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짜여진 각본의 주인공이 되지 마세요”

김 대 곤(담양경찰서 수사과)

2025-09-08     담양곡성타임스

피싱범죄는 보이스피싱, 메신저피싱, 스미싱, 로맨스스캠, 몸캠피싱, 노쇼사기, 팀미션사기, 직거래사기, 쇼핑몰사기, 투자리딩방 등 유형은 실로 다양하고, 여러 범행수단과 조직이 융합되어 교묘한 신종 수법을 사용해 피해자들에게 접근하여 피해자들이 다시 딛고 일어설 힘과 의지까지 뺏어가는 조직적 악성 범죄이다.

그 피해는 ‘06년부터 ‘24년까지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규모는 총 34만건에 5.7조원 상당였으나, 올 한해 들어 7월까지 피싱범죄 14,707건 발생에 피해액이 7,992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피해액이 거의 두 배(98.7%) 가까이 증가했고 역대 최고를 기록하는 등 피해가 매우 심각한 실정이다. 

기관사칭형 보이스피싱은 전화ㆍ문자 등 최초 접근하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질 뿐, 결국 검사나 경찰ㆍ금융감독원처럼 정부기관으로 속여 말하여 ‘범죄에 연루되었으니 무혐의를 입증하려면 자산 검수에 협조하라’라고 속이는 특징을 지닌 전형적인 수법이다. 피해자 연령대도 30대 이하 청년층이 전체 피해자의 절반 이상(52%)를 차지하고, 50대 이상 중장년층도 약 43%의 비중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유형인 대출빙자형 보이스피싱은 제도권 금융에서 정상적인 대출을 받기 어려운 서민들을 노려, 저금리 대환대출을 미끼로 돈을 편취하는 수법으로 주로 경제적 활동이 왕성한 40~60대의 피해가 80% 상당을 차지하는 등 경제적 취약계층을 집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이처럼 보이스피싱은 더 이상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청년층부터 중장년층까지 전 세대를 위협하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사회적 재난과 같은 범죄이다.

보이스피싱 조직범죄 시나리오는 초반부터 “요즘 개인정보 유출이 많아 이에 연루된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며 “개인정보를 불러주면 유출될 위험이 있어 사건정보 확인 사이트에 입력해서 확인해 보아야 한다.”라는 등 자신들이 피해를 막아주는 기관인 것처럼 신뢰를 쌓아간 후 조작된 상황을 치밀하게 연출하면서 피해자를 단계적으로 보이스피싱 시나리오에 끌어들여 진짜처럼 꾸며진 사칭 사이트와 피해자의 인적사항이 적시된 서류를 제시하는 등 피해자가 실제로 범죄에 연루되었다고 확신을 갖게 만든다. 피해자 본인이 직접 확인한 내용을 믿고 보이스피싱이 아니라는 확신을 하는 순간, 피해자는 오히려 범인에게 의지하게 되고 스스로 합리화하며 시나리오에 더 깊이 빠져든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피해자가 완전한 심리적 지배를 당했다고 판단하기 전까지는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최근 범죄 기사와 영화 등을 보게 한 뒤 ‘본인으로 인해 발생한 범죄에 대해 피해자에게 미안한 마음’, ‘본인이 처벌된다면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 등에 관한 내용의 ‘반성문’을 작성하게 하고, 주기적인 ‘정시보고’를 강요하며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고, 이를 통해 심리적 지배를 더욱 강화해 가는 수법을 쓴다.

이러한 모든 시나리오를 가능하게 하는 범행수단이 바로 ‘악성 앱’이다. 악성 앱은 피해자가 외부와의 연결을 차단당한 채 범죄조직의 지시에만 따르도록 만드는 보이스피싱 시나리오에 ‘핵심 장치’이다. 설치되는 순간 통화 가로채기, 휴대전화 내 정보 탈취, 백신 앱 삭제, 카메라·위치정보·마이크 기능 탈취 등을 통해 피해자의 모든 것을 통제한다.

휴대전화 보안기술과 악성 앱 탐지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범죄조직에서 보낸 악성 앱 문자나 지인을 사칭한 메시지를 통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휴대전화에 악성 앱이 설치되어 피해에 노출될 우려가 있고, 보이스피싱은 단순히 검사나 금융감독원, 경찰 등을 사칭하여 돈을 요구하던 과거와 달리 매우 치밀하게 짜여진 각본과 악성 앱 등 첨단기술이 결합한 범죄로 진화하고 있다.

여전히 과거의 단순한 수법에 머무르는 피해자의 인식을 교묘히 파고들어 집중적으로 공략하기 때문에 변화하는 수법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피해예방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보이스피싱은 원격제어·악성 앱 등으로 인해 ‘심리적 조작’을 당한 피해자가 자신의 의지로 직접 금융거래를 수행하기 때문에, 제도적·기술적 대응만으로는 완벽한 차단이 어렵다. 이에, 경찰청은 국민 스스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홍보 종합대책을 수립, 적극적인 보이스피싱 수법홍보를 병행해왔고, 이에 대한 실제 효과도 확인되고 있다.

특히 숙박업소에 홀로 고립시키는 이른바 ‘셀프감금’ 기관사칭형 보이스피싱이 빈번하게 발생함에 따라, 이를 예방하기 위해 홍보 포스터 5만 부를 제작하여 전국 경찰관서에서 숙박업소를 직접 방문, 수법 안내와 포스터 배포 등의 홍보 활동을 집중적으로 전개한 결과 실제로 숙박업소 직원이 포스터 내용을 보고 수상한 정황을 인지하거나 피해자 스스로 본인의 사례라고 확인하고 112신고하여 예방한 사례 등이 지속해서 확인되고 있다.

이런 예방 사례에서 보듯이 적극적인 홍보 활동으로 일정한 효과가 확인되고 있으나, 급증하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경찰은 ‘통합대응단’을 설치하여 24시간 운영전담 조직을 가동할 예정이만, 다양한 주체가 함께 협력하고 나아가 국민 스스로도 경각심을 가질 때 비로소 예방효과를 거둘 수 있다.

보이스피싱, ‘속지 않은 게 아니라 다만 차례가 오지 않은 것 뿐입니다’. 이제 그만 ‘짜여진 각본의 주인공이 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