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제 심층보도/지역축제 포화시대, 지역성을 담은 축제로 변해야 한다
6. 남해 독일마을 맥주 축제, 축제 방향성 제시
지역축제는 날씨에 크게 좌우되지만 이야기와 매력이 있다면 비는 장애가 되지 않는다.
남해 독일마을 맥주축제는 그 사실을 증명했다. 제13회 독일마을 맥주축제 기간 동안 폭우가 내렸지만 독일 맥주와 소시지, 음악을 중심으로 파독 역사와 남해의 정서가 녹아들었고 세대와 국적을 초월했다.
그 결과 남해는 날씨를 넘어선 ‘진심의 축제’를 만들어냈다.
지난 10월 2일부터 4일까지 사흘간 경남 남해군 독일마을에서 열린 축제 중 3일에는 독일마을이 위치한 삼동면에 81㎜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축제장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하지만 관람객들은 우산을 들고 빗속에서도 맥주잔을 들었다. 무대 위 공연자들은 악기를 덮지 않았다. 오히려 빗방울을 조명 삼아 퍼포먼스를 이어갔다. LED 전광판에 비친 빗물과 불꽃 퍼포먼스가 맞물리며, 맑은 날보다 더 강렬한 장면이 완성됐다. 마지막 날 비가 그치자 아침부터 독일마을 인근 진입로에는 차량으로 가득했다.
남해군 관광진흥과에 따르면 축제 기간 5만 4838명이 축제장을 방문했고 같은 기간 남해군 총 방문객 11만 8000여 명 중 절반에 가까운 47%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가 내렸음에도 지난 축제들보다 평균적으로 많은 방문객이 찾았다. 이에 ‘날씨가 좋은 날 가는 행사’가 아니라, ‘비가 와도 가는 축제’로 진화했다는 점에서 남해는 한 단계 성숙한 지역 축제의 모델을 만들어냈다.
제13회 남해 독일마을 맥주축제는 남해군이 주최하고, 남해군관광문화재단·독일마을맥주축제기획단·독일마을운영회가 공동 주관한 가운데 총예산 7억원이 투입됐다.
■ BEER-LOG, BEER-BOMB in 남해
올해 슬로건은 단순한 홍보 문구가 아니었다. ‘맥주에 담긴 나의 이야기’라는 주제는 축제 전반을 관통했다. 관객은 소비자가 아니라 참여자였고 군민은 운영자가 아닌 창작자로 변했다.
특히 제1회 홈브루잉 콘테스트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남해군관광문화재단과 남해대학 호텔조리제빵과가 협업해 전국 수제 맥주 경연대회가 열린 것.
이는 단순 소비형 축제에서 ‘로컬 창의 산업형 축제’로의 도약을 보여줬다. 관람객들은 시음과 투표를 통해 참가자와 소통했고 현장은 즉흥적이면서도 따뜻한 경쟁의 장으로 바뀌었다.
또 하나의 새로운 시도는 비어스타(BEER STAR) 경연대회였다. 올해 처음 열린 이 프로그램은 누구나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오픈형 참여 경연으로 관객이 심사위원이 되고 참가자가 공연자가 되는 진정한 참여의 축제였다. ‘비어오픈마이크 · 랜덤플레이댄스 ·비어스타 경연대회’로 이어지는 연속형 참여 프로그램의 핵심으로 남해 축제가 ‘보는 축제’에서 ‘함께 만드는 축제’로 전환했음을 상징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남해는 지역의 산업·교육·문화가 결합된 축제의 새 모델을 만들어냈다.
■ 남해의 에너지를 상징하는 판타지 카니발 퍼레이드
매일 오후 1시와 5시에 열린 판타지 카니발 퍼레이드는 이번 축제의 핵심 프로그램. 독일마을 거리 전체가 화려한 무대로 변했고 남녀노소 남해군민, 외국인 참가자 등 220명이 함께 행진했다. 뮌헨 옥토버페스트의 마차 대신 트랙터가 선두에 서고 대형 인형, 브라스밴드, 화려한 불쇼와 브레이크 댄스 등 퍼포먼스가 이어지는 동안 관람객들은 자연스럽게 도로로 나와 리듬에 몸을 맡겼다.
퍼레이드는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라 남해 축제가 지향하는 ‘참여형 문화’의 상징이었다. 독일형식을 차용하면서도 그 안을 채운 것은 남해사람들의 정서와 에너지였다.
