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에서 꽃피는 K-정원, 세계 문화유산으로의 도약
7.정원이 지역을 살리는 힘, 우지와 교토에서 찾은 K-정원의 길
■ 우지
일본 남쪽 우지는 단순히 맛차 거리로만 설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곳은 수백년 동안 일본 차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아온 장소이자 오늘날 세계적인 맛차 붐을 일으킨 발원지다.
가마쿠라 시대에 중국에서 차씨앗이 전래된 이후 선승들이 이 지역에 차를 심었고 습윤한 기후와 안개가 자주 끼는 강가의 토양은 차 재배에 최적이었다.
무로마치시대에는 뵤도인 같은 사찰과 결합하며 종교적·문화적 상징성을 얻었고 에도시대에 이르러 ‘우지차’는 고급 브랜드로 전국에 퍼졌다.
막부와 귀족사회가 애용하면서 ‘우지’라는 지명은 고품질 차의 대명사가 되었고 근대 이후 관광과 결합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우지의 풍경을 만들었다.
역사적 맥락 위에서 뵤도인 앞 거리는 관광객으로 붐비는 ‘맛차거리’로 이어진다.
이곳에는 수십 개의 찻집과 상점, 카페들이 즐비하다. 녹차아이스크림, 맛차라떼와 디저트, 파운드케이크와 빙수, 녹차 소금 등 녹차를 활용한 상품들로 가득하다. 더욱 특이한 것은 차를 활용한 요리들이다.
녹차우동, 녹차카레, 녹차소바처럼 일상 식사 속에서도 차를 즐길 수 있도록 개발된 음식들이 관광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작은 시골마을 곳곳에 자리한 카페들은 저마다 특색있는 차 메뉴와 디저트를 내세우며 경쟁하고 방문객들은 ‘우지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는 희소성에 지갑을 연다.
정원에서 비롯된 문화가 상품으로 구체화되고 상품은 다시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선순환이 만들어진 것이다.
우지에서는 차를 단순히 소비재가 아니라 문화적 자산으로 기념하기 위해 매년 우지 녹차축제도 열린다. 매년 10월 첫째 일요일, 우지 다리와 고쇼지 사원 주변에서 열리는 축제는 성수뜨기의식으로 시작된다.
우지강에서 길어 올린 맑은 물은 대나무관을 통해 제단까지 운반되고 이 물로 새 차를 끓이는 상징적 의식이 진행된다. 축제장 곳곳에는 다도구 전시가 마련되고 방문객들은 돌 절구를 사용해 말차 원료인 텐차를 직접 빻아보며 차의 탄생을 체험한다.
현지 찻집과 농가가 마련한 시음·판매 부스에서는 다양한 신차와 디저트를 맛볼 수 있고 전통예법 시연과 공연이 더해지며 축제의 흥을 돋운다. 우지 녹차축제는 소비의 장이 아니라 차문화의 역사와 정통성을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배우고 경험하는 공간이다.
담양의 대나무축제가 대나무 산업과 지역문화를 아우르는 무대로 기능하듯 우지의 정원과 차축제 역시 지역을 살아숨쉬게 하는 원천이 된다.
■ 교토
교토 북쪽의 교토부립식물원은 또 다른 방식으로 정원의 힘을 보여준다.
1924년 개원한 일본 최초의 공립식물원은 ‘식물자원의 수집·보존’과 ‘시민의 식물학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현재 1만 2000종이 넘는 식물이 모여 있으며 학술 연구기관으로서 역할은 물론 시민들의 일상 속 녹지이자 생활 정원으로 기능한다.
봄에는 벚꽃길과 장미원이 여름에는 수련과 초화원이 가을에는 단풍나무, 겨울에는 난대식물이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아이들은 현장학습을 하고 어르신들은 산책과 교류를 즐기며 가족들은 도시 한복판에서 피크닉을 한다.
