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원의 행복 곡성경찰서 민원실 옆에는 몇 달 전 경찰서에서 만들어 놓은 조그마한 돌다방이라는 쉼터가 있다.

그곳 한가운데에는 돌탁자가 하나 놓여있고, 북쪽에는 자판기가 한대 설치되어 있는데 커피 한 잔 값은 100원이다.

엊그제 필자가 그곳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70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웬 할머니 한 분이 “아이고 허리야” 하시면서 내 곁에 와서 앉으셨다.

어디 사시느냐고 물었더니 경찰서 뒤에 사신다고 하신다. 난 아무 생각없이 자판기에서 100원짜리 커피를 한 잔 빼서 드렸다. 그 100원짜리 커피가 고마웠던지 할머니는 연이어 고맙다고 하시면서 묻지도 않은 서울에 있는 딸집에 다녀오는 길이라며 자신의 근황과 나아가 집안일까지 늘어 놓는다.

그 100원의 커피 한 잔이 처음 보는 그 할머니와 나의 관계를 일순간에 십년지기 이상의 친밀감을 느끼게 만들어주었다.

잠시동안 활머니와 나는 서로의 고향인 곡성을 소재로 담소를 나누고 헤어졌다. 헤어지는 순간에도 100원짜리 커피의 고마움을 잊지 않으셨는지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잘 마셨다, 고맙다"는 말을 계속 하신다,

나에겐 그야말로 황당한 순간이었다. 사실 100원은 우리 사회에서 이미 화폐로서의 가치를 잃었는지도 모를 만큼 무가치해져 있는데다 사소한 100원짜리 커피 한 잔 대접에 지나치리만큼 감사를 표현하는 그 할머니의 겸손함이 도리어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작은 배려에도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그 할머니의 뒷모습에서 나는 인간적인 존경심과 함께 할머니의 온유한 마음만큼이나 나역시 작은 뿌듯함에 형용하기 어려운 희열의 뭉게구름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솟아오름을 느꼈다.

할머니가 떠난 후 나는 상념에 잠겼다. “아테네인들이여! 음미하는 삶을 살아라”고 했던 소크라테스의 외침은 아마도 작은 것에도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할머니의 마음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잘은 모르지만 우리 삶의 진정한 가치는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처럼 서로 느껴지는 공명 속에서만이 가능한 일이기에 .....

담양과 곡성에 사는 사람들! 이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물질적으로 커다란 풍요를 누리기에는 정치적 환경이나 기업활동 측면에서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는지 모른다.

물론 난 여기서 절망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의 가치는 인정하지만 그러나 우리들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결코 소유에 있지 않고 행복한 삶에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지나친 욕심을 접고 현실에 감사할 줄 아는 그 할머니의 소박함을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니겠느냐는 것을 말하려함이다.

또 몇 일이 흘렀다. 커피를 마시러 자판기에 갔더니 누구의 발상인지 모르겠지만 자판기 옆에다 '100원의 행복'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아크릴 판을 붙여놓았다.

'소유냐 삶이냐'란 책을 저술했던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내가 가진 것과 내가 소비하는 것으로' 우리들은 분명 살아가지만 인간의 진정한 삶의 의미와 행복은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며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상생과 공생의 원리 안에서 '100원의 행복'까지도 함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진가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김신환(곡성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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