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인구 줄며 회원도 급감… 협찬 요구에 해마다 짜증
선후배 친선은 어디 가고 이틀간 ‘돈 없애기’

‘꽃순이’ 김덕성 (제1회 담양선후배친선축구대회 총무)
“대회는 같은 기수들끼리 십시일반 모아 치를 규모로 해야 합니다”


그때가 1975년도입니다. 담양은 유독 선후배간 서열도 분명하고 당시 사회적으로도 군사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데다 유교적 문화가 많이 남아 있던 때여서 ‘선배’하면 꾸벅 주눅들 때죠.

그런데 한참 위 선배들과 축구 한 판 뛰고 즐겁게 막걸리 한 잔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공만 하나 있으면 되니까요. 선배들이 후배들과 축구 한 게임 차 주는 것만으로도 좋아 후배들이 다 준비했습니다.

아! 그런데 막상 경기를 치르니 우리가 진 거죠. 그래서 내년에도 또 한 게임 치르자고 약속하고 경기를 가졌는데 또 진 겁니다. 후배들이. 억울한 마음에 100미터 달리기 시합을 신청해 달리기라도 어떻게 이겨보려고 했는데 또 졌습니다.

그래서 재미가 붙은 선배들이 “내년에 정식으로 후배들도 더 많이 부르고 해서 크게 한 번 해보자” 해 시작하게 된 대회가 바로 ‘담양선후배친선축구대회’입니다. 그러나 막상 대회를 치르려 하니 아직 어린 나이들이고 벌이도 시원치 않아 당시 담양가공조합장 국진근 선배에게 찾아가 츄리닝 협찬을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국 선배가 “후배들이 이렇게 열심히들 하는데 그것 하나 못해주겠나!” 해서 입고 나갔습니다. 이번에 찾은 기념타올도 누군지는 기억 안 나지만 그것도 협찬 받은 겁니다. 우리 담동45회 친구들은 아래 기수 후배들에게 연락하고 대회에 참가하라고 독려하는 일이 컸죠. 1회 대회 때도 (故)송동팔 회장이 돼지 한 마리 냈습니다.

그때는 큰 잔치면 돼지 한 마리가 제일 클 때니까요. 그렇게 해서 대회를 치렀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연찮게 지나다 대회 치르는 걸 보니 ‘어이쿠’ 소리가 먼저 납니다. 화려하게 시끌벅적하게 하는 것도 좋은데 대회 취지는 다 어디로 가고 낭비가 너무 심합니다.

‘꽃순이’란 이름은 제가 지었습니다. 문뜩 떠올라 지은 이름치고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게 됐으니 개인적으로 자부심도 있죠. 이유는 당시 우리 친구들이 유쾌하고 놀이를 좋아해 예쁜 이름을 붙이려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이처럼 친구들 사이는 어떠한 무게도 거리감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지금 선후배축구대회를 보면 “민폐만 끼친다”는 소리부터 나오니 안타깝습니다. 선후배대회는 같은 기수들끼리 십시일반 모아서 대회를 치를 정도의 규모로만 해야 합니다.

‘홍일회’ 배기술 (제1회 대회 주축이자 당시 담양군축구협회장)
“취지는 사라지고 낭비가 심해졌다”

일 년에 한 번 하는 대회라 자주 보는 건 아닙니다만 기억에 남는 게 있습니다. 모두들 먹고 놀고 하는데 그 정도가 지나치면 안 됩니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 대회 치르면서 야외에서 선후배들은 물론 가족들이 함께 나와 모두들 즐기는 문화가 부족했던 시절에야 많고 넘치면 좋은 줄로만 알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시대와 상황에 맞게 변화해야 합니다.

대회 본질은 선후배간 우정을 나누고 즐거움을 찾자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외형적 모습에 너무 치중합니다.

‘동우회’ 김정조 (축구계 원로. ‘동우회’ 시초)
“대회는 계기일뿐 선후배 우정 쌓을 수 있어야”


우리 동우회는 1972년 10월 옛 명성극장 앞 ‘꼴까식당’에서 결성됐습니다.

담양중14회를 기준으로 강근수, 국복만, 국승근, 김공선, 김규식, 김사원, 김정조, 김청수, 박점수, 박형갑, 백경선, 서광균, 석윤정, 손현수, 송승남, 양승남, 양해술, 이귀헌, 이정형, 주재원, 최달술, 한상욱 22명의 동기생들이 발기인이 됐죠. 회칙을 만들어 1973년 1월부터 정식 출범하기로 하고 신의를 생명으로 합심한 결합체로 ‘동우회’라 칭하고 무궁한 발전을 기원했는데 지금의 ‘00동우회’의 시초가 됐습니다.

