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중국의 장미를 찾아서
2. 국내 식용장미 활용, 춘천 로즈랑스
‘로즈랑스’는 춘천시 남면 발산리에 위치한 친환경 테마 장미농원.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된 식용장미 꽃잎을 이용해 생장미, 건조장미, 분말장미, 액상장미 등으로 가공·분류해 장미 관련 원료를 개발하고 제조업체에 공급하는 장미농원이다.
‘로즈랑스’에서 생산된 장미는 장미 생 꽃잎, 장미 건조 꽃잎, 장미분말, 장미 오일, 장미 비누 등의 제품으로 탄생한다.
로즈랑스 유명림 대표는 농수산식품부선정 신지식농업인장 281호로 지정되었고 농촌 어메니티 사업 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40년 넘는 시간을 꽃을 가꾸고 있는 유명림 대표는 ‘꽃을 좋아해 다른 직업에는 일절 관심이 두지 않았다’는 남편 최주순씨를 따라 함께 인생을 꽃에 바치고 있다.
“남편이 춘천농고 원예과를 나왔어요. 꽃을 너무 좋아해서 평생 꽃만 가꾸고 사는 사람이죠.
최주순씨는 춘천농고를 졸업 후 남대문 꽃꽂이 전문상가와 국제 삼화식물원, 남서울 화훼매장 등에서 일했다. 1985년 충북 진천으로 귀농해 관엽식물 재배업에 종사하다 IMF로 사업이 힘들어지자 1997년 절화장미로 전환하게 된 것이 로즈랑스의 시작.
장미의 ‘로즈’와 ‘누구랑 누구랑’을 말하는 ‘랑’을 붙여 장미의 모든 것을 해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이들 부부가 자리 잡은 진천군은 1993년부터 장미를 재배해 전국적인 인기를 얻었고 당시 50여 가구가 장미재배를 시작해 한때 '진천장미‘로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현재는 ‘생거진천장미’ 브랜드의 고장이다.
어느 날 농약만 치면 몸에 힘이 빠지고 일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검사를 받아보니 농약중독판정을 받았다.
같은 품종의 절화 장미라고 해도 잘라서 물에 꽂았을 때 물올림이 좋고 실내에 들어가는 꽃이다 보니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지 않는 조건을 갖춰야 상품으로 인정을 받는다.
그래서 바이러스 병이나 뿌리혹선충, 꽃노랑총채벌레, 점박이응애, 진딧물류와 나방류가 생기지 않도록 병충해와 싸움을 치뤄야 한다. 화훼시장 내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방제에 힘써야 했던 것.
최주순·유명림 대표는 젊을 때 골골골거리며 벌다 노후에 병원비로 탕진하느니 품목을 바꿔봐야겠다 고민 끝에 ‘꽃을 바로 따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해가 없는 농사를 짓겠다’ 식용장미 연구를 시작했다.
애초에 이들 부부가 생각했던 21세기 농업은 친환경적이면서도 고품질 생산과 기능성을 겸한 것이어야 한다했기에 식용장미는 운명적 만남이었다. 앞서 일본에 장미 선진지 견학을 갔을 당시에도 장미를 활용한 다양한 제품을 봤고 식용장미 재배를 봤을 때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재배되는 식용 장미에 대한 소식을 접한 부부는 식용장미의 상품성과 가능성을 보고 무농약 장미 재배를 시작했다.
하지만 식용장미 시작 후 3년은 굶었다고 말한다.
터키와 중국 등지에서도 식용장미는 흔했지만 시장 자체가 없던 우리나라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에 친환경 제재라는 것은 없었다.
절화장미를 하던 단지에서 식용장미를 하다보니 주변에서 방제를 하면 농약을 치지 않는 로즈랑스로 온갖 벌레들이 몰려왔다. 주변 화훼농가와 가족들 역시 ‘약을 치지 않고 꽃을 키우는 건 어려운일’이라며 ‘몇 달 고생하다 말겠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고.
하지만 이들 부부는 인터넷, 도서 등 식용장미에 응용할 수 있는 자료라면 뭐든 가지고 와 연구를 했다. 2003년 무농약 장미 재배를 시작한 후 친환경 방제재, EM(Effective Microorganisms 효모균·유산균 등 유익한 미생물들을 조합·배양한 것), 목초액 등을 활용해 국내 최초로 무농약 장미를 재배에 성공했고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친환경농산물 인증을 받았다.
2008년 로즈랑스는 4000㎡의 터에 오클라호마·온누리 등의 품종을 재배하여 연간 약 3톤을 수확하여 장미 식용 음료, 장미 화장수, 장미 비누 등의 제품을 생산했다.
