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뉘른베르크 구시가지 축제’
시민 자발성으로 시작된 ‘도시를 위한 축제’ 구도심 무대 삼아 음악·맥주·전통의 향연
독일 바이에른 주 뉘른베르크에서 지난 9월 19일부터 10월 5일까지 열린 제53회 구시가지 축제(Altstadtfest Nurnberg)는 도시 중심을 활기로 가득 채웠다.
약 3주간 진행된 축제는 음악, 전통 음식, 맥주, 문화 공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주민과 관광객 모두를 환영했다.
뉘른베르크 구시가지 축제는 1971년 시작됐다. 당시 시의원이었던 호르스트 폴크는 도심에 뚜렷한 시민 중심의 축제가 없다는 점에 주목해 전통 어부 대회인 ‘피셔슈테헨(Fischerstechen)’을 중심으로 행사를 구상했다. 그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며 축제의 틀을 마련했다.
축제 첫 회는 쉬트 섬(Schutt Island)과 중앙 광장에서 열렸으며 ‘페그니츠 강 불꽃쇼’와 같은 대담한 기획도 포함됐다. 이후 1973년 ‘뉘른베르크 구시가지 축제 협회(Forderverein Nurnberger Altstadtfest e.V.)’가 설립되며 체계적인 운영이 시작됐다. 축제는 점차 규모를 키워가며 독일 내 대표적인 시민 주도형 문화행사로 성장했다.
뉘른베르크 구시가지 축제는 프래켄 지방 전통을 기리는 연례 문화 행사로 도시의 역사적 복원력과 문화적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축제가 열리는 장소는 중세 도시 중심부 내에서 진행된다. 고즈넉한 구시가지 풍경을 배경으로 방문객들이 역사적인 명소들을 산책하며 축제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환영의 시장’ 지역 양조장 맥주와 교류의 장
수도원, 지역 문화예술을 위한 무대로 활용
구시가지 축제의 매력은 뉘른베르크 구시가지 내의 핵심 역사적 장소들에 분산돼 있다는 점이다. 곳곳의 장소에서 음악 공연, 지역 특산품, 전통 행사, 공동체 활동으로 가득 찬다.
올해는 총 3주간의 일정으로 예년보다 길어진 기간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졌다. 개막은 지난 9월 19일 뉘른베르크 시장의 전통적인 ‘맥주통 개봉식(O'zapft is)’으로 시작됐다.
특히 지역 양조장이 제공하는 맥주는 특히 인기가 높았다. 1985년부터 시작된 ‘환영의 시장’은 올해도 쉬트 섬과 한스작스 광장을 중심으로 운영됐다. 약 50개의 목조 오두막이 세워졌고 각각 지역 특산요리와 지역 양조장의 맥주, 국제 요리 등을 맛볼 수 있다. 합리적인 가격에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부담 없이 향토 맥주의 깊은 풍미를 즐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축제의 성공 요인은 지역의 역사적 전통 요소들을 과감히 되살려낸 것이다. 대표적인 전통 행사는 피셔슈테헨(Fischerstechen) 대회다. 중세시대부터 내려온 뉘른베르크 전통 경기는 페그니츠강 위에서 열린다.
두 명의 참가자가 좁은 보트 위에서 긴 창을 들고 균형을 유지한 채 상대를 물에 빠뜨리는 경기다. 이 대회는 뉘른베르크 어부 길드의 전통에서 유래했으며 축제의 핵심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가족을 위한 공간도 마련됐다. 한스작스 광장에서는 소규모 놀이기구와 음식 부스가 운영, 9월 21일, 28일, 10월 5일에는 어린이를 위한 ‘페이스 페인팅’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문화 프로그램 또한 다양했다. 성 캐서린 수도원(Katharinenruine)에서는 지역 록밴드, 포크 뮤지션, 클래식 연주자 등이 참여해 무대를 채웠다. 축제 기간 동안 개방된 수도원은 지역 문화예술 단체들에 공연 공간을 무료로 제공했다.
수도원 측 관계자는 “도시 전체가 함께 만드는 축제인 만큼 우리가 가진 공간도 지역사회와 공유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축제는 사명감으로 만들어집니다”
시민들 스스로 기획·운영하는 축제
뉘른베르크 구시가지 축제 운영은 오직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이뤄진다. 협회에는 약 40여 명의 활동회원이 있으며 이들은 본업 외 시간과 휴가를 활용해 축제를 기획·운영한다.
연간 약 100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뉘른베르크 구시가지 축제가 상업적 업체가 아닌 지역 공동체의 힘으로 유지된다는 점은 놀라운 사실이다.
자금은 부스 임대료와 크리스마스 마켓 수익(멀드 와인 판매대 운영 등)을 통해 충당된다. 문화 공연은 무료로 제공되며 이를 위한 무대 설치와 음향 장비 비용도 모두 자체 예산으로 충당된다.
