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 석(발행인)

"담양에서 왔습니다."

"네~ 정말 좋은 곳에 사시는군요."

 담양 사람이 외지에 나가면 종종 듣는 소리다.

‘담양’이라는 이름 앞에는 ‘대나무고을’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거기다가 ‘가사문학의 산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내가 담양에 사는 이유다.

이른 아침 물안개로 새벽을 여는 관방천, 아직 잠이 덜 깬 고목들과 함께 하는 산책길을 나는 사랑한다. 새벽이 걷히고 아침이 열릴 즈음 건너편 메타세쿼이아는 성큼 내 품에 안겨 있다.

또 관방천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대숲은 어떤가. 이 대숲 길을 걸어보지 않고 담양을 말하지 말라고 한다면 내가 너무 감상적일까. 최소한 나는 그랬다. 이 대숲 오솔길을 자랑하며 우리 담양의 가슴이 바로 여기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들어댔다.

또 내가 아끼는 담양의 보물들이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누정 원림이다. 그 곳에 가면 당시의 내음이 스며나고 버선발로 나와 맞는 주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마냥 즐겁다. 그 중에서도 나는 소쇄원을 가장 좋아한다.

담양을 소개할 일이 생기면 반드시 이곳 역시 빠뜨리지 않고 챙긴다. 그리고 그곳을 보고 감탄하지 않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대나무와 오동나무를 심고 전설 속의 새 봉황을 기다렸던 소쇄처사의 깊은 뜻이 담겨있는 대봉대를 비롯해 흔치않은 세 짝 문을 단 광풍각, 금방이라도 양공이 버선발로 토방에 내려설 것만 같은 제월당, 이 모두를 나는 정말 좋아한다.

아주 오래전, 처음으로 소쇄원을 취재하러 갔을 때 광풍각에 드러누워 생각에 잠겨있다 흰 고무신 신은 장손 재영 씨에게 혼났던 일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떠오르곤 한다. 이른 나이에 고인이 되었지만 필자에게는 언제든지 제월당 안방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준 사람이다.

기둥이나 받침돌, 토담에 얹힌 기왓장 하나에도 음양오행에 충실해 정성을 다한 양공의 손때가 묻어있음은 쉬이 찾을 수 없는 소쇄원의 비밀이다. 이로인해 소쇄원은 전국각지에서 건축이나 조경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소쇄원은 주변의 환벽당, 식영정, 서하당정원 등과 함께 당시 호남지역의 내로라하는 학자와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던 곳이자 계산풍류의 단초를 마련한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아울러 정치적 측면에서도 소쇄원은 상당한 의미를 내포한 곳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중국의 졸정원이 넓고 크기는 하지만 아름다움이야 어찌 소쇄원에 견주랴.

직업상 전남지역 여러 곳을 거의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두루 다녀봤다. 남도답사 일번지라고 일컫는 강진의 다산초당과 백련사도 가봤고 해남의 땅끝 관광지, 고산의 혼이 스며있는 녹우당, 영암 왕인박사 유적지, 영광의 불갑사 등등...

그렇지만 사실 담양만큼 다양한 아름다움을 지닌 곳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담양을 들여다보자. 담양호에 어둠이 내리면 추월산은 금성산성과 더불어 포근히 우리를 감싸온다.

내가 담양에 사는 더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최소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담양에 살고 있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문화인이요,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예술인, 그래서 언제나 자랑스러울 수밖에 없는 담양사람이라고.

잘사는 것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옛 어른들이 말씀하듯 마음이 편하면 잘사는 것일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곳이 담양이다. 이따금 찌뿌둥한 몸을 떨치고 죽녹원 대숲에 들어 자연과 대화를 나누노라면 한결 마음이 편하고 즐거워진다. 한 발 한 발 오솔길을 오를 때처럼 앞으로의 미래도 한 발 한 발 앞서 나가는 기분이 느껴진다. 얽히고 설킨 대뿌리일지언정 상대의 뿌리가 뻗을 수 있도록 공간을 배려하는 아량을 배우는 곳도 이곳이다. 서로가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상대방의 인격과 권리를 존중하는 인간 본연의 삶을 배운다.

담양에는 소박한 마음씨를 지닌 이웃들과 잘못을 사과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친구들이 많다. 그래서 더욱 좋다. 바로 내가 담양에 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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