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빈 자리에 습지 복원 … ‘남한의 DMZ’ 감탄

담양·곡성지역에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습지가 더러 있다. 이들 습지는 때론 애물단지로, 때론 개발대상지로 여겨왔다. 생태계의 순환, 가뭄·홍수의 배수 및 정화능력 등 습지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사람과 습지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이에 본지는 습지 보전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인간과 습지의 공존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전북 고창군을 떠올릴때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인돌유적과 동백꽃으로 유명한, 그리고 시적 소재로 종종 등장하는 선운사가 우선 떠오른다. 아직도 고창을 방문하는 수많은 관광객들은 고인돌축제를 보기 위해, 선운사를 밟아보기 위해 찾곤 한다.

그런데, 고창군내에 세계적인 습지가 있다는 사실은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바로 운곡습지다. 지난해 3월 환경부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이후 같은 해 4월 람사르협약에 의해 습지보전지역으로 등록돼 국제적인 보호를 받는 곳이 됐다.

지난 1980년대 세워진 영광 원자력발전소로 인해 생긴 운곡저수지 때문에 지난 30년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던 곳에서 새로운 생명들이 하나 둘씩 싹틔워 습지가 형성된 이곳. 사람이 빈 자리에 스스로 뿌리를 내린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껴보기 위해 고창 운곡습지로 내달렸다.

◆30년만에 돌아온 습지

고창 운곡습지는 오베이골(오방곡의 전라도 사투리) 일대에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고인골공원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고인돌박물관에 이르는 길 양 옆으로는 연두빛깔의 풀들이 누워 있고, 맞은 편 산등성이를 바라보면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했다.


이어 고인돌박물관을 지나 고인돌공원 옆으로 좁다랗게 난 오솔길을 따라가는 운곡습지 탐방로는 호젓해 보인다. 이름 모를 수많은 종류의 들꽃들이 피어 있어 대지의 품이 느껴지는 듯 평안하다.

고인돌박물관~운곡습지~습지관리센터에 이르는 4.6㎞ 구간을 탐방하는데 대략 1시간 가량 소요되지만 곳곳에 쉼터가 조성돼 있을 뿐만 아니라 숲과 늪의 아름다움에 빠져 둘러보는데 족히 2시간 이상 걸린다.

운곡습지 관리인 나장규씨는 “운곡습지는 30년동안 사람의 흔적 조차 찾기 힘들었던 곳”이라면서 “운곡저수지로 발생한 침수 때문에 습지가 재발견된 곳”이라고 일러줬다.

원시형태로 복원된 상태라, 가급적이면 근래 조성한 탐방로를 이용하는 게 좋다. 자칫 탐방로를 이탈하면 발이 빠지거나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의 빽빽한 숲으로 길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습지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운곡습지가 특이한 것은 과거 계단식 논 등으로 개간돼 경작했던 곳이었지만 1980년대 이후 인근에 있는 영광원전의 냉각수 공급을 위해 운곡댐 건설과정에서 주민들이 이주하면서 폐경되자 숲과 습지가 자연스럽게 복원됐다. 사방으로 둘러싸인 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물이 고일 수 있게 된데다 30년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원시습지 형태로 그대로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연구보전 가치가 아주 높은 지역으로 관심을 끌게 됐고, 지난해 정부로부터 우수한 생물다양성을 인정받게 됐다.

현재 운곡습지에는 멸종위기종인 수달과 삵, 말똥가리를 비롯해 천연기념물인 붉은배새매와 황조롱이 등 6종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식물상(459종), 포유류(11종), 조류(48종), 양서·파충류(9종) 등 549종 이상이 서식하고 있는 등 중서부 내륙지방의 ‘생물다양성의 보고’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운곡습지를 탐방하는 시간동안 고라니와 무당개구리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습지, 생태관광코스 개발

산지형 저층습지인 운곡습지는 담양습지(0.98㎢)보다 1.8배 넓으며, 곡성 반구정습지(1.566㎢)와 비슷한 규모인 1.797㎢에 달한다.

지난해 환경부가 실시한 운곡습지에 대한 평가 결과, 모든 항목에서 습지보전 가치의 판단기준점(2.4점)보다 높은 점수(2.5점)를 받아 보호가치가 뛰어난 습지로 확인됐다. 실제로 이를 뒷받침하는 학술적 근거도 마련됐다. 최근 전북대가 운곡습지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발간하면서 “2009년부터 2년동안 이곳 생태계를 조사한 결과 ‘남한의 DMZ(비무장지대)’라고 표현할 만큼 다양한 식생이 분포하는 자연생태의 보고”라고 높이 평가했다.

습지는 한때 ‘쓸모없는 땅’으로 인식돼 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생태학적으로 그 가치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는 게 고창군의 판단이다.

고창군은 생각에만 머물지 않고 이를 추동케 할 프로젝트를 기획해 실행에 한 발 한 발 옮기고 있다.

고창군은 최근 ‘운곡지구 생태습지복원사업 타당성 및 기본계획’을 마련해 운곡습지 일대를 ‘Oh!베이골 Wetland’라는 프로젝트를 추진중에 있다. 특히 운곡습지를 교육·여가·관광기회를 제공할 목적으로 ‘Edutopia’로 명명해 원시습지 체험길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또 고창지역 전체를 4개 권역으로 나눠 ‘고인돌 질마재따라 100리길’이라는 생태관광 코스를 개발했다. 이 가운데 운곡습지와 고인돌공원을 잇는 8.9㎞ 구간(2시간30분 소요)을 올레길로 만들어 관광객을 유인케 한다는 복안이다.

이렇듯 고창군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인돌유적, 람사르습지에 등록된 운곡습지 등 풍부한 자연자원과 문화유적을 연계한 관광상품 및 문화콘텐츠 개발에 적극적이다.

습지관리인 나장규씨는 “생태계의 모든 개체들은 한 종(種)이 무수히 많은 다른 종에 영향을 미치고 서로 거미줄처럼 관련돼 있어 작은 미물 하나도 소중한 자원”이라며 “생태계 보고인 습지가 우리 환경과 생활에 미치는 영향, 그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훼손된 자연을 언제든 복구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상용·조상현 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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