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에서 꽃피는 K-정원, 세계 문화유산으로의 도약
4. 세종수목원 한국관에서 만나는 전통의 두 얼굴
국립세종수목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도심형 국립수목원으로 행정수도 세종시 한복판에 자리잡았다. 전국 어디서든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이 곳은 총 65ha 부지에 4367여 종의 식물이 전시되어 있다.
지구 온난화와 기후위기로 인해 기후·식생대별 식물자원 보전과 관리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수목원의 1차적 목표는 다양한 식물을 수집·보존·육성하는데 있다. 동시에 정원산업 생태계구현을 위한 국민 체감형 정원문화 확산, 생활 속 정원 인프라 조성과 관리에도 힘을 쏟고 있다.
전통정원과 분재원, 사계절 온실, 어린이 정원 등 주제별 공간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 교육과 연구, 휴식의 기능까지 아우르며 세종시를 대표하는 녹색 거점으로 자리매김했다.
세종수목원은 정원전시 관람지구 (△한국전통정원 △분재원 △야생화원 △단풍정원 △양서류관찰원 △습지형생태숲 △청류지원 △붓꽃원 △담장정원), 식물교육체험지구 (△민속식물원 △사계절전시원 △희귀·특산식물원 △숲정원 △정원식물가늠터 △치산녹화원 △치유정원 △무궁화원 △유아숲체험원 △폴리네이터가든 △IFLA세계조경가대회 기념정원), 커뮤니티참여활동지구(△어린이정원 △축제마당 △생활정원 △후계목정원 △감각정원 △공유정원)로 총 26개소가 있다.
그 가운데 한국전통정원은 한국 정원의 뿌리와 미래를 동시에 담아낸 곳이다. 총 3만㎡규모의 한국관은 궁궐정원, 별서정원, 민가 정원으로 나뉘어 왕실과 선비, 백성의 일상을 아우른다.
이곳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한국정원이 지닌 정체성과 향후 K-정원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상징적인 무대다.
세종수목원 궁궐정원은 창덕궁 후원의 부용지와 주합루(세종루)를 본떠 조성됐다. 연못 한가운데 소나무를 심은 작은 섬을 두고 그 둘레에 정자와 누각을 배치했다. 단순히 아름다운 경관을 위해서가 아니라 불로장생과 왕권의 이상세계를 구현하기 위한 장치였다.
부용과 애련으로 불린 연못은 청렴과 고결을 상징하고 정자는 학문과 예술의 무대였다.
겉으로는 자연을 품은 듯 보이지만 그 구조는 철저히 계산되고 상징으로 채워져 있어 너무 인위적이지 않은가? 라는 이질감이 느껴졌지만 그 인위성이 조선 정원의 본질이기도 했다.
자연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대신 정치적 이상과 권위를 정원 공간 속에 치밀하게 심어 권력과 이상을 표현한 궁궐정원은 정치적 정원으로서 분명한 역할을 해왔다.
궁궐정원이 인위와 권위를 드러낸 공간이라면 이어지는 별서정원은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담양 소쇄원을 모티브로 삼은 세종수목원 별서정원은 흐르는 계류와 낮은 담장, 숲과 정자가 어우러져 있다. 자연과 함께 거닐며 사유하고 은거했던 선비들의 정원 정신이 깃든 곳이다.
세종수목원은 소쇄원의 풍경을 단순히 축소하지 않았다. 그 철학을 현대적 정원언어로 풀어냈다.
관람객은 이곳을 걸으면서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공존해야하는가’라는 질문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이는 단순한 경관 감상이 아닌 사유와 교육의 장으로서 별서 정원의 의미다.
별서정원의 사유적 풍경을 뒤로하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분재원은 국내 최대 규모의 분재 전시공간으로 수십년, 길게는 수백년의 세월을 담은 나무 2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작은 화분 속에 숲과 산맥을 담아낸 분재는 자연을 압축한 예술이다.
최근에는 소쇄원의 정취를 분재로 재현한 특별전이 열렸다.
소나무와 은행나무 분재가 정자와 계류를 배경으로 놓이며 축소된 형태로 소쇄원의 풍경을 전했다. 별서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담는 사유의 공간이라면 분재원은 자연을 손안에 응축한 예술의 공간이다.
◎ K-정원의 또다른 축, 담양
세종수목원에서 마주한 궁궐정원은 철저히 계산된 공간 배치와 상징을 통해 왕권의 권위와 이상을 드러냈다. 순천만 국가정원 역시 규모와 화려함으로 관람객을 압도하며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동시에 인위적 연출이 전면에 드러난다.
반면 죽녹원과 소쇄원 같은 담양의 정원들은 자연 속에서 사유와 휴식을 가능하게 하는 별서의 미학을 이어간다. 대나무 숲길을 걷는 단순한 경험만으로도 공존의 철학이 살아난다. 거창 창포원은 이 두 축 사이에서 지역성과 생태성을 강조하는 균형점 역할을 한다. 아이리스와 사과정원을 비롯한 지역 자원을 생태적으로 엮어낸 창포원은 화려한 볼거리는 부족하지만 지역 자원을 생태적으로 연결한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의미 있는 대안을 제시한다.
이처럼 궁궐정원과 순천만이 보여준 인위적 장엄함, 죽녹원과 담양 정원이 지닌 자연친화적 사유의 공간, 그리고 창포원이 드러낸 생태적 균형은 상반되면서도 동시에 K-정원의 스펙트럼을 완성한다.
인위와 자연, 압도와 공존이라는 두 극을 어떻게 조화롭게 풀어낼지는 앞으로 한국 정원이 세계 무대에서 설 자리를 결정짓는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국가정원 지정을 위해 단순히 규모를 키우는 방식은 더 이상 해답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담양만의 정원성을 정원 디자인과 프로그램 속에 담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담양의 강점은 거대한 시설이 아니다.
죽녹원과 관방제림, 메타세쿼이아길로 이어지는 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정원으로 손색이 없다. 대나무 숲길에서 시작해 천연기념물 관방제림을 지나 사계절을 달리하는 가로수길까지 이어지는 흐름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경쟁력 있는 정원 축이다.
중요한 것은 이 자산들을 단순히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하나의 정원 프로그램으로 엮어내는 일이다. 전체를 거닐며 정원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스토리와 동선을 설계한다면 담양은 국가정원으로서 독창적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관광자원이 아니라 ‘자연과 힘께 살아가는 정원성’을 생활 속에서 구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는 공존의 철학을 극대화한 담양의 정원은 압도적 규모와 인위적 연출이 지배하는 국제 정원 문화 속에서 차별화된 길을 보여줄 수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K-정원은 세계 속에서 자기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김고은·김지헌 記者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