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환(본지 편집자문위원)

“우리들의 행복과 불행은 모두 마음에 달려있다”고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말했다. 그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데모크리토스의 말은 변함이 없는 것일까?

대부분의 논리와 가치는 시대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 아울러 시공 속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것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급변하는 상황에서도 우리가 살아가고 존재하는 목적은 결국은 행복을 찾기 위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 말은 언뜻 상식처럼 느껴질 수 있다. 아마도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보편적 상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행복으로 가는 수단적 가치인 부와 권력 명예가 행복한 삶인 것처럼 가치관이 도착되어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물론 우리가 살기위해선 돈은 필요하다. 우선 생존의 수단인 의식주에서부터 갖가지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은 돈 같은 재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행복한 사람이란 건강하고 돈이 있고 학식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돈이 필요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불가에서는 인생 8고 중 하나인 구부득고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우리가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것도 불가에서는 하나의 커다란 고통으로 보았던 것이다 맞는 말이다. 가진 것이 많으면 불가에서 말하는 인생8고가 아니라 인생 7고로 하나의 고통쯤은 줄일 수 있을법하다. 하긴 현대에서 돈으로 해결 못할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하지만 인간의 궁극적 목적이 행복임에도 수단적 가치인 돈이나 권력 명예가 궁극적 행복인양 착각하여 재화에 종속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다. 행복은 물질적 소유나 감각적 쾌락이 아니다. 어떤 목적에 이바지한 흐뭇한 정신적 만족감이 바로 행복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누구든 행복하려면 제 위치에서 제 구실을 잘 감당해야 하며 또한 성실해야한다

직장인은 직장에서 농업인은 농장에서 상인은 매장에서 자기가 맡은 직책과 직분에 성실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마음의 평온과 함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어떤 철인의 말대로 대개 행복하게 지내는 자는 성실한 노력가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쉽지만 그리고 더러는 억울하겠지만 누구에게나 각자 분수가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릇도 크고 작은 그릇이 있듯이 사람도 저마다 그 쓰임새가 다르며 그 역량이 다르다. 결국 우리는 주어진 그 운명까지도 사랑할 때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지나친 탐욕으로 제 분수를 모르고 분수에 어긋나는 생활을 하면 파멸의 비극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분수를 지키는 것도 행복의 조건 일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일상 가운데 행복은 비범함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함 속에 행복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끝으로 행복은 내가 살고 있는 가까운 곳에서 찾아야 한다. 왜냐면 행복은 치르치르 미치르가 나오는 ‘파랑새’ 이야기처럼 늘 우리들 가정과 직장 그리고 우리들 삶의 주변에서 우리와 함께하고 있지만 자신의 과욕 때문에 또 더러는 남들과 비교하면서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고 선택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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