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의 화두는 단연 지방선거입니다. 오는 6월 2일 실시될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재까지 담양에서는 7명, 곡성에서는 5명의 입지자들이 군수 선거에 출마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선거까지는 앞으로 5개월이라는 기간이 남아있고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이렇다 할 과열조짐은 감지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투표일이 가까워질수록 후보들 간 득표전이 치열해질 것이고 자칫 과열이라도 될라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선거판 단골메뉴가 있습니다. 바로 실체도 없는 유언비어와 상대후보를 흠집 내기 위한 마타도어입니다.

이런 상황으로 접어들면 후보들 간 감정대결이 격화되면서 기대했던 정책선거는 실종되고 선거판은 진흙탕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이같은 상황은 대개가 후보들보다는 운동원들 사이에 빚어진 사소한 감정대결이 비화해 후보 간 감정대결로 이어지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시쳇말로 아이들 싸움이 어른들 싸움으로 번지는 격이지요.

선거 때만 되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선조 극심한 당쟁을 주도했던 송시열과 허목에 관한 이야기로 오늘날까지 훈훈한 감동이 이어져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조선 중기에 정승을 지낸 송시열과 허목은 당쟁이 심했던 당시에 권력투쟁을 벌인 西人과 南人의 우두머리였습니다. 한번은 송시열이 병에 걸렸는데 百藥이 무효할 정도로 병세가 몹시 위중해졌습니다. 허목은 의술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송시열은 “내 병을 허목은 고칠 수 있는데...” 하며 아들에게 “허목에게 가서 약방문을 얻어오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허 대감이 아버지를 살릴 약방문을 써주겠느냐?”며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송시열은 “그가 나와 대립하는 사이이기는 하나 병든 사람을 몰라라 할 만큼 속 좁은 사람은 아니니 어서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송시열의 아들이 허목의 집에 도착하여 약방문을 구하자 허목은 송시열의 병 증세를 자세히 물은 후 약방문을 써주었습니다. 송시열의 아들이 약방문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읽어 보니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비상, 반하, 부자 등 독약이거나 독약에 가까운 약재들만 적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허목이 우리 아버지를 죽이려고 작정을 했구나!”라며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집에 도착해 분에 찬 모습으로 그 약방문을 아버지에게 건넸습니다. 송시열은 약방문을 훑어본 후 아들에게 “가서 이 약방문대로 약을 지어오라”고 지시했습니다. 송시열의 아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독약을 먹겠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아버님, 이 약들은?”

“나도 안다. 그러나 걱정 말고 어서 가서 지어 오너라!”

아버지의 뜻이 너무 확고해서 아들은 하는 수 없이 그대로 약을 지어 왔습니다. 그리고 송시열은 그 독약들을 달여 오게 한 뒤 아무 의심 없이 먹었습니다. 그는 약기운에 취해 정신을 잃었다가 며칠 후 깨끗이 낳아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독한 약재도 섞이면 서로 독기를 없애서 좋은 약이 되기도 하기에 위중한 병을 고칠 때에는 독약을 쓰기도 합니다. 송시열의 병은 보통 약으로는 고칠 수 없는 중병이어서 허목은 독약을 쓰게 했던 것이지요.

송시열과 허목이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는 대립하는 사이였으나 허목은 송시열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약방문을 써주었고 송시열은 허목을 믿고 약방문에 처방된 대로 독약을 먹은 큰 인물들이었습니다.

믿음이란 어떤 것을 따져보고 계산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데에는 믿음이 필요치 않습니다. 믿음은 상대방을 신뢰함으로 그가 무엇이라고 하든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송시열의 아들은 허목을 믿지 못했고, 송시열은 믿었습니다. 그것은 곧 송시열의 아들은 허목을 알지 못했고 송시열은 알았다는 것과 같습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지역의 대표자는 국민과 주민을 대신해 국가와 지역사회에 봉사할 의무를 갖기에 누구보다도 깨끗한 몸과 마음을 지녀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주민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지도자의 길을 가고자 하는 입지자들 역시 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또한 운동원들도 상대후보를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와 마찬가지로 지역의 지도자로 존중하고 예의를 갖춤으로써 스스로를 높이고 품격 높은 선거풍토 조성에 일조해야 합니다.

선거의 궁극적인 목표가 당선이긴 하지만 과정이 온당치 못한 채 당선만 염두에 둔다면 스스로 지도자의 길을 포기한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무릇 큰 인물은 송시열이나 허목처럼 상대를 인정하고 신뢰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상대를 비하하고 불신하는 아이들과는 사뭇 차원이 다른 것이지요. 설사 아이들이 어떠한 감정적인 행동을 보이더라도 어른이 나서서 만류하고 꾸짖으면서 어른싸움으로 번지는 일은 막아야 합니다.

지도자는 어른입니다.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마음씨도 행동도 단연 어른스러워야 합니다. 선거는 누가 더 못나고 나쁜 놈이냐를 판가름하는 것이 아니고 누가 더 유능하고 훌륭한 사람인가를 가늠하는 잣대로 활용되어야 합니다. 주민들도 어느 후보가 더 어른스러운 행동을 하는지 지금부터 찬찬히 눈여겨봐야 합니다. /한명석(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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