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담양을 돌아본다 3

2012-01-26     서영준 기자

3편 올해는 선거의 해

‘담곡구’ 21세기형 인물 필요
정권교체 염원 속 구심점 만들어야



지난 2편에서는 ‘민주주의’로 표현되는 ‘다수결의 원칙’ 속에서 소수자가 겪는 소외를 짚어봤다.

정치적 구도 하의 다수자와 소수자는 결국 ‘당선자 지지표와 낙선자 지지표’로 나뉘는데, 이러한 역학구조상 한 명의 표심이라도 자신의 ‘조직’ 안에 가둬 당선가능성을 높이려는 정치인의 행태를 고발하고 ‘조직이 활성화’되면 될수록 지역 내 소집단이 양극화되고 여론분열을 가져올 수 있음을 상기했다.

여기서 담양의 경우, 지난 민선5기 6.2지방선거 중 형성된 ‘최형식派 VS 反최형식파’의 구도로 지역 정서가 극명해지고 구체제 인사들의 합종연횡과 광·담통합사건까지 가세한 형국을 지나며 극도의 혼란기를 경험한 점을 돌아봤다.

특히 이장연합회와 광·담통추위의 결합은 ‘조직이 갖는 오류성’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이런 제도적 관리에서 벗어난 ‘파생상품’의 유통은 그 폐해가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였다.

논란은 있겠으나, 군수는 선거권이 있는 유권자가 선택한 사람이나 이장은 마을 구성원 모두의 대표이고 이러한 이장이 모여 단을 만들고 그 단이 다시 연합해 연합회장을 선출했다면 그가 군수 보다 더 확장된 영역의 대표자가 된다는 공식이 성립해 선거로 뽑은 군의회나 군수의 위협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조직의 무분별한 집합과 격상은 지양돼야 하는 점도 앞서 본 바와 같다.

제19대 4.11총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인 현재는 ‘公조직의 私조직化’가 강화돼 모든 공·사적 단체가 정치적 성향을 띠고 있다 해도 과언 아니다.

여기서 조직이 갖는 정치적 성향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 상호불가분의 보전관계이나 지역의 분열상을 대입한다면 결국 ‘계파’나 ‘패거리’로도 표현될 수 있어 부정적 요소를 떨쳐버릴 수 없음을 우리 모두는 양심에 비춰 자인해야 한다.

공조직의 사조직화, 사조직의 공조직화는 선거를 앞두고 능력 본위의 ‘정치 정글’을 시험하는 무대이기도 하나 선거 후유증을 고려한다면 정치인으로서는 금기시해야 할 덕목이며 더불어 선거 후 상대조직이나 계파였다 하더라도 포용할 수 있는 리더십이 간절히 요구되는 대목이다.


‘시강원?’ ‘멘토!’
HS ‘킹메이커 등극해도 首丘初心’

국회의원 선거운동이 심화되며 ‘담곡구’ 모두 ‘내 인물 내세우기’에 희생되고 있다. 제16~18대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낸 김효석 의원이 정권 재창출을 목표로 수도권에 출마하며 ‘무주공산’이 된 구례·곡성·담양 선거구는 인구편차의 덫에 걸려 한 때 “공중분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새나왔다.

이러한 파열음은 곧바로 “김효석을 쫓아냈다”고 자랑하던 사람들에게 뜨거운 지탄으로 돌아갔으며 “김효석 없으니 지역구 자체가 산산조각 나겠다”는 좌절과 함께 ‘사람이 재산’이라는 평범한 진리가 다시 한 번 확인되는 대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호사가들은 “HS는 이리될 줄 알고 미리 내뺐다”고 역공을 취함으로써 그 ‘창작능력’을 인정받았으나 결국 직접 나선 HS의 진화로 얼굴을 붉히게 됐다. “담곡구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교량 역할뿐만 아니라 직접 나서겠다”는 김 의원의 한 마디에 사태는 급단락 됐지만 선거구 지역민들로서는 ‘空席의 한계’에서 오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껴야만 했다.

한 언론에서 ‘선거구 획정은 당의 결정이고 그러한 결정에 순응하는 후보의 자세야 말로 정치인의 바른 자세’라 평하기도 하나 그러한 단말마(斷末魔)야 말로 왜곡의 전형이다.

지금은 민중의 시대이고 아래로부터의 시대이며 2030세대가 정치 일면에 서는 모바일의 시대다. 자주적이며 독립적이고 지역민의 의사가 主가 되어야 할 선거구 획정에 黨心 운운은 구시대적 착오이며 반주체적 판단으로 경계 대상이다.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후보들간 간격이 점차 벌어지고 부동층 표심이 갈리고 있다. 올 들어 ‘3강 1약’의 대결구도는 설 연휴를 거치며 개탕에 물 흐르듯 각자 흐르고 처마 아래 빗물 고이듯 모이고 있으나, 비가 그치면 뜨거운 태양 아래 고래통은 마르는 법.

그럼 이 폭우가 쏟아지는듯 한 선거정국을 그 무엇으로 잠재울 수 있나.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담곡구 3郡의 정세를 안정시킬 ‘기우제’는 그야말로 ‘정권교체의 염원’이 담긴 민주통합당의 공천이라 할 것이다.

현재 민주통합당이 전남도내 어디서든 70%가 넘는 지지를 받고 있어 앞으로 당 공천이 강력한 무기가 될 수밖에 없는 정세로 선거 본선보다 “누가 민주통합당의 공천을 받느냐”에 지역민의 관심이 쏠려있다.

