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선 의원을 지낸 김효석 대한석유협회 회장(사진)이 지난 2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2세.

장성 출신인 김 회장은 광주서석초등학교, 광주서중을 거쳐 광주일고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폐결핵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이후 젊은 시절 대부분을 폐결핵이라는 병마와 사투를 벌어야만 했다.

1968년 서울대 경영학과를 입학하고 1971년 4학년 때 제11회 행정고시를 합격한다. 공직과 대기업에 근무하다 1980년 국비장학생에 선발시험에 합격하여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미국 조지아대학에서 3년 반 만에 경영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수여받는다.

1984년 한국으로 돌아와 중앙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어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의 IT 분야를 개척하고 한국기업 경영의 새로운 길을 구축한다. 이후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를 도와 경제정책을 입안하고 ‘세계에서 가장 컴퓨터 잘하는 나라’를 만들어 낸다.

1998년 국민의정부에서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원장으로 임명되어 벤처열풍과 IT강국을 만드는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이 때 만든 ‘신지식인은 이후 한국사회에 새로운 지식인의 전형을 만들어 낸다.

2000년 16대 총선에 출마하여 담양·곡성·장성 지역에서 득표율 92.4%의 경의적인 기록으로 당선된다. 이후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경제 정책을 관장한다. 참여정부시절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교육부총리를 제의 받지만 이를 고사한다.

17대 대선을 앞두고 야권통합에 앞장서 기어이 ‘대통합민주신당’을 만들어 내고 초대 원내대표로 취임한다. 이후 18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민주정책연구원 원장으로 취임하고 뉴민주당 비전위원장이 되어 당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작업에 착수한다.

뉴민주당 플랜을 완성시키기 위해 1년 6개월 동안 각계 100여명이 넘는 전문가를 만나고 수십 여 차례 현장방문을 통해 결국 2010년 민주당의 정권재창출 길라잡이 ‘뉴민주당플랜’을 만들어 낸다.

지난 대선 때는 문재인 대통령 후보를 도와 대선 승리를 이끄는데 기여했다.

정치인이기보다 선비요 학자라는 호칭으로 더 많이 회자됐던 김 회장은 지난 4일 가족들의 조용한 배웅 속에 서울추모공원 용인로뎀파크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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