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에서 꽃피는 K-정원, 세계 문화유산으로의 도약

2.국가정원 1호 순천만 국가정원은 ing

2025-08-21     김고은 기자

“공무원 한 명이 남도의 작은 도시를 달라지게 했다”

최덕림 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총감독은 순천만 습지를 복원하고 국가정원으로 탄생시키는 과정에서 공직자의 의지와 철학이 어떻게 현실을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이다. 

매일같이 순천만 습지를 걸으며 삽을 들고 땅을 다듬은 그가 한 일은 환경 정비가 아니었다. “자연이 사람을 이긴다”라는 철학 아래 습지를 지키고 정원을 만들기 위한 복원의 시작이었다. 

이 걸음은 땅을 살렸고 사람을 불러 오늘날 순천만 국가정원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상징처럼 회자된다. 

2007년 순천만을 중심으로 한 습지 보호정책이 시작된 이후 2013년 국제정원박람회를 계기로 국가정원으로 승격된 순천만 국가정원은 매년 수백만명의 관람객을 끌어들이며 정원관광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순천만 국가정원은 단순한 조경 사업의 성과물이 아니다. 생태복원, 도시재생, 문화관광, 시민참여라는 네가지 가치가 유기적으로 맞물린 대한민국 최초의 국가정원 1호다.  

이는 정원이 단지 ‘잘 가꾼 장소’가 아니라 시간과 자원이 축적되어야 완성되는 문화적 공간이라는 점을 확실히 보여준다. 

무엇보다 자연에 대한 존중과 철학이 행정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준 사례라는 점에서 전국 지방정부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순천만 국가정원이 가장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정원이 단순한 경관공간을 넘어 지역의 삶을 바꾸는 문화적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도시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생태정원은 관광객뿐만 아니라 주민들에게도 일상 속 쉼표가 되며 경제와 문화, 복지가 어우러지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순천만국가정원이 ‘배움의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원은 단지 관람을 위한 조경이 아니라 누구나 자연을 경험하고 생태감수성을 키우는 살아있는 교실이다. 

순천시는 정원 교육을 정규화해 ▲유아대상의 ‘꼬마정원사’ ▲향기테라피 ▲허브정원만들기체험 ▲정원 속 명상산책 등 다양한 치유 중심 콘텐츠가 마련되어 있으며 일부 과정은 장애인, 우울경험 청년, 고령층을 위한 정서적 회복 프로그램으로 연계되고 있다. 

정원을 통한 치유와 교육, 생태적 감각 회복이 한데 어루어지는 사례로서 순천만은 ‘보는 정원’에서 ‘사는정원’으로 진화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순천만국가정원을 둘러보며 떠오른 물음은 하나였다. 

 

◎“이곳은 과연 한국 정원인가?”

주제별로 분절된 정원구역과 관람 중심의 동선, 조형위주의 연출은 완성도 높은 정원이지만 전통한국정원에서 느낄 수 있는 정서적 여백과 철학적 사유는 상대적으로 옅게 다가왔다. 

정원은 식물과 시설을 잘 배치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왜 그 자리에 그러한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지 정원의 이유와 의미를 말해주는 공간이어야 한다. 순천은 공간의 완성에는 성공했지만 정신의 완성에는 아직 향해야 할 길이 있다. 

 

◎한국적인 국가정원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전남에서 유일하게 지방정원으로 지정된 죽녹원은 단순한 대숲의 풍경이 인상적인 관광지가 아니다. 진정한 가치는 죽녹원을 중심으로 관방제림, 소쇄원, 식영정, 면앙정 등 전통 가사문학 정원으로 이어지는 자연과 정원의 연속성에 있다. 

담양에 곳곳에는 단절된 공간이 아닌 걷고 머물며 사유하는 흐름 속에 정원들이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 한국 전통 정원의 철학을 공간적으로 구현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가사문학면에서 담양읍까지 선현들이 자연을 벗삼아 시를 짓고 삶을 돌아보던 장소들이 남아있다. 그 속에서 정원은 단지 꾸미는 공간이 아니라 머무는 철학으로 기능했다. 

이는 죽녹원 일대가 국가정원으로 승격된다면 담양이 전통 정원문화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새로운 국가정원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는 근거로 제시될 수 있다. 

특히 단순히 관람객을 위한 공간이 아닌 지역과 주민이 참여하고 함께 해석하는 문화자원형 정원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저력도 보여준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를 위해 ▲문화와 생태를 연계한 정원 해설 ▲죽림 속 시 짓기 체험   ▲죽로차 체험 ▲정원문화해설사 양성 등 현재 지역문화와 연결해 운영되고 있는 콘텐츠를 좀 더 강화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지역의 정원문화를 해석 가능한 콘텐츠로 전환시키고 일자리 창출과 교육 자원화, 체류형 관광기반 조성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죽녹원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보다 ‘무엇을 느끼게 할 것인가’를 중심에 두어야 테마형 관광정원과 분명히 다른 정원의 철학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넓은 면적에 정원을 조성할 수 있는 예산과 기술이 있다고 해서 전정한 국가정원이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정원이 품어야할 정신, 담아야 할 이야기, 함께할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있을 때 국가정원은 단지 좋은 공간을 넘어 공공의 철학이 된다. 

순천만 국가정원은 자연에 대한 존중과 철학이 행정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가르쳐주었다. 그 배움을 바탕으로 정체성을 채워줄 다음 국가정원의 모델로 죽녹원에서 무엇을 완성할 것인지 보여주어야 할 차례다.

/김고은·김지헌 記者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