물론 보완할 부분도 있다. 행렬 속도의 조절과 동선의 효율화, 세밀한 조명 연출이 더해진다면 세계적 수준의 퍼레이드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러나 판타지 카니발 퍼레이드는 ‘남해의 축제는 주민이 만든다’는 메시지를 가장 생생하게 전한 무대였다.
■ 독일 전통이 살아 숨쉬는 무대
독일 전통춤 ‘탄츠(Tanz)’ 클래스가 처음으로 도입돼 큰 호응을 얻었다. 독일 복장을 입은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밴드 ‘엔텐바흐’와 현지 퍼포머들이 무대에 올라 요들송과 함께 전통춤을 선보였고 관람객들도 무대 앞으로 나와 함께 스텝을 맞췄다. 단순한 공연이 아닌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는 전통문화 체험이었다.
■ 독일마을 주민이 빚은 축제의 뿌리
이번 축제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독일마을 합창단의 무대였다. 개막식에서 주민 합창단이 부른 <환영의 노래>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도 관객의 큰 박수를 받았다. 장충남 군수의 건배 제의와 함께 이어진 오크통 개봉 퍼포먼스는 남해와 독일 옥토버페스트와 정서를 잇는 장면이었다.
또한 독일마을운영회와 주민들이 직접 운영한 먹거리 부스, 특산물 판매 코너 등은 이 축제는 남해가 만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파독 1세대의 기억이 깃든 도이처 임비스와 벤츠 전시관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외국인 관광객들로부터 “남해에서 진짜 독일을 느꼈다”는 호평을 받았다.
■ 세계가 함께한 남해의 축제
올해 남해 독일마을 맥주축제도 유럽·남미·아시아 등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자발적으로 축제장을 방문했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체코, 캐나다, 멕시코, 베트남 등 세계 각국의 관광객을 비롯해 해외 참가자 다수는 사전 공모를 통해 ‘글로컬 퍼레이드팀’에 지원해 자신들의 전통 의상과 국기를 들고 남해 주민들과 함께 행진했고 옥토버챌린지에 참가해 맥주잔 많이 들기와 맥주 빨리 마시기, 옥토버나이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 남해식 옥토버페스트
밤이 되자 남해 독일마을은 독일 뮌헨의 옥토버페스트를 떠올리게 했다. 매일 밤 8시부터 9시 30분까지 이어진 옥토버나이트는 축제의 리듬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수천 명이 동시에 “Prost!”(건배)를 외치며 잔을 부딪히는 장면은 남해가 ‘로컬 버전의 옥토버페스트’를 자신만의 색으로 풀어낸 결정적 순간이었다.
독일 옥토버페스트가 대규모 맥주 텐트와 전통 의상으로 대중문화를 이끄는 축제라면 남해의 옥토버나이트는 공동체의 온기로 자리를 채웠다. 화려한 조명과 DJ, 라이브 밴드가 어우러진 무대는 유럽식 축제의 흥겨움을 유지하면서도 관객이 주인공이 되는 한국형 페스티벌로 재해석됐다. 빗속에서도 사람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음악과 웃음이 한데 섞인 독일마을 광장은 축제의 에너지를 증명했다.
■ 빅텐트 첫 시도 원형무대
올해 처음 도입된 360도 원형무대 시스템은 기존 빅텐트 구조 안에 접목되어 새로운 공연 문화를 만들었다. 빅텐트 내부 중심에 설치된 원형무대는 관람객이 어느 방향에서도 공연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무대와 관객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었다. 남해 축제의 상징이었던 빅텐트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참여 광장으로 변신한 셈이다.
비어오픈마이크, 랜덤플레이댄스, 비어스타 경연대회 등 참여형 프로그램은 모두 이 공간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관람객은 객석에 앉은 관찰자가 아니라 언제든 무대 위로 올라설 수 있는 참여자가 됐다.
■ 원예예술촌 개방, 축제장 확장
원예예술촌의 확장 운영은 올해 축제의 가장 큰 변화였다. 지난해 독립된 공간이던 이곳을 메인동선에 연결해 가족 중심의 휴식·체험형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번 축제 기간 원예예술촌에서는 다양한 체험형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한 ‘플라워 가드닝 클래스’, 아이들을 위한 ‘컬러풀 화분 만들기’,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비어 플랜트 테라리움’과 ‘감성 포토존 콘테스트’가 특히 인기를 끌었다. 주말에는 지역 예술가들이 참여한 ‘보태니컬 드로잉 워크숍’과 ‘꽃과 음악이 있는 작은 콘서트’가 열리며 축제의 예술적 분위기를 더했다.
