켜 마치 금융업에 종사하던 여직원이 특정후보로부터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해 자살한 것처럼 포장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여성이 자살을 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알려진 군수후보 A씨는 “본격적인 선거가 시작도 되기 전에 이런 저급하고 악랄한 내용의 비방전이 개시되는 것을 보면서 흡사 민선4기 선거 때 최형식 군수를 겨냥한 괴문서 사건이 떠오른다”며 “허위사실 유포도 정도껏 해야지 이쯤되면 가정파괴범 수준 아니냐”고 반문했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그게 사실이냐?”는 물음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누군가 꺼낸 말이 입으로 또는 글로 전달되고, 그 과정에서 왜곡되거나 하나둘 다른 말들이 보태져 나중에는 그 실체마저 알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중에는 너무 황당해서 웃어넘기는 것도 있지만 교묘하게 각색돼 마치 진짜인 것처럼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도 있다. 바로 선거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마타도어(흑색선전)다.

투우 경기 마지막에 소의 정수리를 찔러 죽이는 투우사를 뜻하는 스페인어 마따도르(matador)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마타도어는 근거 없는 사실로 상대를 모략하는 흑색선전 의미의 정치용어가 됐다. 결정적인 순간, 투우사가 빨간 망토로 소를 홀린 뒤 망토에 감춘 칼로 소를 죽이는 이 행위가 마치 선거판의 흑색선전과 닮았다 하여 따온 것인데 1960년대부터 선거철만 되면 등장했다고 한다. 그럴듯한 마타도어 한 방이면 선거판을 뒤집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진 ‘정치꾼’들이 선거판을 휘젓고 다니면서 생긴 저질선거문화다.

사실 마타도어를 당하는 쪽은 곤혹스럽다. 금쪽같은 시간을 해명하는 데에 쏟아 붓지만 긁힌 흠집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허위임을 밝혀내니 선거가 끝나 있더라.” 이 정도면 치명적이지 않은가?

미투 운동을 선출직에 대한 엄격한 자질을 가늠하는 잣대로 활용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폭로전은 후보 검증의 기회를 앗아갈 뿐 아니라 유권자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중대 범죄다.

다행히도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담양경찰이 상당부분 관련자들을 파악하고 금명간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이 메시지를 작성한자, 최초 유포자, 전달자 등에 대해 본격적인 소환조사를 시작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사건의 배후 또한 곧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경찰과 선관위는 철저히 배후를 밝혀서 다시는 선거판에 이같은 ‘저질 정치꾼’들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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