장미를 이용한 바이오 상품들은 국내에서 개발한 품종을 이용하기 때문에 로열티가 들지 않고 비가림 시설을 이용한 여름 재배가 가능하여 연료비를 절감할 수 있어 장미 재배 농가 수익 향상은 물론 새로운 판로를 여는 돌파구 구실을 했다고 평가받았다.
■ 장미 식용의 역사
세대를 거슬러 되돌아보면 꽃을 먹는 것은 이색적인 일은 아니다.
유명림 대표는 어린 시절 밭둑이나 개울가에 찔레나무에 새싹이 올라올 때면 그 순을 따서 달큰하고 새콤한 맛을 간식처럼 즐기다 뛰어놀았던 추억이 있다.
장미의 역사를 살펴보면 고대 이집트,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중국 등에서 여러 종류의 장미가 재배됨을 벽화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야생의 장미를 향료나 약용으로 채취하다 차츰 실용적인 측면과 함께 관상용으로 재배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장미가 사랑받기 시작한 것은 로마시대로 본다. 주로 상류계급의 실내장식과 테이블 장식을 하다 로마의 귀족들은 장미로 관을 만들어 쓰기도 했고 와인과 요리 장식에는 물론 묘 앞에 헌화용으로도 장미를 사용했다. 또 술잔에 장미 꽃잎을 띄워 마시기도 했다. 중세 유럽에서는 장미가 크리스트교를 상징하는 꽃으로 중요시되었고 왕가의 문장이 되기도 했다.
“옛날에 밭일하나 상처가 나면 쑥을 으깨 지혈을 하는 데 쓰였던 것처럼 유럽 왕실에서는 장미를 짓이겨 사용했어요.”
유 대표는 ‘아무도 가지 않던 유기농 장미의 길을 헤쳐가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장미가 아닌 다른 작물이었다면 여기까지 버티질 못했을 정도로 매력이 있는 농작물이라 말한다.
40년 가까이 장미 농사를 키우며 느낀 점은 외롭고 쓸쓸하고 우울한 표정의 사람들이 와도 장미향을 맡고 꽃잎을 만지며 체험을 하고 갈 때면 ‘여기서 행복했다’라는 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이 부부에게는 원동력이 되었고 보람이 되었다.
실제로 장미에는 다양한 효능이 숨겨져 있다.
꽃을 보면 뇌에서 마음을 안정시키는 뇌파의 일종인 알파파가 활성화돼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불안감이 줄어드는 데 도움 된다. 학문의 일종으로 발전한 '플라워테라피'는 이러한 부분을 적극 활용하여 꽃으로 심신을 치료하는 요법이다. 주로 장미처럼 빨간색 계통의 꽃이 활력을 주는 효과가 있다.
또한 장미향은 ‘여성의 향기’라고 할 만큼 여성질환 증상을 완화시키는데 장미에 들어있는 ‘피토호르몬’은 에스트로겐과 유사한 역할을 해 생리통 완화와 두통 개선, 노화억제 효과가 있다. 또한 장미 향을 맡으면 혈관 건강 뿐 아니라 노화가 예방되는 효과가 있는데 장미차에는 녹차와 홍차의 1.5배에 달하는 항산화 물질인 폴레페놀과 비타민C 등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다양한 건강 효능을 나타낸다고 알려져있다.
이같은 항산화 물질은 몸 속 유해물질인 활성산소를 줄여 노화를 예방할 뿐만 아니라 긴장을 풀어주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 로즈랑스의 식용장미 체험과 활용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친환경 식용장미는 오직 로즈랑스에서만 재배한다. 생화를 보고 체험할 수 있는 시기는 4월부터 11월.
‘예전엔 식용 장미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 판로 개척이 어려웠지만 이제는 소비자가 먼저 “장미 좀 보내 달라”고 미리 예약을 할 정도예요.’고 유 대표는 말한다.
4월부터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는 내내 꽃을 딸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여름의 습도와 겨울의 추위가 극과 극을 달리는 다이나믹한 환경에서는 비가림이나 가온처리 없이도 노지 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어야 비용부담과 가격변동이 적기 때문에 다양한 실험을 하며 경쟁력있는 품종들을 만들어왔다. 농촌진흥청, 경기도 농업기술원, 충북농업기술원 등 장미 품종연구와 관련된 곳은 전부 찾아가 식용으로 가능한 품종들을 선발해 온다. 발산리의 농장에는 국내산 품종 100여 종, 외국 품종 400여 종 모두 500여 종으로 현재는 1만 주 이상이 심어져 있다.
남편 최주순씨가 70살이 가까워지자 진천의 농장은 정리하고 부부의 고향 춘천으로 온전히 돌아온 것이 2년 전.
체험장이 있는 발산리의 1600평과 유명림씨의 동생이 가꾸고 있는 1000평의 농장에서도 지난해 약 5톤 정도를 수확했다.
