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의 기쁨 대신 절망만 가득합니다”
쌀값 18만원대 1년만에 20만원선 무너져
쌀값 폭락에 역대급 폭염과 함께 찾아온 벼멸구 피해로 농민들의 한숨이 공공비축미 매입 현장을 맴돌고 있다.
벼 수확이 한창이던 때도 쌀값은 폭락했고 산물벼(말리지 않은 벼)를 시작으로 신곡 수매가 시작됐지만 가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농민들의 근심은 더욱 늘어가고 있다.
수확의 기쁨을 누려야 할 시절이지만 변화무쌍한 날씨 탓에 병해충 피해를 입은 농민들은 수매현장에서도 제값을 받지 못해 근심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6일 실시한 건조벼 수매현장에서 특등은 1660가마(40kg 기준) 28%에 불과하고 1등급이 4240가마로 72%를 차지해 쌀값은 폭락하고 벼 수매 우선지급금만이라도 높게 받아서 우선 필요한 생업자금으로 써보려고 하지만 이마저도 생각처럼 쉽지 않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풍년가는 간데 없고 한숨만
“가을 추수철. 쌀 생산비는 급등하고 소득은 줄고 올해 농사를 모두 망쳐버린 것 같아 너무나 허망하다. 쌀값은 떨어질 대로 떨어지고 이젠 수매가격조차 신통치 않아 긴 겨울을 어떻게 먹고 지내야 할지 마음이 착잡하네요”
“예년 같으면 수매장 한켠에서 농협과 면사무소 직원들이 내놓은 술국에 막걸리 한잔 마시면서 한해 농사 마무리를 하고 내년 농사도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는 덕담의 자리였지만 대농들이 가져다 놓은 톤백만 즐비하고 이마저도 등급이 낮아 서로 눈치 보기만 하고 있는 것이 달라진 세태입니다”
“코로나가 세상을 많이 바꿔 놓았죠. 술과 수육은 물론 컵라면, 커피, 따뜻한 음료가 있던 자리에 생수나 냉온수기에서 나오는 물로 봉지커피 타서 먹는 것으로 위안 삼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지난 7일 수북농협 창고에서 진행된 공공비축미 매입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의 공통사.
농민들은 지난해 20만원 이상을 웃돌던 쌀값이 올해는 18만원선에 멈추는 등 쌀값 폭락으로 쌓여있던 근심까지 밀려와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엔 좀체 웃음꽃이 피어나지 않았다.
가격 반등이 있지 않는 이상 올해 전국 평균 수매가는 40kg조곡(도정하기 전 건조시킨 벼) 기준 6만원을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수확의 기쁨을 누려야 할 계절이지만 벼를 거둬들인 뒤에도 농민의 한숨은 가시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쌀값이 폭락.
이에 대해 농민들은 벼 생산비가 크게 오른 반면 쌀값은 떨어지면서 벼농사를 포기해야 할 지경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현지 실정과 거리 있는 정부 대책
벼멸구 피해를 농업재해로 인정했던 정부는 11월부터 재해복구비를 지급한다.
지방자치단체가 피해 현황을 접수하고 11월 안에 대파대ㆍ농약대 등 재해복구비를 교부한다.
대파대ㆍ농약대는 피해율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농작물재해보험(병충해 특약)에 가입했다면 보험금을 수령하는 대신 대파대는 받지 못한다. 다만 피해율이 80% 미만일 경우 보험금 수령 여부와 관계없이 농약대는 지급받을 수 있다.
한 농가당 소유한 총 재배면적의 50% 이상에서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2인 기준 117만8400원, 4인 기준 183만3500원의 생계지원비를 준다.
농업정책자금 상환 연기와 이자 감면 혜택도 볼 수 있다.
농가당 피해율이 30% 이상 50% 미만이면 1년, 50% 이상이면 2년 동안 상환을 미룰 수 있다. 농가 경영을 위해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면 최대 5000만원의 재해대책경영자금을 금리 1.8% 수준으로 융자 받을 수도 있다.
벼멸구 피해가 농업재해로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농식품부는 저품질 쌀 유통을 막기 위해 벼멸구 피해 벼와 9월 호우에 따른 수발아 피해 벼도 전량 매입하기로 했다.
문제는 올해산 산지 쌀값이 크게 떨어졌다는 점이다.
올해산 산지쌀값은 10월 25일 기준 정곡 80kg 기준 18만2900원으로 지난해 20만2796원 보다 하락해 정부가 약속한 평균 20만원을 지켜낼 수 있을 것 이라고 생각하는 농민들을 찾기는 모래에서 싹이 트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농업계 전문가와 관계자들은 낮은 쌀값의 주된 원인을 수급 불균형에서 찾고 있다.
수요를 초과하는 많은 생산량과 급격하게 줄고 있는 소비량이 쌀값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쌀 예상생산량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산 쌀 예상생산량은 지난해 보다 4만5000톤 감소한 365만7000톤으로 전망했다.
이에 대해 한 관계자는 “정부 매입을 통해 쌀값이 빠지는 것은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지만 수확기 평균 쌀값이 20만원을 넘는 급격한 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쌀 소비 감소세 변동이 심해 예측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부의 시장격리 계획이 농업 현장의 요구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농업 전문가들은 쌀값을 지속적으로 안정시킬 수 있는 중장기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쌀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은 단기와 중장기로 나눠 떨어진 가격을 회복시키고 장기적인 가격 안정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며 “유효한 단기대책은 대규모 시장격리 외에는 효과적인 방식이 없고 중장기 대책은 정부와 농협, 농업인 등이 소통하며 재배면적을 줄이고 수급을 안정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정종대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