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윤(담양군 친환경농산유통과장)

최근 생태도시 담양에 귀농, 귀촌을 문의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대규모 은퇴가 시작된 베이비붐 세대들이 제2의 삶을 농촌에서 보내기 위한 귀촌 문의가 크게 늘었고 젊은이들의 귀농 문의도 빈번하다.

취업난의 이유도 있겠지만 삶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도 큰 몫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쫓기듯 경쟁하고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하는 도시 생활보다는 자연 속에서 가족과 함께 행복한 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그러나 귀농은 가족 모두가 낮선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두려운 일이다. 주변의 반대, 생존의 문제와 가치관의 문제 등 하나하나 확실히 짚어야 할 문제들이 너무도 많다.

평생을 농업공무원으로 농업현장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으로서 귀농을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몇 마디가 있어 적어본다.


첫째. 귀농 결심이 서면 지금 당장 텃밭농사나 주말농사를 시작하라


정성스레 가꿔 탐스럽게 열린 고추가 하루아침 탄저병에 문드러지는 아픔을 경험 해보라는 것이다. 결코 농촌생활이 만만치 않다. 좀 멀어도 좋으니 텃밭을 마련하고 아이들과 주말마다 교외로 나가보자. 옥상이 있다면 화분에 고추나 배추도 심어보자. 영농서적을 외우듯이 읽어보자. 귀농의 필수조건이다.


둘째 귀농교육을 받고, 내가 원하는 정보를 모아라


귀농 준비를 하는 순간 귀농은 이미 시작되었다. 가까운 농업기술센터나 귀농학교에 참여하여 많은 정보와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라. 농사는 원래 하늘이 짓는 것이고, 이웃의 도움 없이는 시작할 수도 없는 일이다.


셋째 철학적 고민과 정신적 무장이 필요하다.


귀농은 나와 내 가족의 생활양식이 농촌생활에 어울리게 변해가는 과정 속에서 무수한 철학적 고민이 뒤따른다.

예를 들어 도시 친구들에게 상추 한 박스를 팔아보자.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하더라도 그 친구는 나의 수고와 땀을 모른다. 상추가 시들었다느니, 맛이 없다느니, 비싸다느니, 속상한 많은 이야기들을 듣기 십상이다.

농민들이 왜 수확철에 더 속이 터지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게다가 수해나 태풍이라도 얻어맞으면 그때도 나는 귀농이 행복하다 할 것인가 ? 나의 준비된 철학, 단단한 가치관이 필요하다.


넷째 귀농을 경제적인 관점으로만 접근하지 말라.


귀농을 해서 도시생활과 같은 경제수준까지 올라가는 데는 엄청난 투자와 기술,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다. 조급하게 성과를 내려하는 조바심을 버려라. 자연이 주는 수많은 기쁨과 혜택이 또 다른 수입이다. 가끔, 성공사례가 소개된다. 부디 현혹되지 말라. 특출한 농사꾼 1~2%의 사례가 귀농자 모두의 것이 되기는 어렵다.

농사는 투기가 아니다. 한탕으로 되는 농사는 없다. 소를 규모 있게 키우거나 시설하우스 같은 것을 해보고 싶다면, 천천히 바닥부터 일을 익힌 후에 투자를 하라고 권하고 싶다. 프로 농사꾼들이 죽을힘을 다해도 될까 말까한 일이다.


다섯째 그 마을 사람이 되는 것. 귀농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귀농을 끝까지 책임지는 시스템은 없다. 스스로 돌파해 나가야 한다. 면사무소와 군청은 농촌생활과 깊이 연결되어 있어 관계 직원과 가까이하면 상당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농업기술센터 역할도 무시 못 한다. 도시에서야 가급적 관공서 안 가는 것이 좋은 일이지만 농촌은 관공서와 친해질수록 좋다.

농촌에는 수많은 모임들이 있다. 생활과 직결되는 작목반부터, 동갑계, 대체 무슨 일들을 하는지 알 길이 없는 각종 모임, 오래된 농촌조직들도 있다. 이를 활용할 수 있다면 정착에 도움이 된다.

고향으로 귀농하지 못하는 사연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귀농지로는 고향이 가장 좋다. 귀농지 찾는다고 차 몰고 다니는 사람, 시골 사람들 눈에는 부동산 투기하려는 사람과 구별이 가지 않는다.

제발 땅값부터 묻는 일은 하지 말라. 뭐 좀 있는 행세는 제발 하지 말라. 고급 양복 입고 다짜고짜 군청이나 면사무소 찾아와 인사도 없이 "이쪽 군에서는 귀농자에게 무엇을 지원해 주나요?", "이웃 군은 지원이 많던데"라고 묻는 일 정말 꼴불견이다.

이럴 때 담당 공무원은 ‘귀농이 무슨 벼슬인가’ 하고 속으로 당신을 비웃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상담이나 안내가 되겠는가?

우선 땅을 빌려서 농사짓기를 권하고 싶다. 마을 어른들은 한해 농사 하는 것 보고서야 이 사람이 농사를 짓겠다는 것인지 아닌지를 믿는다. 그러니 첫해 농사는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 그 다음부터는 농지를 빌려주겠다는 사람, 내 땅을 싸게 사라는 사람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리고 일년이면 옆 마을이나 산 너머 마을 정보도 얻게 된다. 진정한 귀농은 그 마을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귀농과 전원생활의 차이도 여기에 있다

마을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욱더 몸과 마음을 낮춰야 한다. 농촌이라는 이름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애정과 농민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흙은 거짓이 없다. 땀 흘린 만큼 돌아온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기대고 다른 사람들이 내게 기대는 아름다운 관계는 꼭 뿌린 대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즐거운 숙제다. 그 과정이 귀농이다.

저작권자 © 담양곡성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