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중 담양지역 민간인 94명 학살

진실화해위, 전남지역민간인집단희생사건 조사결과

2009-08-19     한명석 국장

한국전쟁 당시 담양에서 민간인 94명이 국군에 의해 집단으로 학살된 사실이 밝혀졌다.

진실ㆍ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18일 "전남지역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을 조사한 결과, 좌우익 구분 없이 만삭의 임신부를 비롯해 젖먹이 유아와 노인, 장애인 등 주민들이 무차별적이고 잔인하게 살해됐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한국전쟁 기간 담양지역 민간인 희생자는 총 94명으로, 1950년 10월 말부터 국군 11사단의 수복작전 과정에서 이들이 마을에 진입해 가옥에 불을 지르거나 주민들을 끌어내 부역혐의자 가족과 청장년 등을 사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전남지역(화순, 담양, 장성, 영광) 11사단 사건’을 조사한 결과 1950년 10월부터 1951년 3월까지 전남 담양군, 장성군, 영광군, 화순군 일대에서 수복 및 빨치산 토벌작전을 수행하던 국군 제11사단 군인에 의해 수백 명의 민간인이 희생되거나 행방불명된 사실을 밝혀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육군본부의 ‘한국전쟁사료(1, 21, 59)’, 미8군 작전국의 ‘미8군정기작전보고(3~6)’ 등 사건과 관련한 자료조사와 생존자와 목격자를 비롯해 당시 참전군인 등 참고인의 진술조사, 현장조사를 통해 사건의 실재 여부와 희생규모를 밝히는데 주력했으며 특히 ‘한국전쟁사료’에 나타난 당시 11사단의 이동 및 교전상황, 전과(戰果) 등 관련 기록과 생존자와 목격자등이 진술하고 있는 사건의 발생 시기와 장소, 희생경위를 비교해보면 대부분이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조사결과 9.28수복 이후 국군 11사단은 경남 전북 전남지역에대한 수복에 나섰으며 퇴로가 끊긴 인민군 및 지방좌익이 산악지대를 근거지로 후방교란작전을 펼치자 ‘견벽청야(堅壁淸野)’라는 작전을 도입해 빨치산 토벌을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11사단은 빨치산과 민간인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작전 중 발생 할 수 있는 모든 위험요소를 제거하고 공비토벌의 전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빨치산의 은신과 식량공급원이 될 수 있는 산간마을을 소각하고 민간인을 면소재지나 수복지역으로 소개시키는 과정에서 빨치산 혹은 부역혐의자 등으로 몰린 담양, 장성, 화순, 영광지역 민간인들이 적법한 절차 없이 11사단 20연대와 9연대 군인들에 의해 사살되거나 연행된 후 행방불명됐다.

20연대와 9연대 군인들은 미수복 지역 주민들을 빨치산과 동일시하거나 협력자로 간주해 무차별 총격을 가해 살해하는가 하면, 인민군 점령기 부역자를 색출한다는 이유로 무고한 주민들을 사살하는 등 법적 기준이나 근거 없이 민간인 살해를 일삼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마을에 진입한 군인들은 집집마다 불을 지르고 피난을 가지 않고 마을에 남아있던 주민들을 끌어낸 뒤 이중 부역혐의자 가족들과 청장년 등을 선별해 사살했으며 미처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맹인 등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은 불에 타 숨지기도 했다.

장성군 황룡면 통안리 등지에서는 빨치산과 교전 중 군인이 사망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주민들을 인근 야산이나 마을 공터에 모아놓고 빨치산에게 협력했다는 이유로 사살한 것도 모자라 수차례에 걸쳐 확인사살까지 거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군인들은 빨치산과 부역자 색출의 편의를 위해 인민군복으로 위장한 채 마을에 진주한 경우도 있었는데 작전에 참여했던 한 사병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탄약이 부족해 함부로 사격할 수 없었으며 고의로 인민군으로 위장해 빨치산과 부역자를 유인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일부 군인들은 사살을 앞둔 급박한 순간에도 기지를 발휘해 애꿎은 희생을 막기도 했는데 화순군 남면에서는 가옥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방 안의 주민들에게 눈짓을 하면서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해 살상을 피할 수 있었으며, 화순군 도암면에서도 중학생 신분을 확인하고 살려준 경우도 있었다.

11사단 군인들은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모두 공비이거나 통비분자이니 죽여야 된다’는 지휘관의 명령과 사전교육에 따라 작전지역 주민들을 적으로 간주해 사살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당시 20연대 1대대에서 복무했던 한 사병은 “애교떠는 예쁜 여자는 적이니 곧 권총으로 쏠 것이고, 안 죽이면 내가 죽는다”는 식의 교육을 받았으며, “도망가는 사람들은 일단 신분을 구분하지 않고 사격했다”고 진술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조사결과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담양 94명을 비롯해 장성 67명, 영광 함평 27명, 화순 103명 등 총 291명이었으나 일가족이 몰살됐거나 유족이 타 지역으로 이주한 경우, 진실규명 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까지 포함한다면 이는 최소한의 희생자 수로 실제 희생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또 주로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꾸려갔던 20~40대 남성들이 많이 희생됐으며, 장애인과 임산부를 포함해 여성, 어린이, 노인 등 노약자가 전체 희생자의 34.7%에 달하는것으로 파악됐다면서 희생자들은 군사요원으로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단지 신체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피난을 가지 못하고 마을에 남아 있던 주민들이었다고 설명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조사결과와 관련 “비록 사건발생 당시가 전시수복과정의 혼란한 때였다고 하더라도 국군이 적법절차없이 비무장 무저항 상태의 민간인을 집단살해한 것은 국민의 생명권을 침해하고 적법절차에 따라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며 특히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전원을 몰살하거나 장애인과 노인을 살해한 행위는 인도주의에 반한 야만적 행위이자 명백한 위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말하고 ”국가에 대해 공식사과와 위령사업의 지원 및 군인을 대상으로 한 평화인권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한명석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