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우리 성황당은 모두 어디로 갔나

▲ 토요쿠니신사. 일본전범들을 기리는 야스쿠니 신사참배문제로 韓日 양국관계가 불편해지는 일이 많다. 토요쿠니신사는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자리하고 있다. 토요토미는 ‘출세의 신’으로 인기 있다.

▲ 토요쿠니신사. 일본전범들을 기리는 야스쿠니 신사참배문제로 韓日 양국관계가 불편해지는 일이 많다. 토요쿠니신사는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자리하고 있다. 토요토미는 ‘출세의 신’으로 인기 있다.


일본을 이해하는데 있어 대표적으로 드는 예가 여럿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생선초밥-스시’이다.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부족한 것이 느껴지지 않는, 원초적 식감을 살리는 음식, 생선초밥. 날생선을 손질해 밥에 얹어 놓은 일본의 ‘스시’를 보고 조선시대 유림들은 미개인들의 천한 음식이라 평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서 보고자 하는 것은 그 음식의 조리방식과 형태의 연원으로 ‘얼마나 오래 전부터 바뀌지 않고 그대로 내려왔을까’이며 ‘일본인은 왜 그토록 그들 나름대로의 전통방식(?)을 바꾸지 않고 유지해 왔는가’이다.

비근한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이번엔 ‘스모’다. 어른 대여섯이 들어가면 딱 맞을만한 원형경기장에 선을 긋고 서서 먼저 쓰러뜨리거나 밖으로 밀어내면 이기는 경기방식인 ‘스모’는 정작 선수 본인들은 치열하지 모르나 보는 이는 단순하기 그지없다.

이 또한 ‘마와시’만 찬 채 싸우는 모습을 우리 선조들이 봤다면 혀를 끌끌 찼을 것이나 달리 생각하면 ‘인간의 원초적 경기 모습’이 이러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한 때 일본 고교를 소개한 TV프로그램이 있었다. 교내 응원부 동아리가 있는데 후배들은 선배들이 걸어놓은 액자 위치를 결코 바꾸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책상 위치나 다른 물건들도 선배들이 정한 대로 그대로 따르고 있었으며 응원부 소속이라는 자긍심은 대단했다. 그래서 응원부실은 1940년대 풍경 그대로였다.

지금까지의 예는 단편적인 것이나 어느 정도 일본인들의 특성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신사(神社) 또한 그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일본인들의 생활에 자리 잡고 있는 종교도 아닌, 미신도 하나의 믿음이었다. 사찰은 불교라는 공식이 있다면 신사는 신도(神道)다. 신도는 누가 언제 어떻게 무슨 이유로 만들었는지 모르는 원시적 연원으로 아직까지 남아 있다.

따라서 일본의 신도는 다른 종교와 달리 경전(經典)도 예수나 마호메트 같은 교조(敎祖)도 없다. 우리네 성황당처럼 마을을 떠나며 작은 돌멩이 하나 얹어놓고 마음으로 비는 곳이 바로 일본의 ‘신사’였다.

또 이승과 저승을 잇는 신관(神官, 샤면)이 있어 샤머니즘에 가까운 일본의 신도는 ‘스시’나 ‘스모’처럼 고립된 섬나라의 외부영향 없는 태고적 모습 그대로의 종교와 같다.

경전이 없는 일본의 신도는 그래서 ‘무엇을 하라 무엇을 하지 말라’는 등이 없다. 일본인들은 신사에 가면 그냥 자신이 이루고 싶은 소원을 빌 뿐이다. 일본인 중에서도 관심 있는 사람이면 그 신사가 누구를 모시는 신사인지 알 수 있지만 대부분 관광지화된 일본의 신사는 오히려 잡다한 기념품으로 돈벌이에 급급해 보인다.

▲ 조롱박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표식이다. 토요쿠니신사 주변은 소원을 비는 데 사용되는 각종 기념품 판매 등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신사는 광관객들에게는 단순히 소원을 비는 곳이었으나 신사를 관리하는 신관들을 신도대학을 졸업하고 자격증을 취득해야만 하는 정식 직업이었다.