또한 남해관광문화재단은 ‘독일마을 앰배서더 서포터즈’를 운영해 현장에서 실시간 라이브 체험 콘텐츠를 제작하고 뷰티 분야 인플루언서들이 방문객 맞춤형 메이크업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청년 창업자들이 참여한 ‘도르프 청년마켓’ 역시 원예예술촌 인근에서 함께 운영되어 지역 청년 경제와 로컬 브랜드 홍보의 장이 됐다.
그러나 현장에서 보면 원예예술촌은 여전히 축제장과 별개로 느껴지는 부분도 존재했다. 공간적으로는 주요 동선과 연결돼 있지만 버스 승하차장과 주차장이 가운데 있고, 분위기와 사운드, 조도의 전환이 급격해 관람객이 ‘축제의 흐름’을 잠시 잃는 구간이 발생했다.
또 공연장의 역동적 리듬과 화려한 조명과 연출이 정적인 예술 정원으로 바뀌는 구간에서 자연스러운 연결이 부족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일부 방문객은 원예예술촌을 축제의 일부가 아닌 별도의 전시 구역으로 인식해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탓에 축제장 주요 동선에 명확한 안내판과 포토존 홍보를 강화하면 체류형 관광의 완성도가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파독전시관 리모델링도 주목받았다. 독일 이주 노동 역사를 기념하는 전시관은 조명과 전시 동선을 새롭게 정비해 관람객의 체험 몰입도를 높였다. 젊은 세대와 외국인 방문객들이 ‘남해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상징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또한 독일마을 전망대는 인기 포토존으로 떠올랐다. 빗속에서도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 관람객이 이어졌고 SNS에 공유된 수천 장의 사진이 남해의 풍경을 전 세계로 확산시켰다.
■ 추석 연휴에도 이어지는 축제 열기
축제 일정이 끝난 후에도 축제 연기는 계속됐다. 추석 연휴에 해당하는 지난 10월 7일부터 9일까지 독일마을 광장에서 열린 ‘고향에서 맥주 한 잔’ 행사는 고향을 방문한 향우들과 긴 연휴 남해로 여행을 온 관광객들로 넘쳐나 독일마을 일대는 계속해서 축제장처럼 인파가 몰렸다. 특히 파독전시관은 개관 이래로 길게 줄이 늘어선 장면까지 연출됐다.
이연주 남해군 관광진흥과 과장은 “2025년 남해군은 고향사랑 방문의 해이고 독일마을 맥주축제의 여운을 이어가고자 했다”며 “추석 연휴 동안 많은 군민과 향우, 외지인이 독일마을을 방문할 것으로 예측했기에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를 제공하고자 마련했다”고 밝혔다.
■ 지역축제 방향성 제시
제13회 독일마을 맥주축제는 폭우 속에서도 운영 안정성과 콘텐츠의 품격을 모두 증명했다. 갑작스러운 폭우는 방문객을 흩어놓지 않았고 오히려 사람들을 더 단단히 엮었다. 이번 축제는 지역이 문화를 생산하고 경제를 순환시키는 자생형 모델로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남해 독일마을 맥주축제의 강점은 단순한 방문객 수나 매출을 넘어 축제의 뿌리가 20년이 넘은 독일마을과 옥토버페스트라는 정체성에 닿아 있다. 독일마을 역사와 정서를 남해군에 입히고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기억과 청년 세대의 창의성을 하나로 엮은 남해만의 서사가 형성됐다. 이로써 축제는 단순한 소비형 행사가 아니라 세대와 지역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문화적 장으로 자리 잡았다.
비는 내렸지만 맥주와 음악은 멈추지 않았다.
밤이 깊어질수록 옥토버나이트의 무대는 뜨거워졌고 사람들은 독일 소시지를 손에 들고 함께 노래하고 춤췄다. 맥주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세대와 국적을 초월한 음악, 방문객들이 만든 건배의 파도는 남해의 밤을 하나로 묶었다.제13회 남해 독일마을 맥주축제는 세대와 언어를 넘어 음악과 사람으로 이어진 지역축제의 완성에 가까워졌다.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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