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 뿌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이어서 감기로 온 열을 다스리는 풍문(風門) 혈과 폐유(肺兪) 혈에 뜸을 떴다.

수태음폐경(手太陰肺經)의 출발점이면서 위(胃)의 중앙인 중완(中脘) 혈에 뜸을 떠 폐를 보(補)하면서 동시에 소화를 돕게 했다. 그리고 팔의 곡지(曲池) 혈과 다리의 삼리(三里) 혈에 뜸을 떠 상반신과 하반신의 균형을 잡아주니 곧 열이 내리기 시작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부인은 “참 신기하다며”며 계속 중얼거렸다.

“이렇게 열이 금방 내리는 것을…. 의사 아들이 다른 병원 의사들을 불러들이면서까지 애를 써도 내리지 않던 열이었는데….”

김 회장이 편안히 잠든 모습을 보고 병실을 나서면서 나는 병실 문 앞까지 따라 나온 부인에게 뜸을 권했다.

“집에서 날마다 쌀알 반만한 크기로 몇 군데 뜸만 뜨면 감기도 잘 안 걸리고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꼭 해보세요.”

며칠 뒤 퇴원한 김 회장은 집으로 나를 불렀다. 집에서 뜸을 계속 해보겠으니 와서 방법을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김 회장에게 뜸자리를 잡아 주었다. 먼저 누구에게나 기본이 되는 보양 뜸으로 무극보양뜸을 권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감기 기운이 느껴지면 몸에서 사기(邪氣)가 드나드는 문(門)인 풍문 혈에 뜸뜨면 된다고 알려 주었다.

“감기가 들면 등이 오싹오싹 하죠? 오싹거리는 그 자리가 풍문 혈이거든요. 매일 뜸을 뜨면 감기에 잘 안 걸리겠지만, 어쩌다 감기에 걸린다 해도 풍문에 뜸을 뜨면 열도 내리고 몸살도 가라앉게 될 겁니다. 뜸 열심히 떠 보세요.”

그 뒤 몇 달이 지나 김 회장은 부인이 열심히 뜸해 주는 덕분으로 감기에도 안 걸리고 잘 지낸다며 나에게 고맙다고 전화를 했다. 나는 내 말을 믿고 따라주어 효과를 보고 있으니 오히려 내가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서 나는 그에게 물어보았다.

“아직도 뜸뜨고 나면 창문 열고 선풍기 트세요?” 김 회장은 자신이 감기를 앓지 않으니까 의사인 아들도 좋은지 별 말이 없어 맘 놓고 뜸뜬다며 크게 웃었다.


병명도 모르고 죽을 뻔한 사연


이런 일도 있었다. 1985년 여름, 서울 동대문. 운동용구 제조업체의 사장인 L씨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침술원 안에 들어섰다. 뼈대는 큰 편이나 살이 없는 그는 육십대 중반인데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함께 온 부인이 부축하여 진료대에 앉히자마자 그는 머리가 아프다며 하소연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이라는 대학병원에 2주일이나 입원해서 진찰을 받았는데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그 좋다는 장비로 머리를 샅샅이 검진했지만 두통을 일으킬만한 원인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제는 진통제를 먹어도 머리 아픈 게 낫지 않습니다.”

나는 씁쓸한 기분으로 그에게 물었다. “그럼, 결국 병원에서 쫓겨나신 거군요?” “그런 셈이지요. 의사들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고개만 갸우뚱거리고,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진통제를 줄뿐이니 병원에 더 있을 이유가 없었지요.” 나는 환자를 진료대에 눕히고 얼굴과 손발을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머리를 아프게 하는 뿌리는 어디일까?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으니 머리 쪽은 아닐 테고…. 어느 장부(臟腑)에서 온 증상일까?’

피부를 살펴보니 마르고 거칠거칠 윤기가 없다. 폐주피모(肺主皮毛)라 하여 피부는 폐가 주관한다 하였으니, 폐에 이상이 있어 살갗이 거칠어진 것은 아닐까? 확인하기 위해 폐가 있는 가슴에 양손을 대어보았다. 양쪽 가슴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한쪽이 푹 꺼진 느낌이 왔다. 확진을 하기 위해 맥을 잡았다. 맥을 잡아보니 맥이 얕고 떴다. 부맥(浮脈)이었다. 오른쪽 손목의 촌에서는 튕겨 나갈 듯한 현맥(弦脈)이 잡혔다. 폐에 이상이 있음이 분명했다.

“폐를 앓은 적이 있으시죠?” 가슴에서 손을 떼며 그에게 물었다. 그는 잠시 눈을 껌벅이더니 아주 오래 전에 일인데 어떻게 그걸 알았느냐며 반문했다. 나는 내게 누구냐, 침구사가 그것도 모르면서 침통을 들고 있겠느냐며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침을 꺼냈다.

우선 몸 전체 기운의 균형을 위해서 양다리의 삼리 혈, 양팔의 곡지 혈, 가슴과 배 사이의 중앙인 중완 혈에 먼저 침을 놓았다. 그리고 폐의 병을 다스리는 혈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폐를 억제하는 심(心)의 기운을 다스리기 위해 가슴의 거궐(巨闕) 혈에 침을 놓았다. 아울러 아랫배의 기해(氣海) 혈과 관원(關元) 혈에 뜸을 떠 원기를 든든히 해 주었다. 잠시 후 침을 뽑고 뒤로 엎드리게 해 폐에 기운을 공급하는 폐유 혈과 신의 기운이 흐르는 신유(腎兪) 혈에 침을 놓고 뜸을 떴다. 신유에 침뜸을 한 것은 폐와 신이 서로 돕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등에 유침을 해 둔 동안 L씨는 엎드려서 잠이 들었다. 침을 빼면서 내가 “아직도 머리가 아픕니까”라고 물으니 그는 그제야 “어, 머리 아픈 게 싹 없어졌네”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 폐에 영향을 주는 혈을 다스려 두통이 사라졌다면 두통을 일으킨 뿌리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폐였다.

“내일이라도 당장 병원에 가서 폐를 진찰 받아 보세요.” 내 말에 그는 병원에 가봐야 그 타령인 것이 뻔하니 싫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병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나는 그를 설득해 일단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도록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도록 그는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리고 또 일주일이 지났건만 무소식이었다. 나는 무소식이 희소식이기를 바랐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 때, L씨의 부인이 혼자 침술원을 찾아 왔다. 나는 좋은 소식이기를 빌면서 부인의 말을 기다렸다. “그 양반 병원에서 폐암인 게 밝혀지고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어요.”

한숨을 크게 내쉰 부인이 말을 이었다. “선생님한테 감사드리려고 왔어요. 하마터면 그 양반, 병명도 모르고 죽을 뻔했는데….”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닦아내던 부인은 병원보다 침술원에서 병을 더 잘 보는 줄 알았으면 진작에 고쳐 죽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면서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김남수(뜸사랑 회장)

저작권자 © 담양곡성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