진천의 농장에서도 꽃을 키울 때는 춘천과 진천을 일주일에 서너 번씩 오가며 생화를 싣고 다녔다. 고속도로에서 버리는 시간이 아깝다 생각해 식용장미를 다양하게 활용할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필요한 교육들은 오디오 등으로 습득했다.
생화와 건조꽃으로도 농장을 유지하는 것은 충분했지만 배움에 대한 열의가 대단한 유 대표는 농업기술센터와 지자체에서 장 만들기, 술 담그기, HACCP교육, 농어촌체험지도사 등 다양한 교육을 이수했다.
그렇게 10여 년간 배운 교육들이 로즈랑스에서 개발한 다양한 장미 가공품과 체험학습에 고스란히 응용되었다.
2005년부터 장미체험교육장을 운영하며 장미비누, 장미청, 장미고추장, 장미피자 등 다양한 식용장미 활용법을 연구하고 나누고 있다.
“보통 꽃을 꺾을 때는 죄책감을 느끼는데 이곳에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면 아이들이 엄청 좋아해요. 장미피자, 장미청, 장미식초, 장미비누 등 취향껏 원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답니다.”
로즈랑스에 생화와 건조꽃 주문이 들어오면 목적에 맞춰 품종을 보내준다. 마스크팩이나 선크림, 미스트의 원료로 화장품 회사에 납품을 했었고 장미분말은 S 제과업체에서도 컨택이 와 제품 개발에도 참여하는 등 활용도는 더 커지고 있다.
로즈랑스의 제품 가운데 중랑장미축제에서 불가리아 장미수보다 더 인기를 얻은 제품이 ‘로즈랑스 장미수’
“화장품 성분에 장미수가 안 들어가는 게 없을 정도로 장미는 피부 미백과 노화방지에 탁월해요. 성분 분석을 해보면 비타민이 레몬의 17배,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석류의 8배, 비타민A는 토마토의 20배나 될 정도로 우수한 성분들이 가득하죠.”
장미꽃잎을 말릴 때면 온 동네에 장미향이 떠돌아 ‘이 좋은 향을 어떻게 가두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 끝에 기계를 제작했다. 한방울 한방울 장미의 눈물처럼 떨어지는 수분을 증류시켜 만든 것이다.
더운 날에는 미스트처럼 얼굴에 뿌려서 화장품을 대신한다는데 휘발성이 없이 당기지 않고 촉촉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 장미수를 생수에 몇 방울 떨어뜨려도 마시면 속에서 장미향이 올라온다고.
장미향에는 항박테리아 작용을 하는 파네졸 성분이 들어있는데 이는 모공을 막는 박테리아의 번식을 억제해 피부 트러블을 개선할 수 있다. 향수나 아로마테라피로 주로 활용되는 장미의 우수한 향기는 피부 미백에도 탁월한 효능을 보인다 알려져 있는데 장미로부터 추출된 향기 성분에는 게란산(Geranic acid)이 피부 색소를 억제한다. 이 게란산 성분이 멜라닌 생성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타이로시네이즈(Tyrosianse)의 활성 및 세포 내 발현량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피부 미백에도 활용되고 있다. 말린 장미는 한방에서도 약재로 쓰이는데 부스럼, 설사, 이뇨, 종기 등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있다.
한동안 쉬었던 체험을 5월부터 진행을 하자마자 도내 식재료를 활용한 컬러푸드 테라피를 주제로 강원도내 영양사들이 식용장미 활용법을 배우기 위해 발빠르게 찾아와 식용장미의 다양한 컬러푸드 효능과 활용음식을 배우고 재배방법과 효능 그리고 이를 단체급식에 적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직무연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컬러푸드 테라피는 음식의 색과 영양소를 이용해 신체와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이다.
유명림 최주순 부부는 가공과 체험의 분업화를 통해 체계적으로 농원을 가꾸고 가공품 개발과 품종 개발에도 여전히 힘을 쓰고 있다.
올해부터 ‘스텝업’이라는 농정원에서 하는 교육을 시작해 5명의 후계자를 양성하고 있다. 몇십 년간의 치열했던 노력과 식용장미의 무궁무진한 활용이 여기서 멈추면 안된다 생각한다. 진천과 춘천을 수없이 오가며 ‘식용 꽃’과 ‘무농약 장미’라는 길을 다져왔는데 다시 막히게 할 수 없어 다른 이들에게 전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지 오래였다.
포항, 제주, 원주, 춘천 등 5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스텝업 후계자’들은 각자의 지역에 맞는 로즈랑스를 만들어보자고 으쌰으쌰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30년 넘게 장미를 키우며 배우게 된 지식들과 경험들이 ‘로즈랑스’를 성장시키기 위한 것이였다면 지금까지의 지식과 경험을 더 많은 이들에게 나누며 그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또다른 ‘로즈랑스’로 성장시킬 수 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더 큰 행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김고은 한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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