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중세시대인 고려의 몰락. 그 원인은 복합적이겠으나 가장 근저를 이루고 있는 것은 향촌의 실질적 지배권을 가졌던 향리의 폐악이다. 여기에 농장을 소유하고 장생고 같은 고리대업을 일삼았던 불교의 폐단이 더해져 양민의 민생고는 극에 달했다. 결국 기득권세력이던 정몽주, 이색 등 온건파는 새 시대를 열망하는 정도전이나 권근 같은 혁명파에게 제거당해야만 했다.


근세인 조선시대 몰락원인도 고려와 대동하다. 역시 지방세력의 발호다. 양반관료의 수탈로 양민은 농토를 상실하고 수취구조의 문란으로 조세부담은 가중됐다. 이로 인해 양민은 감소하고 유랑민과 노비는 늘어났다. 정권은 양민의 이탈을 막기 위해 호패법을 실시했으나 홍경래의 난이나 임술민란(진주민란)만 일어났다.

현대-지금-우리는-어떠한가.

IMF 환란이후 가장 추앙받는 직종인 공무원. 그 자리가 ‘하늘의 별’로 표현되고 있는데 지방직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많은 수의 전·현직 군·도의원과 공무원들은 자신의 친인척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특채로 채용시키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오래 돼 담양에서도 벌열가문이 이미 수 개 문파에 이르며 그들은 또다시 결혼 등으로 세를 규합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4촌, 6촌, 8촌 할 것 없이 서로 끌어주고 당겨줘 어떻게든 ‘철밥통’에 무임승차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이들에게 양심적 복무만이라도 당부한다.

지난 주 개인적 업무로 들른 군청에서 목도한 장면은 한 국가의 멸망과 쇠퇴를 가져다준 지방호족의 문제점을 또다시 떠오르게 했다. 유력인사의 자녀인 그는 자신의 소속 사무실도 아닌 곳에서 물건에 들떠 사무실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희희낙락거리며 업무 분위기를 깨고 있었다. 목불인견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자숙시키지 않았다. 유력인사의 자녀라 그러한가. 공무원 집단 내 그에 대한 평가는 이러했다. 능력에 비해 승진이 빠르고 항상 청에서 근무하며 퇴근하기 편한 유한직으로만 인사가 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자신에 대한 이러한 곱지 않은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방자함이 도를 넘고 있다는 평이다.

적어도 담양군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방호족의 발호는 그 특색이 점점 확고해 지고 있다.

‘하늘의 별 따기’인 공무원자리를 놓고 경제적으로 유력한 자의 자녀, 전직 공무원의 자녀, 고위 선출직의 자녀 등 ‘힘 좀 쓰는 자’들의 친인척들은 특채로 임용된 경우가 많다.

이렇게 특채된 자들은 기간제근로자 등 이른바 비정규직으로 채용되더라도 비교적 단기간 내에 정직으로 전환돼 그렇지 못 한 자들과 형평성 문제를 야기하고 있으며, 공채 임용자보다도 승진이 빠른 경우가 있고 배치된 근무부서도 ‘입맛에 맞는 곳’만 찾아다닌다.

특채 문제를 비롯해 현시대의 호족 발호 문제는 공직임용의 불평등 문제일 뿐만 아니라 부의 편중과 사회적 기회균등의 박탈을 야기하고 있다. 이는 조선시대 몰락원인과 같다. 특히 기회균등과 형평성의 몰락은 심화되고 있다.

공직에 30년 40년씩 근무하고도 또다시 선출직에 나와 그 위세를 이어나가려는 자들이 도처에 넘쳐나고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자식들에게까지 철밥통을 넘겨준다.

정녕 세탁소 김씨, 택시기사 박씨가 의회에 진출하는 ‘진정한 풀뿌리민주주의’는 책 속에 있는 이야기일 뿐이란 말인가.

지방호족의 발호는 가장 경계해야 할 우리시대의 과제이다. 현대판 귀족들이 그들의 의무를 다 할 때 지방과 국가는 굳건할 것이나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일삼고 편법을 저지르며 자기 배만 불린다면 분명 후세 국사교과서에 대한민국 쇠망 원인으로 ‘지방호족의 발호’는 또다시 기록될 것이다./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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