다분화된 민주사회에서 이러한 일당 독주의 분위기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으나 회오리처럼 몰아치는 민심의 이면에는 MB정권에 대한 비판과 “그동안의 실정을 처단하겠다”는 민초들의 심정이 일시에 쏟아지는 것으로 보이며 “세 번째 희망을 찾아서”라는 장기적 안목도 내포돼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서 ‘세 번째 희망’은 김효석 의원이 이달 초 6일 출간한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세 번째 희망을 찾아서>에서 나온 말로 곧장 ‘安철수’와 연결된다. 김 의원은 ‘安’과 정기적 만남을 가지며 국정전반에 대한 인식을 교류를 함으로써 소위 ‘시강원(侍講院)’을 차렸다 할 수 있다.

HS 본인은 확대해석을 경계하나 정작 ‘安’은 HS를 ‘멘토’라 한다. 멘토라는 말이 워낙 유행하는 단어라 장황한 설명은 필요 없겠으나 요즘 사람들은 멘토를 ‘자신의 삶에 지표로 삼을만한 스승’ 정도로 생각한다.

‘安’은 현재 자신의 모든 행동이 정치적 잣대로만 해석돼 그 행보를 축소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로 이미 부상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安’이 이처럼 급격히 대권주자의 선봉에 설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이 그로부터 진정성과 脫권위의 자세 그리고 새로움을 보았기 때문이다.

새롭게 만든 양각산 데크에서 바라본 담양시장 모습

새롭게 만든 양각산 데크에서 바라본 담양시장 모습



진정성 脫권위 새로움


‘安’으로부터 국민들이 위로와 희망을 찾는 데는 그로부터 삶에 대한 농도 짙은 ‘진정성’은 물론 ‘脫권위’에서 오는 친근감 그리고 이미 검증된 능력과 학자로서의 소양을 갖춘 ‘새로움’이다.

수많은 설왕설래 속에서도 ‘安’의 이미지가 추락하지 않고 입지가 더욱 공고해 지고 있는 이유는 그의 이러한 세 가지 요소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또 감명으로 남아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21세기는 이미 脫권위주의 시대로 ‘脫권위’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는 이달 중순 있었던 ‘김문수 경기도지사 119전화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119 통화내용이 인터넷에 유포되자 김 지사는 삽시간에 권위주의에 휩싸인 수장으로 낙인 찍혔고, 전화 받은 대원을 원대복귀 시키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이러한 면에서 ‘安’의 강점은 대화의 태도와 눈빛이 상대방을 배려하고 자신을 낮추는 데 있다. 적절한 말의 속도와 속삭이는듯 하나 똑똑 부러지는 말투, 게다가 소년의 감성까지 갖춘 그의 脫권위적 자세는 그동안 ‘카리스마’로 대변된 정치지형에 핵폭탄이 됐다.

이제 사람들은 걸걸한 목소리로 툭툭 내뱉는 정치인의 가벼움이 너무 식상하다.

‘安’으로부터 도출된 두 번째 인기비결은 바로 ‘진정성’이다.
정치인에게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정치인이나 정치하겠다고 나선 사람에겐 첫째도 둘째도 추문이 없어야 한다. 이 시대는 진정 유리알처럼 알차고 투명한 정치인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安’의 케이스는 ‘신대륙의 첫 발’이었다. 그는 스스로 공개하고 스스로 고백했다. 감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하겠다고 나선 사람의 이면에 비리가 만연하고 사업 등 경제적 요소가 숨겨져 있다면 유권자는 절대 그런 후보의 사탕발림에 속아서는 안 되며, 오히려 그러한 후보자가 누구인가 정확히 뽑아낼 줄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정치가 진보하지 못한 이유도 정치인들에게 이 ‘진정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선거 때는 나라만 위할 것처럼 언동하나, 결국 자신의 사업체에 방호벽을 치고 이권에 개입하며 친인척 비리를 저지르는데 ‘국회의원 배지’를 써먹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의 선택은 이러한 과오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대 관건이다.

‘安’이 급격히 부상한 이유는 진정성과 脫권위의 자세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결국 그만이 갖는 ‘새로움’이 가장 큰 매력이다. 사람들은 그동안의 인물풀(Pool)에 너무 지쳤다. 선거 때 나타나는 인물의 면면이 항상 그 사람이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 진화적 발상을 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더 나아기지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고통을 감내한다. 지금 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구태를 버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움을 추구하며 과거를 망각하거나 추억으로 남겨둔다.

이런 면에서 ‘安’은 국민의 눈에 들어온 ‘새로움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시간에는 새로움이 자리해야 한다.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찾는 이유는 ‘그동안의 오염에서 벗어나 깨끗하다는 안도감’ 때문이다.

‘安’이 자신의 임무를 마치기 위해 입대하는 날 새벽까지 개발실에서 일을 하다 군대에 간 일화나 학문 수련을 위해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주저 없이 부인과 유학을 떠난 일, 사회적 기업으로서 특허를 공유한 일,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는 기부행위 등 그의 인생 역정이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새로움은 항상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지금까지 ‘安’을 모델로 그가 사람들의 가슴에 단 시간 내 파고 들 수 있었던 원인을 짚어 봤다. 그를 모델로 삼은 이유는 그가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여서가 아니라 그가 어떻게, 왜 사람들의 부름을 받는지 되새겨 봐야 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진정성과 脫권위 그리고 새로움’ 이 세 가지 시대정신은 부정할 수 없는 지표다. 이 시대정신은 앞으로 구례와 곡성, 담양에 필요한 ‘국회의원 선택기준’으로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진화할 수 있느냐’에 관한 문제다.

지역의 미래는 투표에 달려있다. 건강한 미래를 위해서라면 후보자로부터 진정성과 脫권위, 새로움을 찾아야 한다. (마지막 편) /서영준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