▲ 조롱박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표식이다. 토요쿠니신사 주변은 소원을 비는 데 사용되는 각종 기념품 판매 등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신사는 광관객들에게는 단순히 소원을 비는 곳이었으나 신사를 관리하는 신관들을 신도대학을 졸업하고 자격증을 취득해야만 하는 정식 직업이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신으로 해 모신다는 토요쿠니신사는 그나마 유명한 곳이어서 신사 내력을 아는 사람이 많은 곳이었다. 토요토미는 ‘출세의 신’이었으며 그 표식은 조롱박이었다. 그래서인지 신사에는 표주박 모양을 한 기념품이 즐비했으며 모두 돈 주고 사는 물건이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자 원숭이같은 얼굴로 못생긴 얼굴의 대명사였던 토요토미가 백여 년의 내란을 종식시킨 전국시대 종결자였던 것이 ‘출세의 신’으로 추앙받는 모토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일본의 어느 신사이든 외국인의 입장에선 돈벌이에 급급해 보였으며 일본인조차 신사에 무감각해져 ‘관광지에 가면 소원을 빌 수 있는 곳’ 정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신사를 지키는 신관들은 자신들이 왜 신사를 지키고 있는지 그리고 신사는 왜 지켜져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또 우리네 성황당이 오가는 사람 누구나 가까이 다가가 빌 수 있었던 곳이면서도 정갈과 정념의 신성한 곳이었던 것처럼 일본의 신사도 신성시되는 곳으로 ‘스시’를 오랜 세월 먹어왔던 것처럼 그렇게 뿌리 박혀 있었다.

다만 신사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입장에선 어느 정도 부러움의 대상이다. 원시종교의 언저리이면서도 타 종교에 배척되지 않았고 모든 일본인들의 소원을 들어주면서도 그들이 소원을 빌며 던져 넣은 동전으로만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에겐 박제처럼 만들어진 기념관이 아닌 오다가다 소원을 빌며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살아있는 성황당 같은 곳이 필요하다. 개관을 앞두고 있는 담양임란창의기념관이 동네 어귀 당산나무처럼, 성황당처럼 한국인의 마음에 뿌리내리기를 기원해 본다.

인터뷰 토요쿠니신사 신관 오오시마 히로나오(豊國神社 大島 大直)

(토요쿠니진샤 오오시마 히로나오오오시마씨는 신관으로 권니의란 직책을 가지고 있었으며 주로 신사 내외 업무관리를 맡고 있는 사람이었다. 서열로는 셋째 정도였다.)

저희 토요쿠니신사는 히데요시와 네네를 주신으로 하는 곳입니다. 또 곡물의 풍작을 기원하는 곳이기도 하죠. 1599년 세워진 이후 폐쇄된 적도 있지만 메이지 시대 다시 재생했습니다.

신사란 쉽게 생각해 일본신을 모신 곳이죠. 여기서 일본신은 주로 천황이나 천황가족, 장군 등입니다. 토착신앙은 물론 애니미즘과 샤머니즘이 발전된 형태로 이어졌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토요토미는 전국시대를 통일한 영웅으로 역사에 관심 없는 일본인들도 많이 알고 있죠. 전국시대 영웅은 3대 영웅으로 오다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입니다만 워낙 많은 매체를 통해 시시때때로 나오는 인물이어서 친근감을 많이 느낄 겁니다.

또 지긋지긋한 전국시대를 통일한 데 대해 영웅으로 생각하고 모두 공감하고 있는 데다 근세제도 기반을 다진 인물로 선악을 떠나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신도는 그 바탕이 샤머니즘에 가깝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제도화 되어 저희 같은 신관들도 모두들 신도대학을 나와 정식절차를 밟아야만 신직 자격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모두 도쿄에 있는 본사와 예하 청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외국관광객의 눈에는 신사 본연의 의미보다 관광지로 전락했다는 시선을 가질 수 있으며 굳지 그러한 점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신사에 오는 사람이라면 기도하고 참배합니다. 그 자체가 특정 의미를 갖는 것보다 일반적 현상이지만 신사로서는 감사하는 일입니다.

손을 모아 합장하고 인사한 뒤엔 관광지처럼 생각해도 좋습니다. 따라서 한 해 몇 명이 왔는지 집계하지 않으며 단순히 신사를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일본의 신사는 문화재라 할 수 있지만 그러한 점을 떠나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지역공동체 중심이었습니다. 꼭 신도를 믿어서 신사에 가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분이었죠. 신관들은 인간과 신 사이에서 사람들의 바람을 전해주는 매개체로서 나름대로 책임감이 있으며 명예를 중시합니다.

토요토미가 신으로 모셔져 있지만 조상님을 신으로 모시듯 모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마음에 갖는 원시적 믿음이라고 할까요. 일본인들 중 상당수가 그 신사에 누가 모셔진지 모르고 그냥 참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 누가 있는지 알 필요도 없습니다.

자신의 소원을 빌면 되는 것이지 내가 누구에게 빌고 있다고 하는 것은 중요한 점이 아니니까요. 또 신사에 어느 누가 모셔져 있는지도 중요한 사안이 아닙니다. 신사에 와보니 토요토미가 있었고 출세의 신인 그에게 단순히 소원을 비는 것입니다.

신도는 고대종교로 경전이 없어 ‘이래라 저래라’가 없습니다. 단 스스로가 소원을 빌기 위해선 솔직해지는 것, 마음이 깨끗해야 하는 것 정도는 필요하겠죠.

/양상용·서영준 記者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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