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봉사는 나 자신이자 나의 삶”
다문화가정 한글 선생님 전영화 씨
“이 부분을 클릭해보세요.”, “그것은 그렇게 하지 마시라고 했잖아요.” 그러자 학생은 다정한 친구에게 말하듯이 “잘 안되네, 다시 가르쳐줘 봐”
학생 둘과 여선생 한명, 세 사람의 얼굴엔 어느새 웃음꽃이 피어난다.
나른한 오후 시간. 곡성군청 3층 왼쪽 끝에 마련된 전산교육장실에
침침한 눈을 지긋이 뜨면서 컴퓨터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 늦깎이 학생에게 집중 지도를 하고 있는 왜소한 여성이 보인다.
언뜻 보기엔 며느리 정도의 나이의 가정주부 인듯한데 두 학생은 꼼짝 못하고 머리만 긁으면서 다시 가르쳐달라고 하기가 미안한지 쑥스러운 웃음만 짓고 있다.
인터넷 강사 전영화 선생과 삼기면 월경리에 사는 前 삼기면 부면장출신 김일승(72세)씨, 그리고 같은 면 원등리에 사는 윤남열(마을이장 前농협근무, 68세)씨는 이번주 토요일 전라남도에서 주관한 인터넷 과거시험을 앞두고 최선을 다해보자고 한자리에 모였다.
작은 키에 다소 왜소한 체구의 전영화 선생은 올해 나이 58세지만 언뜻 보기에는 40대로 보일만큼 동안의 가정주부다.
“어르신들 컴퓨터 초보 아닙니다.” 전영화씨에 따르면 어르신들은 2007년도에 곡성군청 전산실에서 실시했던 기초 컴퓨터교육을 이수하면서 컴맹을 탈출했고 그때 강사와 학생으로 만난 인연으로 지금까지 꾸준하게 컴퓨터공부를 해왔다고 한다.
현재 두학생의 실력은 포토샵을 꾸미고 블러그도 관리 할 정도의 수준급. 그래서 이번에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서신도 제일 먼저 보냈다고 전한다.
윤남열 이장은 “우리 전영화 선생님은 어른들에게 컴퓨터도 자세하고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고 봉사활동도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정말 훌륭한 분”이라며 “내년에 군민의상 후보로 추천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 선생을 칭찬한다.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선친의 영향으로 매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가 자신의 최고의 매력 포인트라고 강조한 전 선생은 성격이 매우 밝은 이면에 큰 아픔도 있었다고 한다.
2남 4녀 중 장녀로 태어나 세살 때 학교 놀이터에서 같이 놀던 언니의 심한 장난으로 그네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척추를 다쳐 지금도 키가 작다고 한다. 덕분에 사춘기 때 고민도 많이 하고 6남매 중 유일하게 자신만 대학을 포기하고 말았다고 아픈 기억을 더듬었다.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초등학교 때는 순천 관사에서 지냈고 보성여중을 졸업 후 고등학교는 광주여고를 졸업했다. 당시 광주여고하면 시골 중학교 상위권 학생들과 부유한 환경의 학생들이 진학했던 광주전남 지역의 명문고로 명성을 떨쳤던 학교다.
소나무 전문가이자 조경업을 하고 있는 남편 오명수 씨와 결혼하기 전까지 광주에서 17년 동안 피아노학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여고시절부터 음악에 소질이 있어 독학으로 음악공부를 했다는 전 씨는 그 덕분인지 현재 곡성성당에서 피아노 반주를 맡고 있다.
그녀는 농업기술센타에서 실시하는 컴퓨터교육을 받은 게 전부다. 그렇지만 집에서 틈틈이 인터넷을 공부하면서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그녀는 학원을 다니지 않고 독학으로 엑셀 자격증을 취득했다.
2006년도에는 곡성군에서 주관한 정보화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것이 계기가 되어 전남도지사로부터 정보화선도자 임명장을 받은 후 현재는 컴퓨터교육을 원하는 관내 주민들 5~6명을 대상으로 한달에 5회 컴퓨터 선생님으로 활동하고 있다. 찾아가는 맞춤식 컴퓨터교육 서비스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전 씨는 또 지난해 농촌진흥청에서 주관한 정보화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해 상금30만원도 받았다.
그녀는 올해 2월부터 곡성읍에 사는 쪈티엔찐(베트남)씨와 임아나스타샤(우즈베키스탄)씨 등 다문화가정 4곳을 방문해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2003년도부터 곡성천주교회에서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원만한 가정생활을 통한 편안한 정착을 돕기 위해 실시하고 있는 한글 문해 봉사와 남편과 시부모교육 등에도 적극 참여해 무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점심을 어떻게 하실래요?” 오전 일을 끝낸 남편으로부터 점심을 함께하자는 전화를 받은 전씨는 “오늘은 오곡면 두가리에서 먹기로 했다”며 정중히 거절하고는 피식 웃는다.
요즘 다문화가정 시부모들이 외국에서 온 며느리를 가르쳐주는데 고맙다며 각종 채소류를 봉지에 담아주는 등 부담스러울 정도로 잘해준다고 한다.
“사실 오늘은 베트남출신 며느리를 둔 시부모가 꼭 점심을 같아하자고 했다”면서 요즘은 점심약속이 많아 남편이 서운해 한다고.
“봉사활동은 경제적인 부분을 생각하면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해야지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는 전 씨는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끝으로 또 다른 봉사현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주성재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