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주년 기념사 - ‘정론직필(正論直筆)’

2010-11-23     한명석 국장

정론직필(正論直筆)을 이야기하자면 불세출의 선비 안명세(安明世)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안명세(安明世)는 조선 인종, 명종 대의 선비로 26세에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사초를 작성하는 사관에 임명되었습니다.

1545년 장경왕후의 아들 인종이 즉위 8개월 만에 급사하자 경원대군을 세자에 책봉하였으니 이가 바로 조선13대 왕인 명종대왕입니다. 명종의 나이 12살 되던 때입니다.

명종의 즉위를 앞두고 장경왕후의 오빠 윤임과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형, 윤원로 등이 세자책봉을 두고 치열한 권력싸움을 벌였는데 결국은 문정왕후가 승리하고 장경왕후의 오빠인 윤임 일당은 모조리 숙청 내지는 참살을 당했으며 이 일을 가리켜 歷史는 ‘을사사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사관이었던 안명세는 을사사화의 전 과정을 사실대로 사초에 기록했습니다. 사초는 당대 임금 앞에서도 공개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같은 동료사관인 한지원이 사초의 내용을 문정왕후에게 일러바쳤고 이에 격분한 문정왕후측은 안명세를 역적으로 몰아 참수를 시킵니다. 이때 안명세의 나이는 불과 서른이었습니다.

안명세는 사초의 수정을 요구한 형리들에게 맞서 끝까지 을사사화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이를 수정할 수 없다는 지조 있는 언론인의 기개를 끝까지 보여주면서 장열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형장에서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관의 책무에 한줌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히고 망나니의 칼에 쓰러진 안명세를 두고 조선실록에서는 ‘정론직필의 대명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좋은 신문이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슬로건과 함께 지난 2008년 11월 25일 첫 발을 내딛은 본지가 어느새 두 돌을 맞았습니다.

창간 2주년을 맞이해 본지가 ‘정론직필’을 화두로 삼은 것은 언론이 지녀야 할 필수덕목이 바로 ‘정론직필’임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언론들이 이를 간과한 채 소위 찌라시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전락하고 있으며 심지어 일부 언론사는 금전적 이익을 위해서 ‘곡학아세(曲學阿世)’의 후안무치한 행태까지 서슴지 않는 등 그 폐해와 심각성이 극에 달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언론의 덕목 중 중요한 또 한 가지는 언론인의 소양과 자질입니다. 본지가 창간사에서도 역설했듯이 언론인에게는 보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엄격한 도덕적 잣대가 요구됩니다. 누군가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도덕성이 전제되어야 하고 흠결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언론의 공명성도 부각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언론사는 언론이 사회의 공기(公器)임을 망각하고 사주들의 사업을 위한 방패로 이용하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욕심과 잇속을 채우는데 전가의 보도처럼 무기로 활용하는 등 사이비언론의 행태를 지속하고 있는 현실은 정론직필을 지향하는 정직한 언론인들로 하여금 크나큰 실망과 분노를 자아내게 하고 있습니다.

본지는 창간 2주년을 맞아 ‘정론직필(正論直筆)’과 대의명분을 앞세우는 언론으로서 언제나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건강하고 살아있는 언론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아울러 지역사회의 세세한 소식과 현안을 충실하게 보도하면서 독자 여러분의 타는 목을 시원하게 적셔주는 한편 지역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각종 비리와 쓰레기를 말끔히 청소하는 청소부 역할도 감히 마다하지 않을 것을 다시금 천명하고자 합니다.


창간 2주년에 즈음하여 본지 임직원 모두는 보다 투철한 사명감과 명예의식을 함양하고 이를 통해 지역민과 지역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지역언론의 소임을 다 하는 한편 지역사회 갈등 해소와 화합 추구에 앞장설 것을 다짐하면서 다시 한 번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성원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한명석(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