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석(발행인)

우리의 옛 풍습 중에 과수원에서 과일을 수확할 때 몇 알은 그대로 나무에 남겨두는 것과 벼 추수 때에도 이삭을 전부 다 줍지 않고 새들이나 짐승을 위하여 남겨두는 관습이 있었다. 이것은 하찮은 짐승일지언정 이들을 배려할 줄 아는 삶의 지혜를 우리 조상들이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겨울동안 먹을거리에 궁한 새들과 짐승들에게는 농부들이 들판에 남겨둔 과일과 이삭이 어려운 겨울나기에 다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착한 우리의 선조 농부는 매년 반복적인 경험에 비추어 이듬해 봄에 찾아올 보릿고개를 모를 턱이 없었지만 자연의 섭리와 인간적 순리를 존중하고 순응하며 살아왔다.

이렇게 순박하고 착하게만 살아온 우리네 농부들을 투사로 변모시켜 길거리로 몰아낸 데에는 시장경제논리에 입각해 농업을 경쟁력 없는 산업으로 치부해 온 정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동안 우리 것에 무관심해왔던 상당수 국민들의 책임도 크다.

모든 사안을 효율성과 손익계산에만 의존하는 위정자들의 단견이 앞으로 우리나라에 크나큰 재앙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식량이 무기로 변할 시대가 그다지 멀지 않아 보이는데 이러다 식량주권마저 빼앗기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선다.

설 명절을 앞두고 정부는 비축미를 대량 푼다고 한다. 물가안정을 위해서라나 뭐라나. 또 우리 농민들은 가슴을 쥐어뜯는다. 뚝뚝 쌀값 떨어지는 소리가 쿵쾅쿵쾅 가슴을 때린다. “우리는 어쩌라고, 죽기 살기로 농사지어도 남는 건 빛뿐인데...”

"오늘도 날이 밝았다. 호미를 메고 나가자/ 내 논 다 매거든 네 논 조금 매어주마/ 일을 마치고 오는 길에 뽕을 따다 누에에게 먹여보자"(훈민가·정철 지음). 하루도 손을 놓을 수 없는 농사일에도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따뜻한 농심을 그리고 있다. 이렇듯 농사는 우리 민족의 생활과 문화를 꽃피워 온 창작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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