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육부는 제약공장

대돈에 침을 놓거나 뜸을 뜨면 일반적인 자궁출혈은 그 자리에서 멈춘다. 그러나 지혈작용을 하는 혈소판에 문제가 있으니 일주일에서 십일 정도는 치료를 해야 출혈이 멈출 터. 그 때까지는 침을 놓은 자리에서 피가 나와도 쉽게 그치지 않는다.

지혈을 하면서 피 만들기도 함께 해야 한다. 몸 속에 있는 오장육부는 생산공장이다. 몸에 필요한 영양분도 만들고 혈액도 만든다. 병을 이길 수 있는 각종 약품을 생산하는 제약공장이다. 그러므로 제약공장인 오장육부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 치료다. 그러나 제아무리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 해도 재료가 없으면 생산 라인을 가동할 수 없다. 제약공장이 돌아가는데 필요한 원료는 바로 음식, 음식을 잘 먹게 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치료다.

우선 혈액을 저장하고 소독하는 장기인 간을 튼튼하게 해야 했다. 그래서 간의 기가 흘러드는 간유(肝兪) 혈에 뜸을 떠 피를 맑게 하고, 발등 발몸뼈 앞쪽에 있으면서 간의 원기가 흐르는 태충(太衝) 혈에 뜸을 떠 간의 혈액 저장 기능을 활발하게 했다.

피 만들기는 비(脾)가 주관하는 바, 비의 기가 흘러드는 비유(脾兪) 혈을 써서 비를 튼튼하게 했다. 생식기에 탈이 나면 폐도 탈이 나기 쉽고 그에 따라 숨이 가빠지는 증상이 나타나므로 폐유(肺兪) 혈로써 폐를 튼튼하게 했다.

혈액이 부족하면 심(心)에 부담이 가고 열이 난다. 그래서 심을 보위하는 심포(心包)의 경락인 수궐음심포경(手厥陰心包經)의 내관(內關) 혈로 심을 돕고 열을 다스렸다. 자궁에 탈이 났으니 간과 비와 신(腎)의 세 경락이 만나는 삼음교(三陰交) 혈을 써 간, 비, 신을 도와 자궁을 치료했다. 또한 배꼽 양옆에 대장의 기가 모이는 자리면서 근처에 있는 생식기에도 도움을 주는 천추(天樞) 혈로 자궁의 기능을 원활하게 했다.

한편 몸 전체의 균형을 이루어야 했다. 소녀는 기는 지나치게 상승되고 혈은 하강된 상태였다. 그래서 양다리의 삼리 혈로 지나치게 상승된 기를 끌어내리고 양팔의 곡지 혈로 혈을 끌어올렸다. 마지막으로 배의 중완 혈에 뜸을 떠 잘 먹게 함으로써 영양을 보충할 수 있게 했다.

할아버지는 뜸 치료를 받고 있는 손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뜸은 결국 몸에 작은 화상을 입히는 것. 화상으로 인한 화상독에 의해서 인체에는 약효가 있는 물질이 만들어지고 흡수된다는 것을 헤아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그 동안 뜸에 대해서 무관심했던 것을 아쉬워했다.

집에서 뜸을 뜨기 시작하고 보름 뒤에, 할아버지는 종합병원에서 손녀의 혈액검사를 하고 나에게 보고를 하듯 들렀다.

“글쎄, 애를 데리고 혈액검사를 하러 병원에 갔더니 의사들이 뜸자리를 발견하곤 펄쩍 뛰지 뭡니까? 피가 나기 시작하면 멈추질 않는 환자에게 어떻게 상처를 낼 수 있느냐면서 막 야단을 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나도 알만큼 아는 의사라고. 그랬더니 그 친구 머쓱해서는 입을 다물더라고요.”

할아버지의 증언은 계속 이어졌다. “또, 혈액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아세요? 의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만 하고 말을 못해요. 그래서 제가 검사 결과를 들여다보았더니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수치가 모두 지난 번 검사 때보다 증가한 겁니다. 아니, 그렇게 기쁜 일이 또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그 의사는 꿀 먹은 벙어리인양 입을 다물고 있더군요. 현대의학에서 재생불량성 빈혈은 난치병으로 취급되고 있으니 할 말이 없었겠지만요.”

할아버지는 이미 뜸을 믿고 있었지만 혈액검사 결과를 보는 순간, 뜸의 위력에 다시 한 번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 뒤로 6개월 만에 할아버지는 뜸으로 손녀를 고쳐냈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수혈해야만 겨우 생명을 유지할 정도로 악화된 손녀를 살려낸 것이다. 혈액검사 결과가 정상인과 다름없이 나온 날, 할아버지는 아들과 며느리, 손녀를 데리고 나에게 인사차 들렀다. 그 손녀의 부모는 기쁘고 고맙다는 인사말 끝에 내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이 애가 커서 시집갈 때 꼭 주례를 서 주세요.” 나는 기쁜 마음에 기꺼이 응낙을 했다.

그러나 그 다음 해에 손녀가 교내 웅변대회에서 1등을 했다고 할아버지가 소식을 전해준 뒤 소식이 끊겼다. 손녀가 커서 시집을 가고도 남았을 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아무 소식이 없다. /김남수(뜸사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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