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月斷想/ 담양군민에게 정의로운 길을 묻다
한 명 석(발행인)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이름은 몰라도 그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인 프로크루스테스는 아테네 인근 케피소스 강변에 살던 연쇄살인범이다. 숙박업소를 운영했던 그는 찾아오는 손님들을 철제 침대에 눕혔다. 그러고 나서 그들을 침대 크기에 맞춰 죽였다. 키가 침대 길이보다 큰 손님은 튀어나온 만큼 머리나 다리를 톱으로 잘라내고, 키가 작으면 늘려서 죽였다. 설령 침대에 키가 딱 맞는 손님이 오더라도 죽는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키가 큰 손님에게는 작은 침대를, 키가 작은 손님에게는 큰 침대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기준을 강요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 기준을 상황에 따라 바꾸는 게 더 큰 문제다.
최근 치러진 민주당 담양군수 후보 경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착잡한 심정 금할 길이 없다. 최종 결선 과정에서 나타난 이해하기 힘든 여론조사 결과를 둘러싸고 데이터 공개를 요구한 후보의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부한 민주당 선거관리위원회의 행태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
담양군수 재선거는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당선된 이병노 군수가 선거법 위반으로 대법원에서 당선무효형이 확정되면서 치러지게 됐다. 원인을 제공한 측면에서 민주당 역시 이번 재선거의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당시 민주당 군수후보 경선을 앞두고 이병노 후보가 여론조사조작혐의로 중앙당공관위로부터 후보자격이 박탈됐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비대위원과의 결탁을 통해 판을 뒤집고 공천을 획득한 사실에 주목한다. 이때부터 이미 민주당은 잘못된 판을 깔았고 예견된 수순을 거쳐 이병노 군수는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
엄밀히 따지자면 원죄를 잉태한 민주당의 책임으로 재선거가 치러지는 만큼 이번 선거에 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말았어야 했다. 부득이 후보를 냈어야 한다면 후보 선택권을 오롯이 담양군민에게 돌려주었어야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자신들의 잘못으로 치러지는 재선거에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당헌 당규를 앞세워 특정후보에게는 정치신인이라는 이유로 20%의 가산점을 주고 또 다른 후보에게는 탈당 후 무소속후보를 도왔다는 이유로 25% 감점을 적용하는 등 2차 가해를 저질렀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이병노 후보를 살리고자 했던 일부 비대위원에 의해 심각한 가해를 당한 피해자에게 민주당은 또다시 2차 가해를 저지른 것에 다름아니다.
담양군민의 민의는 도외시하고 그저 자기가 만들어놓은 침대에 사람들을 눕혀놓고 인위적으로 키를 줄였다 늘였다 하는 프로크루스테스처럼 해괴망칙한 짓을 벌인 게 바로 민주당이다. 담양군민으로서 그리고 민주당원으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는 시점이다.
또 하나, 이번 재선거의 원인제공자이자 정치활동 정당활동이 금지된 이병노 전 군수와 측근들이 선거판에 뛰어들어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특정 후보 당선을 위해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사실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9억여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재선거비용을 고스란히 군민들에게 떠넘긴 장본인이자 자중자애하고 근신해야 할 이병노 전 군수의 최근 행보를 보면서 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그림자가 아른거림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일까?
혹여 특정후보의 선거를 돕고 그 보답으로 상왕이나 섭정의 자리를 탐한다면 얼마가지 않아 후회할 것이니 생각조차 거두시길 충고한다. 적어도 내가 아는 그 후보는 그대들이 생각하는 만큼 어리석지도 않고 그대들이 생각하는 만큼 호락호락하지도 않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담양은 단순한 행정구역이 아니다. 생태·인문·정원도시로서 새로운 도약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공동체 정신을 중시하는 지역이다. 이러한 담양의 정체성을 고려할 때, 담양을 깊이 이해하고 군민과 함께 호흡해 온 토박이 군수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 지난 2월 8일 출판기념회를 통해 담양에 얼굴을 내민 지 불과 한 달 만인 3월 8일에 민주당 담양군수 후보로 선출된 이재종 후보의 행보에 많은 의문이 남는다.
이재종 후보는 수북중학교를 졸업하고 광주 정광고등학교와 전남대학교를 거쳐 정계에 입문한 뒤 광주시의회 보좌관과 민주당 광주시당 정책미디어실장을 역임하고 문재인정부에서는 청와대 춘추관 행정관을 지내는 등 정치경력을 쌓았다. 그의 정치경력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나름의 피나는 노력과 인고의 결과로 생각한다.
이 후보는 학창 시절 이후 사실상 최근까지 타지에서 생활한 관계로 담양군민들에게는 새로운 인물이나 다름없다. 그가 살아온 행적을 전혀 알 수 없으니 새로운 인물이라기보다는 신비롭다고 해야 더 어울릴 것 같다.
담양군민들은 이 후보가 젊은 시절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며 살아왔는지 무척 궁금해 한다. 그가 무슨 일로 돈을 벌어 먹고 살았는지? 그 과정에서 불법이나 검은 거래는 없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보니 그에 대한 검증이 충분할리도 없다. 그저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잘 포장된 상품을 두고 일부 군민들은 열광하기도 한다. “젊고 신선한 인물”이라고. 이재종 후보는 이 부분에 대해 담양군민 앞에 솔직히 답해야 한다. 과거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살았는지.
담양군 조례에는 마을 이장 선거에 출마하려 해도 전임 이장 임기 만료 전 1년 이상 현지에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이 명문화되어 있다. 이장만 하려고 해도 지역 실정을 잘 알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조례다.
그런데 담양에서 오랜 세월 주민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사람이 아닌, 단지 '고향이 담양'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민주당 담양군수 후보로 선출한 사람들은 누구이며, 이 과정을 기획한 민주당 관계자들은 누구인가? 더구나 지방자치가 정착되어가고 있는 오늘날, 과거 청와대 행정관 경력만으로 얼굴을 내민 지 한 달 만에 민주당 담양군수 후보로 결정된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이는 지역의 자치성과 민주적 절차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사건이다.
담양은 예로부터 ‘추성창의(秋成倡義)’ 정신을 간직한 의(義)의 본향이다. 역사적으로 담양군민은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잘못된 구조와 부정을 바로잡기 위해 의롭게 나섬으로써 의(義)를 몸소 실천해왔다.
오늘날 담양을 둘러싼 시대적 고민은 단순한 행정적 문제를 넘어선다. 이웃과 함께 행복한 공동체를 이루고, 외부 지역과의 협력을 통해 건강한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 그리고 진정으로 담양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인물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되었다. 중앙정치판에서 기획한 대로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담양의 미래를 개척하는 것이 진정으로 담양군민들이 바라는 길이 아닐까?
담양은 결코 누구 한 사람의 개인적 야망을 위한 무대가 아니다. 나아가 누군가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먹잇감은 더더욱 아니다. 담양 땅을 딛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 가꾸어 가야 할 기름진 터전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과연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정의로운 담양을 꿈꾸는 군민이라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