이런 구조는 뉘른베르크 구시가지 축제가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축제’라는 모토를 지켜올 수 있었던 비결이다.
뉘른베르크 구시가지 축제는 도시가 전통을 어떻게 계승하고 시민들이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또 다른 즐길거리 ‘가을마켓’
전통과 감성 공존하는 장터
뉘른베르크 구시가지 축제가 펼쳐지는 동안 도시의 중심 하우프트마르크트 광장은 ‘뉘른베르크 가을 마켓’으로 펼쳐진다. 이름처럼 가을의 정취를 가득 담은 이 전통 장터는 17세기부터 이어져 온 유서 깊은 행사로 구시가지 축제와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올해 가을 마켓은 9월 18일부터 10월 5일까지 매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됐다.
광장을 가득 채운 93개의 가판대에서 실용적인 생활용품과 각종 의류, 핸드메이드 소품, 공예품, 장식용 세라믹, 양초, 가죽 제품 등 실로 다양한 상품이 진열됐다. 이 중 일부는 수십 년간 같은 자리를 지켜온 상인들이고 일부는 올해 처음 참가한 젊은 예술가들이다.
시장 한쪽에는 프랑켄 전통 먹거리를 파는 부스들은 열기를 더했다. 무엇보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계절 별미인 ‘페더바이저(Federweißer)’가 인기다. 이는 포도를 수확한 직후 발효시키기 시작한 알코올 도수가 낮고 청량한 맛이 특징인 신 와인이다. 이 와인과 양파 타르트는 가을 마켓에서 반드시 맛봐야 할 메뉴로 손꼽힌다.
또한 시장에서는 구운 소시지, 생강 쿠키, 사과주스와 펀치 등도 판매되며 뉘른베르크만의 지역 색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지난해부터 마켓에서는 세 곳의 팝업 부스가 열렸다. 이곳은 일정 기간 동안만 자리를 마련해주는 임시 상점으로 창의적인 소규모 창작자들이 직접 만든 제품을 시민들에게 소개한다.
올해는 업사이클링 귀걸이, 종이 공예, 아트 포스터, 캘리그라피 소품, 소형 도자기 등이 선보였다. 대형 마켓에서 접하기 어려운 독창적인 디자인 제품들을 찾는 이들에겐 이곳이 숨은 보물찾기 장소와 같았다.
가을 마켓은 지역 상인, 예술가, 시민, 관광객이 함께 만드는 일상의 축제 공간이다. 지역경제의 기반이 되고 도심의 활기를 불어넣는 중요한 매개체다.
특히 구시가지 축제와 나란히 열린다는 점은 도시에 특별한 시너지를 만든다. 하우프트마르크트 광장의 마켓, 페그니츠 강 위에서 펼쳐지는 피셔슈테헨, 거리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즐기는 맥주는 뉘른베르크 축제기간 만날 수 있는 행운이다.
축제에 대한 공동체 정신, 전통에 대한 애정, 시민의 참여로 만들어진 뉘른베르크만의 문화적 깊이는 도시를 살아 숨 쉬는 역사와 문화의 터전으로 만들고 있다.
공동취재단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뉘른베르크 구시가지 축제 협회 회장 미하엘 하글(Michael Hagl)은 축제 준비 과정을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1978년 처음 어린 어부로 피셔슈테헨에 참여한 이후 15년간 직접 배 위에서 창을 들었고 지금은 회장으로 축제를 총괄하고 있다.
그는 “뉘른베르크 구시가지 축제를 도시 공동체의 기억과 유산을 계승하는 일이다. 모든 운영을 자원봉사로 이끌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구시가지 축제는 시나 주의 재정적 지원 없이 시민들이 스스로 기획·운영하며 지금까지 지속돼 왔다.
미하엘 하글 회장은 “우리 축제는 상업적 성공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도시를 함께 즐기고 지켜내는 시민 정신의 발현이다”고 말했다.
그는 회장직에서 어떠한 보수도 받지 않으며 매년 수개월에 걸쳐 모든 준비를 봉사로 소화한다.
축제는 뉘른베르크와 프랑켄 전역, 뮌헨 등지에서도 관람객을 끌어모은다. 옥토버페스트처럼 거대한 관광 산업은 아니지만, 그 대신 이 축제에는 진정한 지역의 뿌리와 공동체 정신이 담겨 있다.
미하엘 하글 회장은 “축제는 애정을 갖고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곳은 ‘시민이 만든,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축제’다. 그게 바로 우리가 이걸 지켜온 이유다. 아시아에서 온 관광객들도 환영한다. 축제에서 프랑켄 문화와 전통을 느껴봤으면 한다”는 인사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