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동

△본적: 담양읍 천변리 △주소: 광주시 동구 방림동 △연령: 49세 △직업: 상업 △학력: 담양동초등학교 광주농업학교중퇴 △경력: 대한청년단담양군단선전부장 자유당담양군당조직부장 자유당담양읍위원장 담양군농업협동조합이사 및 감사 담양읍의회의원재선 담양읍장 한국관광협회업무지도부장

출중한 설득력의 보유자

담양광복정치사에 빼놓을 수 없는 시대적 조직자이자 혁명적 기질로서 두각적 존재이다. 건국전야 이십대의 약관으로서 대한청년단군선전부장을 역임하였고 자유당 조직부장이자 읍위원장으로 탁월한 조직 역량을 과시하였던 위력의 사나이.
뿐만 아니다, 한 때는 담양읍 의회의원 재선의 관록을 지니며 도한 5.16혁명정부에서 소명되어 유능한 담양읍장을 역임한 바 있는 다양적 지혜의 인생!
장구에 경쾌한 동작은 표리 없는 진실의 인간상을 말해준다. 의리심이 강하여 항시 약자의 편에서 불의와 도전한다. 칼로 물 베는 듯 한 성격, 그러니만큼 뒤가 없고 즉석즉결의 쾌남아로 호평 받는다.
현재 경제적 침체에 잠겨 정중 전망 속에 내일을 바라보고 있으나 그 용맹은 주변가에 여음을 남겨주고 있는 것이다. 그 출생은 담양읍 천변리 담양동초등학교 광주농업학교 중퇴하였다. 담양정치계의 최연소자로서 각광받아 왔던 왕년의 실력자인바 한청 군당선전부장으로서 사자성을 사진(四振)하면서 애국정열을 아낌없이 토로하였다.
6.25 당시에는 공비의 무서운 시련을 겪어야 했으며 광주 형무소에서 수복과 함께 구사일생하여 출감되었다. 이어서 방위장교에 자원입대하여 국토방위에 진력하였고 그후 자유당 군조직부장이자 읍위원장의 중책을 맡고 양심적 조직실력자로 각광받았다.
또한 담양읍의회위원재선의 관록을 지니면서 특히 담양시장이전문제를 놓고 최선단에서 용맹하였던 위력의 존재였다. 자유당 읍위원장 당시 국쾌남 국회의원의 참모로서 크게 조력하였고 5.16 후 박승규 국회의원의 부름을 받아 종횡무진 활약함으로써 조직인의 관록을 과시하였다.

▲ 국채동 선생은 지난달 4일 담양군 봉산면 대추리 자택에서 81세를 일기로 작고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국채동 선생은 전쟁 후 60년대 광주 계림동에서 군수업에 투자했다 많은 어려움을 겪고 정치에 입문한 뒤 특출한 언변과 장신의 매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었다.

미망인은 담양읍 양각리가 고향인 이연성 여사이며 슬하에는 2남 4녀를 두었다. 국 선생의 장남은 동현으로 밑으로 정희와 공윤, 미희, 현주, 현이 있다. 첫째와 막내가 아들로 장남 현동은 담양 북부환경에 근무 중이며 季子 현은 강원도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 본 코너 '담양인물열전'은 1976년 전남매일신문사에서 출간된 '광복30년 담양인물집'(박성환 편저)을 발췌한 것으로 위 책은 호남은 물론 국가적 주요인물이 대거 등장한 시절의 담양 출신 인사들을 소개한 책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담양출신 인사들의 젊은 시절과 활약상을 되돌아보고 현재의 모습을 찾아보기 위한 이 코너는 기성세대에게는 추억을 선사하고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담양출신 인사들의 위상을 보여주는 밑그림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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