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름대로 수많은 가치를 접하게 된다.

그 가치의 탄생은 대부분 어떤 일에 열중하거나 아쉬움이 있을 때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나의 삶 중에서도 얻은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지속의 힘’이었다.

이 지속의 가치는 비단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 중의 하나겠지만 이 가치 중에서도 의미를 되새겨 볼만한 특별한 가치가 있다.

자치통감을 쓴 사마광에게 어느 날 그의 제자 유안세가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한문 수만 자 중에서 제일 중요한 글자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일생동안 살아가면서 생활의 좌우명으로 삼을 만한 글자를 하나만 골라 주십시오."

그 때 사마광은 "그것은 성(誠)이라는 글자다"고 말했다. 그러자 제자가 "선생님, 성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사마광은 간결 명쾌하게 "불망어(不忘語)"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불망어! 여기에서 망(忘)은 허망함을 말함이니 성실이란 허망한 말과 허망한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필자가 주제로 한 지속력과 성실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

한자는 글자 하나하나가 뜻을 지닌 뜻글자다. 성(誠)자를 직역하면 자기가 한 말을 이룬다는 말이니 결국 이는 자기가 한 말에 대한 책임을 말하는 것인데,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성실이란 그 기저에 변함이 없고 끊임이 없어야 함을 내포하고 있다 할 것이다. 아울러 무슨 일이든 끊임없이 계속해야 바라는 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
3 그럼 여기에 더하여 몇 가지 예를 더 살펴보자.

우선 시선(詩仙)으로 불리는 당나라의 이백이 훌륭한 스승을 찾아 상의산에 들어가 수학(修學)했는데 어느 날 공부에 싫증이 나자 그는 스승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산을 내려오고 말았다.

집을 항해 걷고 있던 이백이 계곡을 흐르는 냇가에 이르자, 한 노파가 바위에 열심히 도끼를 갈고 있었다.

"할머니, 지금 뭘 하고 계세요?" "바늘을 만들려고 도끼를 갈고 있다[磨斧作針]."

"그렇게 큰 도끼가 간다고 바늘이 될까요?" "그럼 되고 말고.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이뿐인가! 내가 좋아하는 ‘우공이산’이란 사자성어나 ‘맹모삼천과 맹모단기’도 결국은 중단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지속의 가치를 말함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아웃라이어(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무슨 일이든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하여 전력투구 하였으며 결코 중간에 포기하거나 중단하는 일이 없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더불어 무슨 일이든지 10,000시간을 투입하는 것이 마스터가 될 최소의 조건이라는 1만 시간의 법칙을 보자.

음악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이 4,000시간을 공부하면 음악교사가 될 수 있고 8,000시간을 공부하면 훌륭한 연주가가, 그리고 10,000시간을 공부하면 세계 최고수준의 음악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1만 시간의 법칙이다.

1만 시간이란 하루에 3-4시간씩 매일 연습을 한다고 쳤을 때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걸리는 시간이다. 음악신동 모차르트조차도 ‘일만 시간의 법칙’을 채우고 나서부터 걸작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고 하니 천부적 재능까지도 지속하는 힘이 없다면 의미가 없을 법하다.

이처럼 세상만사는 지극정성 없이는 결코 크게 이룰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법칙까지도 무조건적이며 절대적이 아니고 상대적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또 중국의 에로스 문화에 강한 남자로 오랠 구(久) 자가 들어있다. 남자는 밤일을 할 때도 오래가야 명품이라는 것이다.

세상은 아무리 변해도 그리고 그 변화의 속도가 갈수록 빨라진다 해도 끝내 변할 수 없는 진리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무슨 일이든지 지속력이 없는 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김신환(본지 편집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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