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재 록 (주필)

 

설날은 한식, 단오, 추석과 함께 우리나라 4대 명절 중 하나다. 삼국사기를 보면 백제 때는 서기 261년, 그리고 신라 때는 서기 651년부터 설맞이 행사를 치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듯 설날은 참으로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우리의 대명절인 것이다

그런데 설날은 우리 역사의 질곡 속에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일제 때는 설날을 잘못된 폐습이라 하여 없애려고도 했다. 이른바 을미개혁(乙未改革)부터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일제의 꼭두각시인 김홍집(金弘集)내각이 들어선다. 이들은 근대적 개혁운동을 추진한다. 단발령도 그 중 하나다.

태양력(太陽曆)을 따르는 일제는 월력(月曆)을 따르는 우리의 풍습이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하자면 음력(陰曆)을 따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니 양력(陽曆)을 따르라는 것이었다. 일제와 김홍집 내각이 을미개혁의 일환으로 설날을 없애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려 의도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일제는 설날을 구정(舊正)이라 하고 그들의 양력설을 신정(新正)이라고 했다. 그들의 설날은 새롭고 진취적인 신정이고, 우리의 설날은 잘못된 폐습인 구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폐지해야 한다고 했지만 일제의 강압적인 조치에도 불구하고 설날을 꿋꿋이 지켜나가는 사람도 많았다. 양력설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지목받아 온갖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일제는 자기네 말을 따르지 않는 한국 사람을 불온하고 불량한 자로 취급했다.

그러다가 일제는 패하여 도망가고 우리는 해방을 맞았다. 자연히 설날도 해방을 맞아야 했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양력설과 음력설에 대한 갑론을박은 해방 이후에도 이어졌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대한민국 정부는 음력설을 억제하며 양력설을 권장하는 정책을 폈다. 1954년, 정부는 양력 1월 1일부터 3일까지를 공휴일로 지정했다. 반면에 음력설은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음력설날 공공기관은 평일처럼 정상근무를 했고, 일반인들에게는 휴업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때 공직에 있는 사람은 정부의 정책을 따랐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음력설을 쇴다. 정부는 이중과세(二重過歲)의 폐단을 거론했다. 양력설도 쇠고 음력설도 쇠기 때문에 국민의 부담이 크다고 했다. 그렇지만 공직자 중에서도 이중과세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자 정부도 한 발 물러섰다. 1985년, 양력 1월부터 3일까지의 공휴일을 유지하면서 음력설날 하루를 공휴일로 지정한 것이다. 그런데 설날이라는 명칭을 아예 지워 버렸다. 정부는 음력설날을 ‘민속의 날’로 명시했다. 참으로 옹색하기 그지없는 정책이었던 것이다. 민속의 범위는 아주 넓다. 민간생활과 결부된 신앙, 습관, 풍속, 모두가 민속이다. 그리고 전승되는 문화도 민속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런데 음력설날 하루만을 민속의 날이라고 못 박아 버린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정부도 정책을 바꾸었다. 양력 1월 1일 하루를, 그리고 음력 설날을 전후한 3일간을 공휴일로 정했다. 비로소 민족의 대명절 설날이 제대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1895년 을미개혁이 이후 90년 만이었다.

이렇듯 설날은 우리 민족과 함께 수많은 시련을 견디면서 오늘에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90년 전 일제가 강제로 규정한 구정이라는 말을 버젓이 쓰는 사람들이 많다. 공공매체에 나와 아주 자연스럽게 구정이라고 말하는 정부 당국자도 있다. 물론 의도적으로 설날을 폄훼하려고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잘 몰라서, 또는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구정이라는 말이 일제의 잔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지금까지 몰랐어도 괜찮다.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명절에는 ‘구정’이 없다는 것을 알면 된다. “우리의 명절 중에 구정은 없다. 설날이 있을 뿐이다.”

 

저작권자 © 담양곡성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