교토시민들에게 이곳은 단순한 녹지가 아니라 세대를 잇는 생활 속 정원학교인 셈이다.
식물원의 문화적 무게감을 더해준 것은 바로 옆에 들어선 안도타다오의 ‘명화의 정원’이다.
세계 최초의 야외명화정원으로 개원 당시 큰 화제를 모은 공간은 거대한 세라믹 패널에 세계명화를 담아 노출 콘크리트 건축 속에 전시한다.
총 8점의 작품 중 절반은 1990년 국제 꽃과 녹색 박람회 출품작, 나머지는 새로 제작된 것이다.
정원에서는 작품을 인공조명이 아닌 자연광 속에서 감상한다. 시간과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자의 길이, 벽과 슬릿(틈새)이 만들어내는 명암의 대비는 또 하나의 작품이 된다.
방문객들은 실내 미술관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각이라며 감탄하고 SNS에서는 사진 명소로 회자된다. 어느 구도로 찍어도 작품이 되는 건축과 정원의 만남으로 만들어내는 시너지다.
명화의 정원은 건축가의 명성, 전시의 독창성, 사진 문화와 어우러져 교토부립식물원의 체류시간을 늘렸고 단순한 식물 관람 공간을 문화·관광 거점으로 확장시켰다.
교토부립식물원은 본래의 연구·교육·휴식 기능에 더해 건축과 예술을 품은 복합정원공간으로 진화한 것이다.
그러나 죽녹원에 자리한 ‘이이남 미디어아트전시관’은 이와 대조적인 현실을 보여준다. 세계적 미디어아티스트의 이름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시프로그램 갱신이 거의 없고 사실상 방치된 채 활용도가 낮다.
정원 속 건축 공간이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방문객의 체류 시간을 늘리기보다는 오히려 닫힌 공간으로 남아있다는 지적이 많다.
건축과 정원의 결합이 지역을 살리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교토의 사례는 담양이 아직 풀지못한 과제를 그대로 드러낸다.
건축을 단순한 건물로 두지 않고 정원의 체험을 풍성하게 하는 콘텐츠로 키워낼 때 죽녹원도 새로운 문화적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우지와 교토의 사례는 세가지 메시지를 준다.
첫째, 정원은 상품을 낳는다. 뵤도인에서 비롯된 맛차의 상품화처럼 정원은 지역 이미지를 경제적 가치로 전환하는 출발점이 된다.
둘째, 정원은 건축과 만나야 한다. 명화의 정원이 식물원을 빛나게 했듯 건축은 정원의 체류 시간을 늘리고 경험을 풍성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녹원 내 이이남 전시관처럼 잠재력이 발휘되지 못한 공간은 오히려 교훈이 된다.
셋째, 정원은 문화와 결합할 때 살아난다. 순천만 국가정원과 거창 창포원이 지역 예술과 교육을 품었듯 정원은 단순한 경관 감상을 넘어 생활 속 무대가 될 때 비로소 지역의 자산으로 뿌리내린다.
정원은 더 이상 눈으로만 보는 조경이 아니다. 상품과 건축, 문화와의 융합을 통해 지역을 살리는 플랫폼이 된다.
담양 죽녹원, 거창 창포원, 순천만 국가정원에서 보았던 가능성은 이제 더 큰 그림으로 확장될 수 있다.
한국적 정원이 가진 자연 친화적이고 사유적인 공간성을 토대로 우지가 보여준 상품화 전략, 교토가 보여준 건축과의 융합을 더한다면 담양의 K-정원은 지역을 살리고 세계와 만나는 힘을 지닐 것이다.
정원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을 키우고 상품을 낳으며 문화를 담아내는 살아있는 자원이다. 담양이 국가정원 승격을 추진 해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역의 역사와 자연을 바탕으로 상품·건축·문화가 결합한 정원을 만들어낼 때 담양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한국정원의 도시’ 거듭날 수 있다.(끝)
/김고은·김지헌 記者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