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에서 꽃피는 K-정원, 세계 문화유산으로의 도약
1. 죽녹원과 소쇄원, 국가정원 도약의 지렛대 될까?
죽녹원의 깊은 멋과 대숲이 주는 청량한 아름다움은 이미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 뉴욕 한복판에 설치된 소쇄원의 ‘애양담’은 한국 정원의 미학을 알리고 있다.
이제는 죽녹원의 이야기성과 소쇄원의 철학적 요소에 시너지를 발휘시켜 국가정원으로 승격을 통해 그 가치를 공고히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본지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받아 순천만 국가정원, 거창 창포원, 국립세종 수목원과 일본 교토의 전통 정원을 찾아 무엇을 배우고 특색을 살려 어떻게 한국 정원의 가치를 계승할 수 있을까에 대한 기획 기사를 게재할 예정이다.
■ K-정원 세계가 주목하다.
첼시플라워쇼는 1827년 시작된 세계최대 정원박람회다. 영국왕립원예학회(RHS)가 주관하는 왕실행사로 정원예술가들에게는 꿈의 무대다. 그곳에서 황지해 작가는 첫 출품작인 ‘해우소: 마음을 비우다’에 이어 두 번째 출품작인 ‘고요한 시간―DMZ 금지된 정원’이 연달아 금상을 받았다.
그는 인터뷰에서 “유럽의 인공정원을 보며 부러워할 게 아니라 우리정원, 내가 자라면서 보아온 자연의 정원을 추억하게 되었다. 밤중에 일어나 변소를 가면서 보았던 밤 별, 새벽녘 바람, 흙냄새 같은 것들.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에 학교도 포기하고 첼시에 설계도면을 보냈다”고 밝혔다.
300여 종 1만여 그루의 식재로 구성된 ‘고요한 시간-DMZ 금지된 정원’은 예쁘고 반듯한 정원이 아니다. 야생화, 들풀을 심고 60%가 우리 토종 식물이다.
엘리자베스 뱅크스 영국왕립원예학회 회장은 “내가 평생 보아온 가든 중 가장 심금을 울리는 작품”이라고 극찬했고 더 타임스는 “철책과 초소로 꾸며져 생경한 이 작품은 올해 여왕이 만나게 될 가장 독창적인 정원”이라고 소개했다.
영국의 한 원예전문잡지는 “DMZ정원이 전달하는 화해와 치유라는 주제는 첼시 플라워쇼에 출품된 다른 작품들을 가볍고 예쁘기만 한 정원들로 만들어버렸다” 평했다.
또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한 2023 국제원예박람회에 한국적 특색을 살린 야외정원과 스마트가든 기술력으로 조성된 한국정원은 현지인은 물론 전세계 관광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한국수목정원관리원 관계자는 “한국의 옛 정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지역의 재료를 대부분 활용해 지속 가능성을 높이려 한 점이 주효한 것 같다”며 “지금까지 조성된 대부분의 해외 한국 정원이 전통 정원을 재현하는 형태였지만 도하의 한국정원은 전통 정원의 공간 구성 방식을 차용하되 독창적이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등 현지 문화와 기후에 적합하게 조성한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한국정원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구성한 다양한 정원, 전통 별서정원의 공간 구성 방식을 차용해 자연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우리 전통 정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K-정원은 등장과 동시에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 남도 정원의 정수를 보여주는 소쇄원과 죽녹원
최근 현대적 기법으로 전통을 재해석한 한국 정원을 만들어야한다는 공감대 속에 K-가든을 정립하려는 시도들이 있다.
이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우리나라 대표 민간 별서원림(別墅園林)인 소쇄원.
별서는 요즘의 별장과 같은 뜻이고 원림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게 적절히 조영한 곳을 뜻한다.
별서와 원림은 한국정원의 소박한 미학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다.
1981년 국가사적 304호로 지정된 소쇄원은 창덕궁의 후원처럼 우리나라 전통 정원이다. 중국과 일본처럼 축경(縮景)을 통한 인위적인 조경을 하지 않고 주위 자연을 그대로 빌리는 차경으로 한국 민간 정원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
소쇄원의 전체적인 면적은 1400여 평의 공간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조성된 건축물과 조경물은 상징적 체계에서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절묘하게 이루고 있다.
또 팔괘와 음양오행 등 유교 사상에 정통한 학자였던 양산보가 주도면밀하게 수목과 건축물을 배치하며 아름답게 조성한 정원은 이곳을 찾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또 죽녹원을 보자.
1970년대 이후 죽물(竹物)이 플라스틱에 밀리고 중국산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할 때만 해도 담양 사람들은 “대나무로 먹고살던 시대는 우리 대(代)에서 끝났다”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담양군은 2003년부터 대나무밭을 사들여 죽녹원을 조성하고 대나무로 가로수를 심기 시작했다.
당시 지역사회에도 “사양길로 들어선 대나무로 뭘 하자는 건가” 하는 싸늘한 분위기가 있었지만 중국 저장성의 대나무도시를 벤치마킹해 생태도시라는 타이틀을 내세워 관광의 도시로 발돋음하게 된 것이다.
죽녹원은 점차 부지를 넓혀 현재는 31만㎡의 공간에 울창한 대나무숲과 가사문학의 산실인 담양의 정자문화 등을 볼 수 있는 시가문화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망대, 쉼터, 정자, 다양한 조형물을 비롯 영화·CF촬영지와 다양한 생태문화관광 시설을 갖추고 있어 연간 관광객 100만명이 찾는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명소로 자리잡게 되었다.
죽녹원과 소쇄원은 자연을 담은 한국정원이라는 점에서 국가정원으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조성·운영하는 지방정원이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국가정원으로 승격할 수 있는 자격이 된다. 총 면적 30만㎡ 이상 등의 면적 기준과 정원 관리 전담인력이 8명 이상일 것 등의 조직 및 인력 기준을 만족해야 하고 지방정원으로 등록한 후 3년 이상 운영되면서 정원 품질과 운영관리 평가 결과가 70점 이상이어야 한다.
국가정원에 여러 지자체들이 앞다퉈 도전하는 이유는 생태환경을 보전하면서도 지역경제에 커다란 활력을 주는 영향력 때문이다.
죽녹원은 대나무숲 사이 사이로 이곳저곳을 거닐 수 있지만 과밀한 관광객으로 인해 좁은 동선이 만들어지는 공간적 한계가 있고 대숲 중심으로 식생의 다양성이 떨어진다.
또 소쇄원은 사유지로 문화재로서 활용도에 제약이 있기 때문에 ‘관광지’ 그 이상을 요구하는 국가정원의 요건을 충족시키기 어렵다.
지역의 문화와 정체성을 담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품은 이 공간들이 이제는 단순한 명소를 넘어 ‘정원강국’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식물의 다양성을 확대 해 대나무 외 테마 정원을 개발하는 방법, 죽녹원의 이야기성과 소쇄원의 철학적 요소를 콘텐츠화 하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
세계가 주목하는 K-정원 중심에 죽녹원과 소쇄원이 있다. 이제는 이를 든든하게 뒷받침해 줄 국립정원문화원도 있다.
지역의 문화와 정체성을 담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품은 이 공간들이 이제는 단순한 명소를 넘어 ‘정원강국’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거듭나야 할 때다.
/김고은·김지헌 記者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