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月斷想/ “남명(南冥)의 단성소(丹城疏)”

한 명 석(발행인)

2024-12-05     한명석

“전하의 국사가 그릇된 지는 이미 오랩니다. 나라의 기틀은 무너졌고 하늘의 뜻도 이미 떠났으며 백성의 마음 또한 이미 전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비유컨대 큰 나무가 백년 동안이나 그 속을 벌레한테 파먹혀 진이 빠지고 말라죽었는데도 그저 바라보기만 하여 폭풍우가 닥치면 견디어 내지 못할 위험한 상태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실정에 있은 지가 오래됩니다. 소관들은 아래서 히히거리며 주색이나 즐기고 대관들은 위에서 거들먹거리면서 오직 뇌물을 긁어모으는데 혈안입니다. 내신들은 파당을 세워 궁중의 왕권을 농락하고 외신들은 향리에서 이리떼처럼 날뛰면서 백성들을 착취하는데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나라가 이 지경이고 보면 대비는 궁궐 안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고 전하는 외로운 고아일 뿐입니다. 저 많은 천재(天災), 천갈래 만갈래로 흩어진 민심은 무엇으로 막고 어떻게 수습할 수 있겠습니까?” 

언제 읽어도 머리끝이 쭈뼛 서는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의 단성소(丹城疏)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 3년째. 공정과 상식을 외치며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에게 많은 국민들이 신뢰와 격려를 보내며 대통령 당선이라는 영예까지 안겨줬지만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공정과 상식은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쳐 버리고 자신과 부인에 대한 특검도 거부하더니 급기야 민주당 등 야당을 향해 파렴치한 종북세력이자 반국가세력이라며 이들을 일거에 처단해 국정을 안정시킨다는 미명아래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이번 헌정 중단 시도는 지지율 10%대로 국정 운영 위기에 처한 윤 대통령이 자신과 국정농단 의혹에 휩싸인 부인 김건희 씨를 지키려는 목적 외에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게 정가의 중론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위헌적이며 위법적인 비상계엄 선포에 야당은 물론 보수언론에서조차 대통령 탄핵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의 비정상적 사고로는 대통령 직무를 더는 수행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군화로 짓밟으려 한 그에게 '내란죄'를 물어야 한다는 요구도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헌법상 내란죄는 대통령도 형사 소추를 피할 수 없는 중대범죄입니다.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1979년 12월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계엄령을 선포한 이후 45년간 대한민국이 일궈온 민주주의의 시간표를 거꾸로 되돌리는 퇴행에 다름아닙니다. 또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를 범죄자의 소굴이자 괴물로 규정한 해괴하고 독특한 사고방식을 소유한 윤 대통령이야말로 시대적 괴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계엄령이 선포되자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자체가 너무나 위험한 존재이자, 헌법을 파괴하고 짓밟는 범죄자”로 규정하고 “즉각적으로 대통령 직무를 정지시키고 내란죄 현행범으로 체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계엄령 선포를 둘러싼 일련의 행태를 볼 때 윤 대통령은 이미 국가원수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판단력과 이성을 상실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만큼 국회가 국민과 국가를 배신한 윤 대통령에게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기자가 화두를 남명 선생의 ‘단성소(丹城疏)’로 시작한 연유는 작금의 국내 상황이 당시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정이 그릇된 지는 이미 오래고, 조직의 기강은 벌써 무너졌으며 하늘의 뜻도 국민의 마음도 이미 멀어졌음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못 먹는 감 찔러버린다’는 속담처럼 버티기로 일관한다면 항차 우리나라는 남명 선생의 상소문처럼 ‘벌레한테 파먹혀 진이 빠지고 말라죽었는데도 그저 바라보기만 하여 폭풍우가 닥치면 견디어 내지 못할 위험한 상태의 나무’와 다를 바 없어진다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사실입니다.

지금이야말로 국민들이 힘을 모아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윤 대통령의 무모한 버티기야말로 대한민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으로 심각하게 작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윤 대통령의 이러한 작태야말로 대한민국의 명예를 더럽히고 실추시키며 국민의 복리에 반하는 행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이제 국민의힘 국회의원들도 나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명색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꿀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국민들에게 그다지 좋은 모습으로 비쳐지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물론 미꾸라지 한 마리를 풀어놓은 채 온 웅덩이가 흐려지도록 방관만 하고 있었던 무관심에 대한 반성도 함께 따라야겠지요.

몸에 맞지 않는 의복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뿐 자신이나 주변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법, 윤 대통령 또한 그간의 행위에 대한 깊은 뉘우침으로 스스로 대통령직을 사퇴하고 자중하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국민에 대한 도리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전제군주 시절, 임금을 고아라 하고 대비를 한낱 과부라 칭한 남명의 극언은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들의 안위를 염려했던, 그래서 하늘과 같은 임금의 존재조차 개의치 않고 당당히 자기주장을 펼쳤던 진짜배기 선비의 기개에서 비롯됨이 아닐까요? 그 선비의 우람하고 당찬 기개를 오늘날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소박한 소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