올해로 39년간 전통을 이어오면서 그간 45회 이상 걸쳐 상주와 함께 3경의 예식을 치르며 철야 운상을 하며 슬픔을 나누고 위로하는 모습으로 지켜보는 이들의 귀감이 됐습니다. 상여를 메는 전통적 운상에서는 그 방법이나 상여소리가 숙달돼 첫소리 메기 때는 방기만씨나 서재진씨, 백양옥씨께서 “담양에서 제일 운상을 잘 하는 모임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1979년에는 재재소를 운영하던 윤재식 회원이 가죽나무로 닥체(상여틀)를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동우회는 축구 한 번 차기 위해 만든 모임이 아닙니다. 동기들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하기 위한 진심의 결성체죠. 지금도 몇몇 동우회에서는 연말이면 불우이웃돕기 등에 동참하기도 합니다만 그런 일들이 피상적인 면에 그치지 않고 진정 친구들간 합심하는 계기가 되고 서로가 돕는 기회가 돼야 합니다.

그러는 중 선후배축구대회가 열리면 다 같이 참여해 그동안 못 본 선배들도 찾아뵙고 후배들을 챙기고 하는 것이 대회 취지입니다.

“대회는 하루만 소모성 경비 대폭 줄여야” 원로들 입모아

담양선후배친선축구대회는 1977년 이래 1980년과 1992년을 제외하고 매년 열리고 있으며 홍일회를 포함 총 45개 동우회가 이어져 오고 있다. 1980년에는 계엄령으로 인해 열리지 못했으며 1992년에는 담양남초교 출신과 담양동초교 출신들 간 세력이 팽배해 열리지 못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외 대회는 모두 성황리에 개최됐고 올해도 4월 21~22일까지 담양중학교와 담양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그러나 몇 해 전부터 인구감소에 따른 회원 부족과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른 협찬 고충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담양읍 A씨는 “선배들 보다 화려하게 하고 싶고 더 잘하고 싶은 욕심에 예산을 많이 잡고 그러다보니 결국 적자가 났다”며 “아직도 대회 결산을 못 보고 있으나 회원 누구하나 그에 대해 질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질타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회원 모두 눈에 뻔히 적자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B씨(천변리)는 “앞으로 더 문제”라며 “담중44회 기수인 어울림동우회 아래로 동우회가 결성돼 있으나 항상 회원 부족을 염려하며 대회를 개최할 수 있을 지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동우회는 결성돼 있어도 대부분 외지에서 생활하고 있어 모임이 쉽지 않고 그러다보니 동기간에도 어색하게 지내는 실정”이라며 “선배들이 쌓아온 명성에 누를 끼칠까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축구계 원로는 물론 선후배축구대회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방향으로 입을 모으고 있다. “너무 외형적인 것에만 치우쳐 낭비가 심하다”는 것이다.

실제 추성경기장에서 대형무대와 조명, 초청가수, 기념품 등을 마련해 2일 동안 대회를 치를 경우 주최측은 대게 5000만원 정도의 경비를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동시에 대회에 참가한 25개의 각 동우회에서 대회 기간 경비로 각각 300만원 가량을 지출한다면 대회를 치르는 이틀 동안 먹고 마시고 즐기는데만 1억 2500만원의 경비가 공중으로 사라지는 셈이다.

축구계 원로들은 “대회를 하루로 줄이고 동우회마다 자신들 텐트에만 모여 따로 놀지 말고 서로 서로 인사하며 제1회 대회 때의 정신을 되새겨 주기 바란다”고 주문하고 있다.

이어 “화려한 무대와 가수들의 공연도 좋지만 진정 담양을 사랑하고 고향의 발전을 원한다면 소비성 지출을 줄이고 내실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제1회 선후배축구대회 총무를 지낸 김덕성씨는 “왜 축구를 하게 됐는지 아느냐”고 물으며 “공만 하나 있으면 됐거든!”라고 답을 준다. 그는 “요즘처럼 풍족한 시절 뭐가 부족해 학교 운동장에서 그렇게들 하는지 모르겠다”며 자신의 바람을 밝혔다. “진정 선후배축구대회의 뜻을 살리려면 회장이 돼지 한 마리 내놓고 치를 수 있는 대회로 돌아가야 한다”고. /서영준 記者


저작권자 © 담양곡성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