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그들이 대(竹)를 알어?”
故 남상관 담양읍 죽로차작목회장 취재기
“하찮은 식물이지만 대나무에서도 배울 점이 많제. 우리 사람들도 세상에 태어나는 과정을 잘 생각해 보면 금방 알어.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힘이 합쳐지지 않으면 어림도 없다 이거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사람들 중에 뿌리도 없이 지 때갈로 세상에 나온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녀.”
대나무고을 담양, 국민 상당수가 대(竹) 하면 담양을 연상하고 담양사람들은 담양산 대나무가 전국 으뜸이라며 자랑을 늘어놓지만 막상 “담양산 대나무가 왜 좋은데?”라는 질문에 부딪히면 금세 얼버무리고 만다.
본지는 대나무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우리만큼 대나무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故 남상관 회장(담양읍 죽로차작목회) 취재기를 게재한다. 이 기사는 필자가 타 언론사에 근무할 때 취재한 기사로 당시 남상관 회장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들여온 대나무 관련 서적을 수십권 씩 보유하고 탐독할 정도로 대나무에 큰 관심을 기울여 왔다.
대체 담양산 대나무가 왜 좋다는 것일까?
담양 토박이자 대나무에 관한 한 박사 수준을 능가한다는 남상관 회장(담양읍 죽로차작목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대나무는 기후조건과 분포지역을 기준으로 크게 남방대와 북방대로 나뉘는데 담양은 남방대의 북방한계선이자 북방대의 남방한계선에 위치해 있거든. 그렇다보니 남방대의 장점과 북방대의 장점을 고루 갖춘 우수한 품질의 대나무가 생산된다 이거야. 바다에도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지점은 어종도 풍부하고 고기 맛도 좋다고 하잖어. 같은 이치여.”
자고로 대나무는 겨울에 눈을 맞고 자라야 튼실하다는 덧붙임과 함께 항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대나무에 관한 신기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대나무는 화분과 식물로 분류되어 있지만 딴 식물들과 달리 유일하게 대가족제도를 이루고 있는 식물이제. 죽순이 만들어지는데는 부모의 힘만으로는 어림도 없어.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가세해야 죽순이 만들어지거든.”
이야기가 이 대목에 이르자 갑자기 남회장의 표정이 달라지면서 이야기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한다. 사람과 대나무는 유전자 수도 24개로 같고 그 구조 또한 동일하다는 놀라운 이야기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 또한 대와 인간이 흡사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하찮은 식물이지만 대나무에서도 배울점이 많제. 우리 사람들도 세상에 태어나는 과정을 잘 생각해 보면 금방 알어.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힘이 합쳐지지 않으면 어림도 없다 이거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사람들 중에 뿌리도 없이 지 때갈로 세상에 나온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녀.”
남회장의 죽순 생성과정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략 이렇다. 대나무는 1년생에서는 절대 죽순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 생명력을 뿌리에 담아둔다. 다시말해 자식의 생명은 손자를 위해 뿌리에 담아두고 자식과 함께 힘을 모아 이듬해인 2년째에 죽순을 생성해낸다는 것. 이야기대로라면 죽순은 자식이 아니고 손자인 셈이며 부모는 자식을 위해 세상빛도 보지 못한 채 희생을 하고 있다는 눈물겨운 이야기가 된다.
남회장의 이같은 대나무이야기는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대나무와 관련된 연구활동이 미진해 학문이나 학설로 정립된 부분은 없지만 수십년을 대나무와 함께 해온 경험에서 비롯된 터라 상당부분 논리적 접근이 가능한 측면도 있다.
죽로차 한잔으로 목을 축인 뒤 남회장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죽순에는 말이여 첨단 성능을 지닌 센서가 있어. 죽순이 자라면서 뭔가 파장을 발산해내는데 이 파장에 장애물이 포착되면 죽순은 금새 방향을 바꿔버려.” 남회장은 이런 죽순의 모습을 보면서 대나무에는 분명 밝혀내지 못한 굉장한 힘이 스며있음을 느낀다고 한다.
“내가 이런 소리 하면 사람들이 웃을지 모르겠지만 대나무에도 분명 암수 구별이 있어. 대나무를 잘라서 수액이 나오면 그것은 암대고 수액이 없으면 숫대여. 또 죽순이 대나무로 변모하면서 첫가지가 쌍으로 나오면 암놈이고 외로 나오면 숫놈이제. 그런데 사실 숫놈은 찾아보기 힘들어. 숫대는 죽순을 만들기 위해 양분을 공급해주는 식량창고 역할만 하거든. 그러니까 굳이 많은 숫자가 필요없는거지.”
남회장의 이 이야기는 아직 누구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사실이지만 남회장 자신은 오래전부터 탐독해 온 외국서적과 잡지 등에서 얻은 지식을 직접 시험을 통해 밝혀낸 사실이라며 강한 확신을 내비쳤다.
사시사철 푸른 댓잎은 포도당 때문
“대나무잎이 사시사철 푸르름을 유지하는데도 다 이유가 있어. 대나무에는 스스로 5년간을 지탱할 수 있는 천연 포도당이 비축되어 있는데 이 포도당이 대나무가 섭취한 양분을 분해시켜 댓잎에 공급해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사시사철 댓잎이 푸르게 유지되는거여.”
70이 넘은 고령이지만 아직도 얼굴에 홍조가 가득할 정도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남회장은 자신의 건강비결을 대나무수액에서 찾는다.
“내가말이여, 이 나이에도 건강을 유지하고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전부 대나무 덕택이제. 흔히들 생죽력으로 부르는 대나무수액을 매일 마시고 있거든.”
대나무수액에는 인체에 유익한 각종 영양소와 호르몬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대나무수액을 상시 복용하면 건강해진다는 주장이다.
최근들어 대나무신산업화에 대한 강한 열풍이 일고 있는 것에 대해 다소 늦은감이 없진 않지만 한편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는 남회장은 농촌의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요새 농촌지역에서 폐비닐 등을 몰래 태우면서 대기오염을 부추기고 있는데 이것 큰일이여. 비닐을 태우면 다이옥신이라는 유독물질이 발생하는데 요놈은 없어지지도 않고 공기중에 머물다가 어디엔가 스며들거든. 결국 그놈의 다이옥신을 누군가가 또 묵게 된다 이거여. 행정당국에서 아무리 태우지 말라고 한들 어쩌겄어. 태우지 못하게 할라면 뭔가 방법을 찾아줘야 할 것 아닌감. 방법도 안가르쳐 주면서 태우지 말라고만 하니까 농민들은 답답하고 그러니까 몰래 태우는거지.”
남회장은 이제 폐비닐도 무조건 태우지 못하게 할 게 아니고 태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태우긴 태우되 대나무숯으로 태우면 된다는 것이다.
대나무숯에서 발생하는 음이온이 다이옥신을 잡아주기 때문에 대나무숯과 함께 태우면 다이옥신 발생을 현저히 감소시킨다며 직접 소각로에서 실험을 해보라는 권유도 곁들였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대나무에 푹 빠져들게 만든 남회장의 이야기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학문이나 학설로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미 이웃 일본에서는 이와 관련된 저서나 학술논문 등이 발표돼 검증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설사 남회장의 이같은 주장이 학문적인 바탕에 근거하지 못하고 그저 실증경험에서 얻어낸 이야기에 불과할지언정 대나무의 본고장임을 자처하는 담양에 적어도 대나무에 이정도 애정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담양 대나무의 미래는 밝게 조명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