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한 마음으로 보듬은 마을의 쉼터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꼽힌 관방제림. 바로 관방제림 언덕에 관어정이라는 고적한 누정이 자리잡고 있다. 조선시대 후기 담양부사가 이곳에 누정을 지어 정취와 풍월을 만끽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때 신사로 대신했던 비운의 장소였다가 훗날 다시 마을주민들의 품으로 돌아와 마을의 쉼터로 되찾았다. 관어정에서 내려다보이는 굽이친 담양천의 물길을 바라보며 자연과 물아일체를 느껴볼 수 있다.

정자의 난간에 걸터앉아 물고기 떼의 노니는 모습을 보며 옛 선비들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상사를 잊고 자연과 물아일체가 되어 또 다른 세상, 살맛나는 세상을 꿈꾸었을까?

산 속에 있는 정자에서 물고기의 노니는 모습을 본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말이다. 그렇지만 관어정에 가면 이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관어정은 이름부터가 좀 특이하다. 관어정(觀魚亭)이란 한자를 하나씩 뜯어보면 ‘고기를 보는 정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정자의 주변 풍광이 그만큼 아름답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정자문화의 고을’이라는 담양의 정자 가운데서도 풍광이 가장 빼어난 곳을 꼽으라면 단연 관어정을 들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정자는 담양천의 수변과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멋스러움과 고전미를 갖고 있다.

장풍득수하기 알맞은 땅

수변과 어우러진 빼어난 공간
‘고기를 보는 정자’라는 뜻
자연과 물아일체 느껴봄직

관어정은 팔작지붕에 전면 2칸, 측면 2칸의 형태로써, 1857년 담양부사 황종림이 지금의 담양군의 중심지에 건립했다.

이곳은 담양지역 젊은 유생들이 시가(詩歌)를 읊던 장소로 이용됐다고 한다. 옛날에는 담양천의 물이 정자 밑에까지 흘러들어와 난간에 걸터 앉아 낚시도 하고, 물 속에서 노니는 고기들의 모습을 보고 즐기기도 했다고 전한다. 특히 무더운 여름에는 주변의 숲이 울창해 지역주민들의 휴식처로도 널리 이용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일제 강점기때 이곳은 다시 ‘신사(神社)’로 대신했던 비운의 장소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오랫동안 잡초에 묻혀 있었던 정자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낡고 허물어져 거의 소실 위기에 처했다. 1967년 폐허가 된 이곳을 다시 고쳐 중수했으며, 현재 이곳은 충렬사, 충혼비 등과 함께 자리잡고 있는 등 ‘관어공원’으로 변모했다.

관어정을 오르는 길은 왠지 모를 정겨움이 묻어난다. 정자는 관어공원을 오르는 48계단 중간쯤에서 좌측으로 10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정자에 걸터앉아 남쪽을 내려다보면 멀리는 무등산의 영봉과 아래쪽으로는 관방제림이 한 눈에 들어온다. 특히 관방제림을 관통하는 영산강 지류가 흘러 내린다.

관어정의 뒤쪽으로 산을 등지고 있어 바람을 막기에 그만인데, 산에는 소나무, 참나무, 은행나무, 벚나무, 팽나무 등 자연수림대가 울창해 경관성 또한 그럴듯하다. 특히 정자 앞에 심어진 팽나무는 그 크기로 보아 관어정과 역사를 함께 하고 있는 듯하다.

이곳은 한마디로, 풍수적으로 장풍득수(藏風得水)하기 알맞은 땅에 자연을 존중하는 자세로 지은 듯하다.

치수까지 고려한 선비의 지혜

젊은 유생들이 찾아 시가 읊기도
일제땐 ‘신사’ 대신한 비운 겪어
현재 마을주민들의 쉼터로 애용돼

관어정을 언급하다보면 관방제림(천연기념물 366호)을 떼어놓을 수 없다.
관어정에서 내려다보이는 관방제림은 수해를 막기 위해 조성된 인공림이다. 조선 인조때인, 지금부터 350여년 전에 담양천을 따라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기 시작해 철종 때인 1854년 부사 황종림이 다시 제방을 쌓아 지금의 모습을 띠고 있다. 이때 제방을 나랏돈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관방제’라는 명칭을 얻었다고 한다. 2㎞에 이르는 제방을 따라 심어진 나무의 수는 177그루. 수령이 대체로 300~400년 정도이며, 적은 것들도 100여년의 세월을 이겨왔다.

관방제림을 따라 산책하는 노인들, 조깅하는 아주머니들, 연인끼리 손잡고 거닐기에 너무나도 좋은 길이다. 특히 잎이 무성해지는 초여름이나 단풍이 지는 가을녘이면 그 풍광이 빼어나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이렇듯 관방제림은 치수를 향한 선조들의 지혜와 민초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숲이다. 노거수 숲 그늘 아래로 면면히 흐르는 담양천과 조화를 이뤄 자연과 사람 사는 공간 사이에 경관적 요소가 추가되면서 동식물의 새로운 서식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에 생태적으로 매우 훌륭한 숲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관어정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설화 중 암행어사가 담양 땅에 출두했다는 얘기가 있다. 이때 황종림 부사가 암행어사를 관어정에 모신 후 그의 호기심을 얻기 위해 부사 자신이 즐기던 ‘바가지 불빛 행렬’을 준비했다. 이는 담양천을 따라 조용히 흘러내려온 물 위에 수백 개의 바가지에 피마자 기름을 깍정이에 담아 심지에 불을 붙이는 것이다. 수백 개의 불빛이 관어정 아래를 질서있게 지나가는 밤의 경치는 그야말로 천하일색이었던 것.

또 관어정에 얽힌 가사로는 유생 남석하(1773~1853)가 남긴 가사가 전해지고 있다.

남석하는 조선 후기 유학자이자 가사 작가 시인이다. 그는 여러 차례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지방의 선비들과 시를 주고받으며 평생 후학을 기르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가 남긴 네편의 가사(초당춘수곡·사친곡·백발가·원유가)는 호남 가사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 중 수작으로 꼽히는 원유가는 총 156구로 된 3단 구성의 가사다.

인생이란 항상 젊은 소년이 아니므로 허송세월하지 말고 놀아보자는 말로써 시작하여, 웬만큼 벼슬한 뒤 욕심내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질병없이 평생 즐거움을 누리겠다는 소망적 주제를 내용으로 하였다. 특히 가사의 제2단에서는 경국제민을 모토로 한 조선시대 선비의 책임과 포부를 대화체 기법으로 말하고 있는데, 요순시대의 태평성세를 바라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저작권자 © 담양곡성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