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년농사면 뭐해, 남는 게 없어"

수매현장에 기쁨보다는 내년 농사 걱정에 우울

2008-11-13     정종대 기자




"벼농사가 풍년은 들었지만 자재·비료값, 인건비 치르고 나면 남는 것이 없어."

13일 오전 10시 공공비축용 포대벼 매입이 시작된 수북농협 창고에서 만난 농민 심씨는 “남평벼를 가져왔는데 농기계 삯과 유류대를 지불하고 나면 사실상 손에 쥐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현재 수매가로는 전혀 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수매현장에서 만난 대부분의 농민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금기씨 역시 "1년 동안 피와 땀으로 일군 결실인데 몇 년 전만 해도 10만원을 거뜬히 받던 벼가 올해는 그 절반 값도 안된다”고 말했다.

벼 100가마를 수매한 김수완씨는 “남평벼의 경우 거름을 할 경우 도복 피해가 우려되는 품종인데 올해는 태풍 피해가 없어 추비를 한 농가들의 경우 소출이 늘어 소득 증대에 보탬이 됐다. 일미벼도 목도열병에 취약점이 있지만 출수기 태풍이 없고 비가 오지 않아 이같은 단점을 날씨가 해결해줘 풍년 농사를 이끌어 낸것 같다”고 기뻐하면서도 "영농환경이 갈수록 좋지 않아 농사짓는데 어려움이 많다. 수매 날인데도 전혀 기쁘지 않다" 고 고개를 저었다.



이날 수북농협 창고에는 경운기, 1톤 트럭을 이용하여 수확한 벼를 실고 줄이어 기다리는 등 장관을 이뤘지만 많은 농민들이 공공비축벼로 수매하기 보다는 조금이라도 값을 더 받기 위해 시중판매를 선호하는 마음에 집에 두고 온 벼 값이 뛰어 오르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주민 서씨는 “뛰는 물가에 비해 수년째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농산물 가격을 보고 있노라면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며 "공판보다 시중에 내다팔면 가격을 조금 더 쳐주긴 하지만 둘 다 비슷한 상황이라 답답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이 같이 영농환경이 열악해 지면서 일부 농민들은 농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볼까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

한 농민은 "치킨집 운영도 생각했지만 배운게 농사 뿐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자식들이 모두 장성해 종종거리면서 생활하지 않아도 돼 값을 적게 받아도 그냥 포기한 상태이다"고 말했다.

수매 검사를 맡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관계자는 "올해는 태풍 피해가 없어 지난해보다 벼 품질이 좋아 농가 대부분이 특등 검사를 받았다"면서도 "현재 농가가 겪는 어려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액수인 것 같다"고 밝혔다.



또한 농민들은 올해 처음 실시한 공공비축 톤백벼 매입에 대해서도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긍정론을 펼친 이들은 “농촌 일손은 부족한 상황이 가속될 것인데 벼를 건조해서 일일이 40kg 포대에 담아 적재한 후 수매장까지 옮기는 과정이 만만지 않은데다 포대당 200-300g을 더 담는 것도 농민들에게는 손해가 됐는데 톤백으로 수매 할 경우 일손 경감 및 사용한 포대는 다시 가져갈 수 있어 보탬이 되고 추가분도 정산하여 입금, 농민들에게 이득이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반해 부정적 견해를 가진 농민들은 “소농을 위한 정책보다는 대농 위주의 정책이라고 여길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농기계를 보유하지 않은 농가들에게는 그림의 떡이고 공공비축 배정량이 53개일 경우 40개는 톤백으로 내고 나머지는 포대벼로 수매하여 이중일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고 제도개선을 요구했다.

RPC 관계자들도 “올해 처음 시행하다보니 홍보 부족으로 인해 포대벼로 담아온 농민들도 있어 작업하는데 애로사항이 많았지만 일손 부족 현상이 심화 될 농촌의 앞날을 생각한다면 톤백 수매가 대세를 이룰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수매가격은 올해 수확기(10~12월) 전국 산지평균 쌀값을 적용하고, 지급 방식은 농가출하시 우선지급금으로 포대벼(40㎏, 특등품기준)의 경우 지난해보다 580원 오른 5만0,630원을 지급한 뒤 산지쌀값 조사결과에 따라 내년 1월 사후 정산할 예정이다.
/정종대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