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5주년 기념사
“정론직필과 대의명분을 앞세우는 언론”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본지 사시는 정론직필입니다.
정론직필을 이야기하자면 불세출의 선비 안명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안명세는 조선 인종, 명종 대의 선비로 26세에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사초를 작성하는 사관에 임명되었습니다.
1545년 장경왕후의 아들 인종이 즉위 8개월 만에 급사하자 경원대군을 세자에 책봉하였으니 이가 바로 조선13대 왕인 명종대왕입니다. 명종의 나이 12살 되던 때입니다.
명종의 즉위를 앞두고 장경왕후의 오빠 윤임과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형, 윤원로 등이 세자책봉을 두고 치열한 권력싸움을 벌였는데 결국은 문정왕후가 승리하고 장경왕후의 오빠인 윤임 일당은 모조리 숙청 내지는 참살을 당했으며 이 일을 가리켜 역사는 ‘을사사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사관이었던 안명세는 을사사화의 전 과정을 사실대로 사초에 기록했습니다. 사초는 당대 임금 앞에서도 공개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같은 동료사관인 한지원이 사초의 내용을 문정왕후에게 일러바쳤고 이에 격분한 문정왕후는 안명세를 역적으로 몰아 참수를 시킵니다. 이때 안명세의 나이는 불과 서른이었습니다.
안명세는 사초의 수정을 요구한 형리들에게 맞서 끝까지 을사사화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이를 수정할 수 없다는 지조 있는 언론인의 기개를 끝까지 보여주면서 장열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형장에서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관의 책무에 한줌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히고 망나니의 칼에 쓰러진 안명세를 두고 조선실록에서는 ‘정론직필의 대명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창간 5주년을 맞이해 본지가 다시금 ‘정론직필’을 화두로 삼은 것은 언론이 지녀야 할 필수덕목이 바로 ‘정론직필’임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상당수 언론들이 이를 간과한 채 찌라시로 전락하고 심지어 일부 언론은 금전적 이익을 위해서 ‘곡학아세’의 행태까지 서슴지 않는 등 그 심각성이 극에 달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무릇 언론인은 안명세 선비처럼 지조와 기개를 가져야 합니다.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일부 몰지각한 언론인들이 본연의 사명을 망각하고 권력과 금력의 노예가 되어 지역사회에 많은 해악을 끼치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정직한 언론인들은 시대의 조류에 편승하지 않고 사회 구성원의 알 권리를 지키고 언론인으로서 본연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 수많은 탄압과 박해를 꿋꿋이 견디어 왔습니다.
언론의 본분은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에 있습니다. 따라서 오만한 권력, 독선적인 권력, 부도덕한 권력은 필연적으로 기자의 펜과 맞부딪치게 되어 있습니다. 기자의 펜은 사회정의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창간 5주년에 즈음해 본지는 지역의 세세한 소식과 현안을 충실하게 보도하는 지역신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동시에 정론직필과 대의명분을 앞세우는 언론으로, 언제나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건강하고 살아있는 언론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정진하겠습니다.
흔히들 언론을 가리켜 사회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요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이요 갈 길을 안내하는 목탁이라고 합니다. 등불이 빛을 잃고 소금이 짠 맛을 잃고 목탁의 낭랑한 소리가 둔탁해진다면 우리사회는 정의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항상 그리해 왔듯이 본지 임직원 모두는 스스로 언론이라는 간판을 앞세워 우월감에 도취된 채 권위의식에 빠져있는 일부 그릇된 기성 언론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철저한 자기관리에 힘쓰는 한편 언론인이라는 직업을 생계수단이 아닌 지역과 나라, 나아가 세계를 바꾸는 힘으로 생각하는 투철한 사명감과 명예의식을 고취시키고 이를 통해 지역민과 지역사회에 빛과 소금의 소임을 다 할 것을 여러분 앞에 다짐하고자 합니다.
모쪼록 본지 창간 5주년을 한 마음으로 축하해주시고 우리의 전도를 따뜻한 눈빛으로 지켜봐 주시기를 거듭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한 명 석(대표이사·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