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순 교수(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올림픽의 열기가 한여름 날씨만큼이나 뜨겁다. 수영, 펜싱, 사격, 양궁, 유도, 핸드볼, 태권도 등 소위 비인기 스포츠 분야가 반짝 국민적 관심과 성원을 받는 시기가 올림픽 기간이다. 물론 그러한 관심과 성원의 정도는 메달의 색깔과 숫자에 따라 달라진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한국 선수의 금메달 획득에 환호하고, 심판 오심판정에 분노하고, 예선탈락에 실망하면서, 대리만족과 극적 긴장감을 느꼈다. 그래서 평소 한국사회를 가로지르던 계층이나 이념이나 세대를 뛰어넘어, 희노애락을 함께하는 동지가 되고 모두 애국자가 된다. 스포츠를 통해 위안받고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일체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이 즐기는 스포츠는 “보는” 스포츠이다. 그것도 실제 경기장 관전이 아닌 TV중계를 통한 간접관전이다. 물에 들어가면 맥주병 신세가 되는 사람들이지만 박태환 선수의 경기중계를 보면서 자유형 출발동작이나 반응속도 등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게 된다. 그러다 보니 “보는 재미”에는 익숙하지만 “땀흘리는 재미”를 실감하지 못한다. 비록 패배했더라도 땀흘려 최선을 다했을 때 선수들이 느끼는 만족감을 관중들은 체감하지 못한다.

물론 대한민국 사람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축구의 종주국이고 프로축구가 왕성한 영국이지만 실제 축구공을 차면서 축구를 즐기는 영국인들은 극소수이다. 대한민국의 프로야구 팬 중에서 야구 글러브로 공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드물다. 그래도 경기전략이나 전술에 대해서는 선수 못지 않다. 그러다 보니 승패나 경기결과에 선수보다 관중들이 더 흥분하고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심판의 오심판정에 선수들은 담담하게 대응하는데 오히려 관중들이 더 분노하기도 한다.

체력과 기술의 공정한 경쟁인 스포츠가 “보는” 재미에 치중하면서, 정치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그 본래 의미가 퇴색되기도 한다. 대한민국도 한때 “체력은 국력”이라는 슬로건으로 엘리트 스포츠를 집중적으로 지원했다. 부족한 국력을 스포츠로 쉽게 메워 보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래서 올림픽 금메달에 국력의 상징성을 부여하고, 다른 메달은 아예 메달로 쳐주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은메달과 동메달에 대해서도 “값진”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며 대우해주고 있다. 과거 유럽 공산권 국가들, 지금의 중국이나 북한과 같은 통제국가들은 메달 가능성이 높은 종목을 집중지원하는 방식으로, 스포츠를 통해 국수주의를 강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스포츠의 순기능이 발휘되려면 “보는” 스포츠에서 “하는” 스포츠로 바뀌어야 한다. 관중으로서 스포츠를 즐기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실제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통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생활스포츠가 정착하려면 경제적 비용, 여가시간, 스포츠 시설 등의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지방의 중소도시나 농어촌 지역은 생활스포츠 면에서 수도권이나 대도시보다 훨씬 좋은 조건이다. 특히 경쟁위주의 입시교육의 폐해를 극복하고 보완하는 수단으로서 체육교육이 강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중소도시의 우수한 스포츠 환경을 잘 활용한다면 교육적으로도 경쟁력이 높은 지역사회가 될 수 있다.

인구가 밀접한 대도시의 경우 스포츠 활동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공간이 부족하고 공간사용 비용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대도시 학교는 운동장이 비좁거나 운동장이 있더라도 실제 학생들이 체육활동에 이용할 수 없다. 반면에 중소도시에서는 각급학교의 잔디 운동장을 비롯해, 공설운동장 등 다양한 체육시설이 마련되어 학생뿐만아니라 지역주민 전체가 이용할 수 있다. 인접한 산과 강과 바다를 이용해 다양한 스포츨 활동도 가능하다.

런던올림픽의 열기가 생활스포츠로 전이되고, 중소도시의 우수한 스포츠 여건이 지역사회의 삶의 질을 높이는 계기로 활용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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