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月斷想/ 정철의 누명 - 기축옥사 진실 밝혀야

한 명 석(발행인)

2020-07-14     한명석

“金剛臺 맨 우層의 仙鶴이 삿기 치니, 春風 玉笛聲의 첫잠을 깨돗던디, 縞衣玄裳이 半空의 소소 뜨니, 西湖 옛 主人을 반겨셔 넘노는 듯” (금강대 맨 꼭대기에 학이 새끼를 치니 봄바람에 들려오는 옥피리 소리에 선잠을 깨었던지, 흰 저고리 검은 치마로 단장한 학이 공중에 솟아 뜨니, 서호의 옛 주인 임포를 반기듯 나를 반겨 넘나들며 노는 듯하구나!) - 관동별곡 中에서

필자는 지난 2006년 9월 13일부터 4일간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로 금강산 일원에서 진행된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통일시대 지역언론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실시된 세미나에서는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 북한의 경제개혁 개방 움직임과 중국의 영향력 확대 등을 고찰하고 통일시대를 대비한 지역언론의 역할과 사명 등에 대해 집중 토의했습니다.

세미나 이틀째 비가 많이 오는 궂은 날씨였지만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를 금강산이었기에 일행은 비를 맞으며 정상인 비로봉을 향해 걸음을 옮겼습니다. 비로봉을 향해 가는 길에 북한 여성 안내원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던 송강 정철이 이 길을 지나가면서 느꼈던 감흥을 관동별곡에 담았다”면서 관동별곡 한 구절 “金剛臺 맨 우層의 仙鶴이 삿기 치니, 春風 玉笛聲의 첫잠을 깨돗던디, 縞衣玄裳이 半空의 소소 뜨니, 西湖 옛 主人을 반겨셔 넘노는 듯”을 맛깔나게 읊어주었습니다.

눈물이 핑 돌만큼 반가웠습니다. 금강산을 바라보는 것만도 이를데없는 기쁨일진데 이곳에서 담양이 낳은 세계적인 문호 송강 정철 선생의 흔적을 뵈었습니다. 400여년 전 이곳을 지나시면서 읊었던 詩句처럼 ‘옛 주인을 반기듯 나를 반겨 노는 듯 했다’고 하면 분명 오버센스겠지요. 그렇지만 난생 처음 접하는 금강의 아름다움은 담양에서 1000리 길을 마다않고 서둘러 봇짐을 꾸릴만한 가치가 충분했습니다. 아마도 설레기는 저나 송강 선생이나 매 한가지였을테지요.

저는 일행 중 한사람에게 400여년 전 송강 선생이 지나갔던 이 길을 내가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세미나에 참가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저에게 정철은 기축옥사 때 수많은 선비들을 모함하고 죽인 나쁜 사람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문인으로서 송강이 어떠할지는 모르겠지만 정치가로서 송강은 그저 권력을 잡기위해 죄 없는 선비들을 무참히 학살한 원흉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사실이 그러할진데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었겠습니까? 꿀 먹은 벙어리마냥 말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역사에 근거한 송강의 정치적 행보는 젊은 시절 모습과는 판이하게 선비로서 너무 비겁하고 추한 모습을 많이 보여 주었던 것도 사실이었으니까요.

이런 가운데 최근 조선일보 박종인 기자가 기축옥사의 진실을 기록한 ‘선비 1000명 학살범은 정철이 아니라 국왕 선조’란 제하의 기사에서 己丑獄事 때 선비 1000명을 학살한 주범은 정철이 아니라 국왕 선조였다는 새롭고 놀라운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박종인 기자는 이 기사에서 과연 정철이 주범(主犯)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수사를 빌미로 정적을 떼로 제거하기는 했지만 주범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주범은 선조라고 단정합니다. 박종인 기자는 수많은 사료들을 검토한 결과 이같은 결론에 이르게 됐다면서 정철은 처음에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나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권력에 대한 욕심이 생긴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박기자는 정철에게도 잘못한 점이 있지만 역사는 선조의 죄를 감추기 위해 정철의 잘못에 대해 상당부분 과대포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문인으로 정치가로 당대를 섭렵했던 정철에게 부정적 이미지의 상징으로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던 정여립 사건.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국왕 선조가 자신에게 비판적이었던 동인 선비들을 제거하고 미완의 권력을 완성하기 위해 꾸민 참극에 정철이 이용당한 사건으로 기축옥사에 대한 역사적인 재조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